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기억하라! 달의 젖은 눈동자를

등록 2007-08-19 15:04수정 2007-08-19 15:08

‘아시아의 피카소’로 불리는 호가 신순남의 작품에는 절제된 슬픔이 녹아 있다. ‘달은 우리의 푸른 조국’
‘아시아의 피카소’로 불리는 호가 신순남의 작품에는 절제된 슬픔이 녹아 있다. ‘달은 우리의 푸른 조국’
교과서 미술기행 / [난이도 = 고등]

신순남의 ‘진혼제, 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과 ‘달은 우리의 푸른 조국’

아르바트 거리, 빅또르 최의 벽 앞에서 러시아 남자가 느린 영어로 말을 걸었다. 빅또르 초이를 좋아하냐고.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까레이스키?” ‘고려인? 그래, 나는 여기에선 까레이스키다.’ 그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 한 쪽을 내밀었다. 우리는 길바닥에 나란히 앉아 빅또르 최의 노래를 들었다.

낮고 우울한, 회청색 짙은 슬픔이 꾹꾹 눌렀다가 터져 나오는 듯한 음성. 눈썹이 짙고 참 잘생긴 스물 아홉에 죽은 전설의 가수. 그를 사랑한 러시아 사람들은 오늘도 이렇게 함께 숨쉰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부드러운 음색으로 이어주는 올페우스의 리라를 지니고 있다. 고려인 출신의 아름다운 가수 최건. 절망과 맞붙으려 안간힘 쓰는 오기 또한 그의 출신 성분이 준 고마운 핏줄의 내력이다. 빅또르 최의 푸른 불꽃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저 반항적인 눈빛의 의미를 나는 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되는 절망은 여느 사람들에게는 무감각을 갖게 하지만 예술가는 그 늪에서 세상을 향해 고통스럽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신순남의 그림 역시 낮고 슬픈 음색을 지녔다. 아마 이것이 까레이스키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한 예술가의 생애가 그대로 역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진혼제,이별의 촛불,붉은 무덤
‘진혼제,이별의 촛불,붉은 무덤
지난해 작고하신 신순남 선생의 창작노트를 읽으며 마음이 쓰라려서 쉬었다 읽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맨 처음 신순남의 ‘진혼제, 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을 보는 순간, 깊게 웅크린 채 떨면서 꺼져가는 생명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들. 온 몸에 물이 다 빠지도록 속으로 흐느껴 우는 모습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내 입을 막았다. 고통스러운 적막은 돌림병처럼 탈출구가 없다.

무서운 추위와 굶주림, 병든 밤과 격리된 집단 수용소. 여기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 이렇게 아픈 레퀴엠으로 연주되고 있다. 스탈린 통치 이후 강제 이주된 한인들은 늪지대와 황무지에서 죽어가며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 고아로 자란 신순남은 세상에 혹독하게 버려진 채 그의 뮤즈인 그림이 이끄는대로 자신이 느끼고 본 것을 마음껏 표현한다.

굶주리던 고아들과 노예처럼 죽어라 일만 하다 죽어간 혼령들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뼈 마디마디를 울리는 죽음의 기억들. 감시와 밀고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는 망자와 아이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에 어떤 표정도 담겨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안다. 신순남은 스탈린이 어떻게 고려인들을 학살했는가를 그림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귀뚜라미처럼 목청 고운 화가 신순남은 분노보다는 예쁜 단발머리 천사들의 날개를 더 사랑한다. 날 것인 현실을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우리는 몽상과 은유의 공간에 은신처를 만들어 놓고 평화의 품을 찾는다. 그곳은 쫓겨나거나 모멸당하지 않아도 되는 곳, 다른 애들처럼 저녁이 되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골목 끝에서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는 곳. 서서히 빛이 내려오고 조국을 빼앗긴 사람들이 당당히 귀향할 수 있는 곳. 그런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의 은신처도 많이 낡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고려인 3세 4세들이 우리말보다 우즈베키스탄 말이 더 익숙하고 편한 것처럼 신순남이 그리워하던 고향은 오로라처럼 끝내 손에 잡을 수 없는 빛이 되고 있다.

‘달은 우리의 푸른 조국’은 그가 작고하기 전 해에 그린 작품이다. 수많은 이들이 달을 향해 파도치는 삶을 마감하고 흰 달빛이 내어준 길을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앉아 쉬면서 살아온 이야기도 나눈다. 머리에 봇짐을 인 어머니들과 등에 업힌 아이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인사하는 사람들. 달빛이 느슨한 계단을 만들어 주었건만 왠지 힘겨워 보인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걸까. 화가는 달의 꼭대기에 푸른 옷을 입고 삿갓을 쓰고서 벌써 올라가 있다. 마치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축복하며 지켜볼 테니 슬픔이 오면 달이 기울 듯이 기쁨이 오면 달이 차오르듯이 그렇게 살아가라고 다독이고 싶은가보다.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분홍빛 구름이 샘처럼 흐르는 신순남 미술학교가 있다. 신순남의 슬픔의 미학은 자유롭지만 절제돼 있다. 동시에 따뜻함과 비판정신이 살아있다. 박제화돼 교과서 한 구석에 처박혀버린 낡은 역사 앞에 다시 묻는다. 8·15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진혼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기억하라! 달의 젖은 눈동자를.

아르바트 거리, 빅또르 최의 벽 앞에서 러시아 남자가 느린 영어로 말을 걸었다. 빅또르 초이를 좋아하냐고.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까레이스키?” ‘고려인? 그래, 나는 여기에선 까레이스키다.’ 그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 한 쪽을 내밀었다. 우리는 길바닥에 나란히 앉아 빅또르 최의 노래를 들었다.

낮고 우울한, 회청색 짙은 슬픔이 꾹꾹 눌렀다가 터져 나오는 듯한 음성. 눈썹이 짙고 참 잘생긴 스물 아홉에 죽은 전설의 가수. 그를 사랑한 러시아 사람들은 오늘도 이렇게 함께 숨쉰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부드러운 음색으로 이어주는 올페우스의 리라를 지니고 있다. 고려인 출신의 아름다운 가수 최건. 절망과 맞붙으려 안간힘 쓰는 오기 또한 그의 출신 성분이 준 고마운 핏줄의 내력이다. 빅또르 최의 푸른 불꽃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저 반항적인 눈빛의 의미를 나는 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되는 절망은 여느 사람들에게는 무감각을 갖게 하지만 예술가는 그 늪에서 세상을 향해 고통스럽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신순남의 그림 역시 낮고 슬픈 음색을 지녔다. 아마 이것이 까레이스키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한 예술가의 생애가 그대로 역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작고하신 신순남 선생의 창작노트를 읽으며 마음이 쓰라려서 쉬었다 읽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맨 처음 신순남의 ‘진혼제, 이별의 촛불, 붉은 무덤’을 보는 순간, 깊게 웅크린 채 떨면서 꺼져가는 생명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들. 온 몸에 물이 다 빠지도록 속으로 흐느껴 우는 모습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내 입을 막았다. 고통스러운 적막은 돌림병처럼 탈출구가 없다.

무서운 추위와 굶주림, 병든 밤과 격리된 집단 수용소. 여기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 이렇게 아픈 레퀴엠으로 연주되고 있다. 스탈린 통치 이후 강제 이주된 한인들은 늪지대와 황무지에서 죽어가며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 고아로 자란 신순남은 세상에 혹독하게 버려진 채 그의 뮤즈인 그림이 이끄는대로 자신이 느끼고 본 것을 마음껏 표현한다.

굶주리던 고아들과 노예처럼 죽어라 일만 하다 죽어간 혼령들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뼈 마디마디를 울리는 죽음의 기억들. 감시와 밀고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는 망자와 아이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에 어떤 표정도 담겨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안다. 신순남은 스탈린이 어떻게 고려인들을 학살했는가를 그림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귀뚜라미처럼 목청 고운 화가 신순남은 분노보다는 예쁜 단발머리 천사들의 날개를 더 사랑한다. 날 것인 현실을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우리는 몽상과 은유의 공간에 은신처를 만들어 놓고 평화의 품을 찾는다. 그곳은 쫓겨나거나 모멸당하지 않아도 되는 곳, 다른 애들처럼 저녁이 되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골목 끝에서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는 곳. 서서히 빛이 내려오고 조국을 빼앗긴 사람들이 당당히 귀향할 수 있는 곳. 그런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의 은신처도 많이 낡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고려인 3세 4세들이 우리말보다 우즈베키스탄 말이 더 익숙하고 편한 것처럼 신순남이 그리워하던 고향은 오로라처럼 끝내 손에 잡을 수 없는 빛이 되고 있다.

‘달은 우리의 푸른 조국’은 그가 작고하기 전 해에 그린 작품이다. 수많은 이들이 달을 향해 파도치는 삶을 마감하고 흰 달빛이 내어준 길을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앉아 쉬면서 살아온 이야기도 나눈다. 머리에 봇짐을 인 어머니들과 등에 업힌 아이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인사하는 사람들. 달빛이 느슨한 계단을 만들어 주었건만 왠지 힘겨워 보인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걸까. 화가는 달의 꼭대기에 푸른 옷을 입고 삿갓을 쓰고서 벌써 올라가 있다. 마치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축복하며 지켜볼 테니 슬픔이 오면 달이 기울 듯이 기쁨이 오면 달이 차오르듯이 그렇게 살아가라고 다독이고 싶은가보다.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분홍빛 구름이 샘처럼 흐르는 신순남 미술학교가 있다. 신순남의 슬픔의 미학은 자유롭지만 절제돼 있다. 동시에 따뜻함과 비판정신이 살아있다. 박제화돼 교과서 한 구석에 처박혀버린 낡은 역사 앞에 다시 묻는다. 8·15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진혼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기억하라! 달의 젖은 눈동자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