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
[난이도 수준-중2~고1] 9. 품사의 세계 - 동사와 형용사 ③
10. 품사의 세계 - 동사와 명사 ①
11. 품사의 세계 - 동사와 명사 ② 다음 두 문장을 보자.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 “나는 이런 삶이 좋아.” 앞에서는 ‘사는’이라는 동사를 썼고, 뒤에서는 ‘삶’이라는 명사를 썼다. 여러분은 여기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나는 이렇게 느꼈다. ‘사는’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입음새와 집 안팎의 풍경이 떠올랐고, ‘삶’에서는 ‘행복’ ‘평화’ ‘구원’ 같은 낱말이 떠올랐다. 동사는 행위 주체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듯이 보여준다. ‘잔다’ ‘(꿈을) 꾼다’ ‘운다’ ‘웃는다’ ‘걷는다’ 따위의 낱말을 들으면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이나 표정을 떠올리고, 혹은 그 사람의 이런저런 몸놀림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낱말들이 명사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잠’ ‘꿈’ ‘울음’ ‘웃음’ ‘걸음’이라는 낱말을 들었을 때, 특정한 인물의 얼굴이나 행동에 대한 이미지는 흐릿해진다. 대신 뭔가 막연하고 좀더 거창한 개념 같은 것이 떠오른다. 까닭이 뭘까. ‘김철호’는 명사(의 일종인 고유명사)다. ‘김철호=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과연 이 이름 속에 ‘나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걸까? 나는 키가 조금 작은 편이고 몸무게는 평균 정도다. 안경을 썼고, 옷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입는다. 조금은 까탈스러운 성격에 목소리는 약간 새되다. 바둑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을 즐기며, 김치찌개를 잘 먹고, 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특성은 부지기수다. 아무리 많은 낱말과 표현을 동원하더라도 ‘나’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김철호’라는 이름은 이런 나의 모든 특성을 단 세 글자 안에 욱여넣는다. 이게 바로 명사가 지닌 힘이다. 명사의 힘은 ‘추상화’에서 나온다. ‘나’가 지닌 이런저런 특성을 모조리 뭉뚱그려, 짤막한 이름 하나에 다 집어넣는다. 내 표정도 사라지고, 걸음새도 사라지고, 성격도, 버릇도, 취미도, 나의 꿈도 모두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명사는 관념의 세계다. 논리와 이성의 세계다.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다. 동사는 감각의 세계다. 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다. 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하는 게 다 동사로 표현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동사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잘 자, 많이 먹어, 이리 와, 빨리 가, 울지 마, 웃어 봐, 때리지 마, 안아 줘….
명사(또는 명사형)는 이런저런 분야의 ‘용어’로 잘 쓰인다. 숨쉬기 운동, 걷기 동호회, 먹기 대회, 웃음 명상, 꿈의 해석, 영문법 첫걸음…. 한자어가 되면 명사의 이런 성격은 한층 더 두드러진다. 수면 시간, 직립 보행, 영양 섭취, 성적 향상, 환율 하락, 미군 철수….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이름’은(즉 명사는) ‘몸짓’과 ‘빛깔’과 ‘향기’라는 감각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던 사물을 관념의 세계로 초대한다. 김철호〈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저자
[난이도 수준-중2~고1] 9. 품사의 세계 - 동사와 형용사 ③
10. 품사의 세계 - 동사와 명사 ①
11. 품사의 세계 - 동사와 명사 ② 다음 두 문장을 보자.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 “나는 이런 삶이 좋아.” 앞에서는 ‘사는’이라는 동사를 썼고, 뒤에서는 ‘삶’이라는 명사를 썼다. 여러분은 여기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나는 이렇게 느꼈다. ‘사는’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입음새와 집 안팎의 풍경이 떠올랐고, ‘삶’에서는 ‘행복’ ‘평화’ ‘구원’ 같은 낱말이 떠올랐다. 동사는 행위 주체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듯이 보여준다. ‘잔다’ ‘(꿈을) 꾼다’ ‘운다’ ‘웃는다’ ‘걷는다’ 따위의 낱말을 들으면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이나 표정을 떠올리고, 혹은 그 사람의 이런저런 몸놀림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낱말들이 명사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잠’ ‘꿈’ ‘울음’ ‘웃음’ ‘걸음’이라는 낱말을 들었을 때, 특정한 인물의 얼굴이나 행동에 대한 이미지는 흐릿해진다. 대신 뭔가 막연하고 좀더 거창한 개념 같은 것이 떠오른다. 까닭이 뭘까. ‘김철호’는 명사(의 일종인 고유명사)다. ‘김철호=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과연 이 이름 속에 ‘나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걸까? 나는 키가 조금 작은 편이고 몸무게는 평균 정도다. 안경을 썼고, 옷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입는다. 조금은 까탈스러운 성격에 목소리는 약간 새되다. 바둑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을 즐기며, 김치찌개를 잘 먹고, 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특성은 부지기수다. 아무리 많은 낱말과 표현을 동원하더라도 ‘나’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김철호’라는 이름은 이런 나의 모든 특성을 단 세 글자 안에 욱여넣는다. 이게 바로 명사가 지닌 힘이다. 명사의 힘은 ‘추상화’에서 나온다. ‘나’가 지닌 이런저런 특성을 모조리 뭉뚱그려, 짤막한 이름 하나에 다 집어넣는다. 내 표정도 사라지고, 걸음새도 사라지고, 성격도, 버릇도, 취미도, 나의 꿈도 모두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명사는 관념의 세계다. 논리와 이성의 세계다.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다. 동사는 감각의 세계다. 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다. 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하는 게 다 동사로 표현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동사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잘 자, 많이 먹어, 이리 와, 빨리 가, 울지 마, 웃어 봐, 때리지 마, 안아 줘….
명사(또는 명사형)는 이런저런 분야의 ‘용어’로 잘 쓰인다. 숨쉬기 운동, 걷기 동호회, 먹기 대회, 웃음 명상, 꿈의 해석, 영문법 첫걸음…. 한자어가 되면 명사의 이런 성격은 한층 더 두드러진다. 수면 시간, 직립 보행, 영양 섭취, 성적 향상, 환율 하락, 미군 철수….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이름’은(즉 명사는) ‘몸짓’과 ‘빛깔’과 ‘향기’라는 감각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던 사물을 관념의 세계로 초대한다. 김철호〈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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