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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쓰레기’에서 건진 ‘철학적 사고’

등록 2007-12-02 15:34수정 2007-12-02 15:55

권희정 교사의 삶,사유,논술
권희정 교사의 삶,사유,논술
권희정 교사의 삶,사유,논술 / 난이도 수준-고2~고3

하루의 일과를 열고 닫는 조회와 종례시간. “지각하지 마라”, “청소 깨끗이 해라.” 하루도 빠짐없이 늘상 듣는 그 소리! 담임 선생님이 가장 많이 강조하는 단골 메뉴다. 학교는 평생을 살아갈 기본 소양을 기르는 곳이니, 시간과 공간 사용에 대한 수칙은 너무나 중요하다. 깔끔한 인상에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 정도면 성실성의 기본은 갖춘 셈이니까.

하지만 학생들의 버티기도 만만치 않다. 습관성 지각은 쉬이 회복되지 않고, 돌아가며 하는 청소는 더럽고 귀찮아한다. 둘 다 잘 해도 별로 티 나지 않으면서, 잘못하면 금세 시선을 끈다. 특히 청소는 나 하나에 그치지 않고 학급 전체에 영향을 주니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쾌적함보다 귀찮음을 더 크게 느낀다. 내 몸 움직여 모두가 좋아지는 일인데도 기뻐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불결하고 짜증나는 일. 너도 나도 피하고만 싶은 청소는 ‘벌’ 목록에서도 상위권이다.

그런데 다른 동물 무리에도 이처럼 청소 당번이 있을까. 동물들은 생활에서 버릴 것이라곤 배설물밖에 없다. 그것도 자연 안에서 쉽게 분해된다. 군집생활을 한다 해도 드넓은 자연을 돌아다니며 배설물을 흩뿌리니 딱히 처리할 필요도 없다. 동물들에게는 아예 ‘쓰레기’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신석기 시대에도 쓰레기를 만들고 처리했다. 조개 무덤인 패총을 떠올려 보라. 조개껍질을 한 곳에 버렸다는 것은 공동생활의 규범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생활 속에서 버릴 것이 생겼다는 점과 그것을 계획적으로 모아 폐기물로 처리했음을 알 수 있다. 쓰레기는 간직하지 않고 버린 것이지만 묵묵히 살아남아 시대의 문화를 증언한다. 사랑스런 쓰레기는 문명의 뒷모습이며 또 다른 자식인 셈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쓰레기인 만큼 얽힌 사연도 많다. 3500년 전, 중국 상나라의 법률에는 “재를 길거리에 버리는 사람은 손을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고 한다. 재 이외의 쓰레기가 없었던 고대 농촌 사회에서 재는 일종의 거름이었다. 재와 분뇨는 논밭에 뿌리면 비료가 되지만, 길거리에 버리면 옷과 음식을 더럽혀 피해를 준다. 쓰레기의 재활용을 염두에 둔 지혜로운 처리법이다.

그러나 그 처벌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상나라의 처벌법은 춘추 시대의 공자에게도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논어>에 의하면, 상나라의 형벌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자공이 묻자 공자는 이를 두둔했다. “재를 버리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다. 손이 잘리는 것은 누구든 싫어하는 일이다. 좋은 일을 해서 싫어하는 중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쓰레기에 민감하고 엄격히 단속하는 전통도 그 뿌리가 깊다.


근대 이후 쓰레기를 처리하는 문제는 한 국가의 문명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됐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의 재활용 문제는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전지구적 차원의 이슈가 되고 있다. 사진은 음식물 쓰레기를 말리는 모습. 장철규 기자 <A href="mailto:chang21@hani.co.kr">chang21@hani.co.kr</A>
근대 이후 쓰레기를 처리하는 문제는 한 국가의 문명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됐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의 재활용 문제는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전지구적 차원의 이슈가 되고 있다. 사진은 음식물 쓰레기를 말리는 모습.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같은 쓰레기라도 도시와 농촌에서 각기 대접이 달랐다. 재와 분뇨로 이루어진 전통 쓰레기는 농촌에서는 보배다. “백만섬의 분뇨를 버리는 것은 백만섬의 곡식을 버리는 것과 같다.” 요순 시대이래 지금까지 중국에서 내려오는 전통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90여년 전까지도 분뇨를 사고 팔았으며, 선금을 주고 예약을 할 만큼 히트상품으로 취급되곤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중국의 분뇨처리 방식을 감탄하며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쓰레기 문제가 경제 개혁과도 상통하는 대목이다.


반면, 농사를 짓지 않는 큰 도시에서는 처리가 곤란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도로와 하천에 오물들을 쏟아내었는데, 도로에는 악취와 파리가 들끓었고 하천은 식수나 빨랫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 옛 도시들은 그 규모가 클수록 잦은 전염병에 시달렸다. 통일신라의 전성기 때 경주는 10년이 멀다 하고 천연두가 유행했으며, 19세기 파리에서도 수차례 콜레라가 휩쓸고 지나갔다. 더럽고 불결했던 유서깊은 도시들이 깨끗해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였다.

그러니 문명은 청소와 함께 발전했고 근대화는 하수시설이나 위생 대책과 같은 ‘도시 대청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청소는 독립 영역이며 사회의 근간이라는 인식이 싹튼 덕분이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쓰레기를 치우는 관직은 따로 있었다. 내시부에 정8품의 비교적 높은 관직을 두어 궁궐내 청소를 담당케 하였다. 하지만 궁궐에만 국한된 일이었다. 일제시대가 되어서야 서울을 청소하는 인부들을 고용해 대대적인 시설 정비에 나섰다. 인상적인 사건은 1919년 서울 청소인부들이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해 벌인 파업인데, 이는 근대 노동운동에서도 선구적인 사례라 한다. 근대사회가 청소 작업과 함께 성장해 온 이면을 보게 된다.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도 누군가는 쓰레기를 버릴 테고, 아무리 권장해도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하지만 자본주의의 효율성은 상업화된 청소로 이윤창출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 도쿄 디즈니랜드에는 600명의 청소담당자가 24시간 고객 사이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담당구역으로 달려가는 청소 관리인들은 “무대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청소도 하나의 멋진 쇼’로 만드는 사고의 전환이 새삼스럽다. 청소에서도 시대의 가치를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쓰레기 문제는 ‘생산성’ 보다는 ‘재생과 순환’을 강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만물은 하나다. 냄새나고 썩은 것은 신기한 것으로 변하고, 신기한 것은 다시 냄새나고 썩은 것으로 되돌아간다.” 중국의 장자가 꼭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몽골의 유목민족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남은 것을 회수해서 재활용하는 방식도 관심이 간다. 끝과 시작을 단절로 보지 않고 연속된 변화로 보는 관점은 비단 장자뿐 아니라 불교의 전통과도 일치한다. 오래된 지혜 안에서 쓰레기를 이해하는 철학적 사고도 함께 배워 보자.

아무리 의미가 많아도 여전히 청소는 하기 싫은가. 그러면 내 방이라도 청소하자. 게임이나 운동처럼 어떤 일에 몰두할 때 느끼는 무념 상태로 빠지리라. 내가 버린 모든 쓰레기는 나의 행동과 마음을 거울처럼 비춰줄 터. 안 보였던 것을 보게 되고, 흩어진 것들을 세우는 일은 새로운 기쁨을 준다. “휘파람을 불며, 춤을 추며, 청소를 하자.” 난장이들의 집에서 명랑하게 청소했던 백설공주의 제안도 떠올려 보자. 나의 흔적과 쳐박혀 있던 물건들이 어느덧 생기를 얻고 일어날테니.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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