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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자연을 연주하는 천상의 화가

등록 2007-10-07 15:46수정 2007-10-07 15:53

자연과 음악을 사랑했던 파울 클레는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선을 통해 예술의 기원,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했다.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
자연과 음악을 사랑했던 파울 클레는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선을 통해 예술의 기원,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했다.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
난이도 수준- 고2~고3

파울 클레의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과 ‘건망증이 심한 천사’

여행을 하다가 클레의 그림을 만나면 행복하다. 아주 오래 전 기억 속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수많은 그림들 중에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저 친근하고 신비로운 클레만의 독특한 울림. 그래서 클레의 그림을 만나면 나는 늘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마냥 행복해져서 클레의 그림이 주는 싱싱한 천진무구함에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곤 한다.

클레의 그림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영혼이 내뿜는 해맑고 깨끗한 선율이 느껴진다. 클레가 워낙 자연과 음악을 사랑한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그의 심성이 그림과 상반되었다면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선을 통해 예술의 기원,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했던 파울 클레. 그에게 그림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하나의 아름다운 환상곡과 같았을까,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불행히도 히틀러 정권 하의 지옥시기를 통과해야하는 공포와 절망의 시절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어떻게 이런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을까.

클레에게 자연은 온갖 음으로 가득 찬 경이로운 공간이었다. 이 황홀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고 클레는 자신의 유년을 되짚어간다. 그리고 어린 날 자연과 맨 처음 만나던 그 빛나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서슴없이 환하게, 서로를 무한대로 받아들이던 그때, 우리는 그때 나무의 속삭임을 들었다. 그리고 꽃들과 풀잎들의 몸짓을 따라하기도 했다. 그 저녁 바람은 또 얼마나 상냥한 웃음을 보여주었던가. 어른들은 알 수 없는 세계. 클레는 그 초록빛 비밀의 시간들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절망이 파괴할 수 없는 자연, 그 자연을 닮은 아이들의 환상. 그리고 사랑스러운 음악. 이것이 바로 그가 가꾸고 평생을 그린 아름다운 꿈의 정원이라고.

‘건망증이 심한 천사’
‘건망증이 심한 천사’
클레의 ‘노란 새들이 있는 풍경’은 배경이 밤이다. 검은 밤은 노란 새들을 더욱 부각시켜주며 다양한 색감의 식물들이 지닌 동화적이고 몽상적인 분위기에 그림자 역할을 한다. 사르르 하얀 보름달이 뜨면 연보랏빛 구름들이 산뜻하게 흐르는 상상의 숲이 열린다. 그러면 잠옷 차림의 꼬마들이 작은 맨발로 와서 노란 새들과 논다. 저기 거꾸로 구름 아래 서 있는 새는 지금 삐친 거다. 하지만 저 새와 놀아줄 개구쟁이 녀석이 곧 숲 속 노란 새들의 나라로 찾아올 것이다. 아이들은 꿈의 창문을 열고 이 숲 속으로 날아오고 귀여운 새들과 예쁜 풀들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신나는 노래를 부른다. 숲은 춤추는 식물들과 음악으로 밤이 깊도록 크고 작은 진동으로 공명한다. 온 우주가 색색의 화음으로 아이들의 꿈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감싸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춘다. 어느덧 새벽이 숲의 깊은 곳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누르자 노란 새들은 일제히 날아오르고 아이들도 잠에서 깨어난다.


클레는 모든 군더더기를 던져버리고 선만으로 본질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했다. 또한 그런 그는 근원적인 예술은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라고 보았다.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유난히 친근하고 행복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다. 어린아이를 꼭 끌어안을 때의 그 포근포근한 느낌, 표정, 그 빛깔만큼 우리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물들일 수 있는 색깔이 어디 있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클레는 자신이 찾고자 한 길을 마침내 찾아낸 축복받은 예술가다.

그러나 그가 악성피부경화증에 걸려 고통 받던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악성 피부 경화증은 온몸이 차츰 굳어가는 무서운 병이다. 그런 상태로 그는 이 유명한 천사 시리즈를 그린다. 심장이 굳어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건망증이 심한 천사’는 슬프다. 간결한 몇 개의 선만으로 슬픔과 회한, 끝내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용서를 이렇게 조용히 그렸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유고시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에인다. 이 내향적인 성격의, 평생 남을 동물적으로 공격하는 세상을 혐오한 식물성인 화가는 그만큼 상처도 무수히 입었으리라. 그러나 자기가 받은 상처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차라리 제가 아픈 쪽을 택했을 것이다. 천사는 고요하게 눈을 감고 손을 모으려 하고 있다.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아무런 기억도 가지고 떠나지 않으려는 듯 다 놓아버린 평화로운 얼굴이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그를 얽어맨 칡넝쿨 같은 고통의 기억들은 한 쪽 어깨를 무너뜨려 버리고 말았다. 이제 곧 하늘 높은 곳에서는 그가 이 땅에 내려올 때 들렸던 노래가 다시 그를 불러올릴 것이다. 그는 그 노래를 기다리며 슬픔과 기쁨, 희망과 절망 같은 삶의 질긴 끈들을 다 놓았다. 그의 날개는 착하게 접혀있다. 저 여리고 연한 날개를 위해 바람도 숨소리를 죽이고 걸음을 멈췄다.

클레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가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믿는 사람만이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클레는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존엄한 영혼의 자리를 가장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지켜낸 화가였다. 그래서 죽음도 그의 날개를 꺾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위에는 기적처럼 꼬마 클레들이 삐뚤빼뚤 천지사방에 자신이 만난 세상을 그리며 자라나고 있다. 바로 우리 곁에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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