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지난 11월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구세군 자선냄비에 한해 동안 저금통에 모아온 동전을 꺼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말 논술 / 30.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관련 논제 해결하기 [난이도 = 고등]
<논제 1> (가)에는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에 이주한 후 현지인들과 겪었던 갈등과 그 해결과정이 나타나 있다. 니어링 부부와 현지인의 태도를 제시문 (나)에 나타난 ‘관용’의 관점에서 분석하시오. (600±50자)
<논제 2> (다)에 나타난 삶의 태도가 오늘날 갖는 의미에 대해 논술하되 연관되는 구체적 사례를 답안에 포함하시오.(600±50자)
(가) 우리는 ‘외지인’으로 버몬트에 왔다. 이 곳 토박이들은 새로 이사 온 사람을 입에 올리면서 ‘타지 사람들’이라는 말을 가끔 쓴다. 외부인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이웃으로 인정하기를 꺼리는 토박이들이 그 사람들을 ‘침입자’로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공동체든지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법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그 곳의 풍습과 인습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리고 자기 자식들 말고는 낯선 곳에서 침입해 온 어느 누구도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난롯가에 다가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외진 데 있는 작은 마을일수록 이런 애향심이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앞서곤 한다.(중략)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본 이웃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어 하고, 당황하고, 불쾌해 했다. 이웃 사람들이 끝까지 단호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우리가 먹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이들이 인정하는 음식을 우리가 먹었다면, 그이들은 우리를 더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우리는 나무 그릇에 음식을 담아 젓가락, 포크, 숟가락으로 먹었다. 그이들처럼 사기그릇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또 버몬트의 관습을 따른다면 반드시 요리해서 먹어야 할 것을 그냥 날 것으로 먹었다. 그리고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잡초와 보도 듣도 못한 것들을 요리해 먹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몹시 이상한 행동이었다.
스무 해 동안 버몬트에 살면서 우리는 한 번도 파이를 굽지 않았고, 케이크나 쿠키도 거의 먹지 않았으며, 도넛을 먹는 일도 드물었다. 하루에 세 끼 다는 아니더라도 두 끼 정도는 파이, 케이크, 도넛을 상에 올리는 마을에서 우리의 행동을 믿기 힘들 뿐 아니라, 괘씸하기까지 한 짓이었다. 우리는 버몬트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생활양식을 전혀 따르지 않으면서 살았다.
버몬트 사람들의 보수주의를 잘 보여 주는 일로 꼭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스무 해 동안 살면서 우리는 흰 밀가루, 흰 빵, 흰 설탕, 파이, 과자의 문제점에 대해 이웃들과 밤을 새면서 수없이 많은 토론을 했다. 그리고 채소를 날 것으로 먹는 것이 건강에 좋으며, 썩어 가는 동물의 시체를 먹는 것은 역겨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입이 닳도록 얘기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 스무 해 동안 우리의 충고에 따라 먹는 습관을 바꾼 집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지만, 그이들의 생활 방식을 따를 생각이 없었고, 그이들도 우리 방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르게 사는 데 동의했으면, 서로의 독특한 취향을 인정했다. 그이들은 자기들 전통을 지켰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계획에 따라 버몬트 사람답지 않게 살았다.
-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 169~171쪽
(나) 밀에 따르면 관용이 없는 사람들은 남들도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고, 자신의 습관과 믿음을 남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생활양식이 발달하도록 자유를 허용하는 편이 인류 공동체에 더 큰 이득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생활양식을 실험함으로써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밀의 발언은 어느 한 사람의 삶과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도 그 사람에게 명령을 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이지만, 인간의 생각과 본능을 단단히 얽어매지 않으면 땅 속의 악귀들이 밖으로 튀어나온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말이다.
그러나 관용은 자유주의의 핵심일 뿐 아니라 역설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자유주의는 서로 대립하는 견해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권리가 있다. 서로 대립하는 견해 중 어느 쪽이 이길지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결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결과 관용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치, 도덕, 종교 등의 분야에서 엄격한 원칙과 비타협적 견해를 취하는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자유주의자를 억누르려 한다. 자유주의라는 본성에 의해 그들이 행사하고자 하는 헤게모니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용은 불관용마저 관용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반드시 “아니오”이어야 한다. 관용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쉽다. 누구든 자신의 견해를 주장할 수 있지만 아무도 남에게 강요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논증만이 유일한 강압이어야 하며, 정직한 추론만이 유일한 의무여야 한다. 헬렌 켈러는 일찍이 “교육의 가장 좋은 결과는 관용”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옳은 이야기이다. 대개의 경우 현명한 정신과 편견 없는 추론은 참되고 좋은 것을 자연스럽게 찾아가게 마련이다.
불관용은 불안과 공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광신도들은 흔히 타인을 박해하고 자신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면서도 그것이 그들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하는 진짜 이유는 스스로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여자들에게 베일을 씌워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교육과 직업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여성의 자유를 겁내기 때문이다. 노인이 젊은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소중한 가치를 젊은이들이 무관심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두려움은 불관용을 낳고 불관용은 두려움을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그러나 관용과 불관용이 반드시 수용과 거부의 형태를 취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어떤 믿음이나 관습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관용을 베푸는 것은 가능하다. 관용은 다양한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타인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을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관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남들을 제대로 관용할 수 있다.
-A. C. 그레일링,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21~23쪽
(다) ‘부자가 3대 가기 힘들다’는 옛말을 무색하게 만든 경주 최부자 가문은 고운 최지원의 19세손인 최국선(1635~1682)으로부터 28세손인 한말의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그 부를 유지했다. 이렇게 장기간 한 집안이 부를 유지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최부자 집안이 칭송을 받는 것은 부를 많이 축적했고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자선 활동과 사회 공헌으로 지도층의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부자 집안의 모범은 한두 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집안의 전통으로 전해내려 온다는 점에서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중략)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양반으로서 신분은 유지하되 권력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의미이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지위는 필요하나 권력까지 가질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도 되겠다. 요즘 식으로 해석하자면 정경유착은 피하라는 교훈도 될 것이다. 과거를 보라는 것은 학문을 가까이 하여 지적 능력을 기르라는 가르침이다. 지식과 최소한의 신분 유지로 부는 지키되 권력은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은 오늘날의 자본가들에게도 금과옥조 같은 교훈이다.
2)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마라
대단히 역설적인 가르침이다. 부잣집의 가훈이라면 재산을 늘리라고 가르칠 것 같은데 최부잣집의 유훈은 정반대이다. 그러나 이 집안이 존경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가르침 때문이다. 최부잣집의 후손들은 이 상한선을 지키기 위해 부에 대한 욕망을 절제해야 했다. 그들은 이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소작률를 낮추어서 부의 혜택이 자연스럽게 남들에게로 퍼져나가게끔 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수확물의 절반을 지대로 주는 병작반수제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소작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키웠던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소작인들은 더욱 열심히 일했고, 최부잣집의 재산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윈-윈 전략의 선구적인 실천이었다고나 할까. (중략)
5)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이웃과 나누라는 가르침이다. 그것도 사방 백리 안의 이웃과 나누라는 것은 그 스케일 면에 있어서도 로마제국 귀족들의 선행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규모이다. 최부잣집은 춘궁기나 보릿고개가 되면 한 달에 약 100석 정도의 쌀을 이웃에 나눠주었고, 흉년이 심할 때는 약 800석이 들어가는 큰 창고가 바닥이 날 정도로 구휼을 베풀었다고 한다. 소작수입의 3분의 1을 빈민 구제에 썼다는 것이다. 최씨 집안의 이러한 전통은 1대 부자인 최국선의 선행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최국선은 신해년(1671)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주변 사람이 굶어죽을 형편인데 나 혼자 재물을 지켜서 무엇 하겠느냐”며 곳간을 헐어 이웃을 보살폈다고 한다. 그 이후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르침이 가훈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종석, <노블레스 오블리주-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 2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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