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자유 요구가 고등학교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이유는 머리카락이 인류 역사에서 지녔던 의미와도 무관하지 않다. 사진은 청소년들이 ‘두발규제가 청소년들에 대한 가장 대표적이고 폭력적인 억압’이라고 외치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권희정 교사의 삶,사유,논술/ [난이도 = 고등]
방학이 주는 자유로움 탓인지 학생들의 머리 모양에 변화가 늘었다. 특기적성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간간히 손거울을 보는 모습들. 규정보다 긴 머리 또는 웨이브 퍼머 모양을 감추느라 머리들을 질끈 동여매고 앉아 있다. 그러나 달라진 인상마저 감추어지랴. 꽃다운 나이는 사소한 꾸밈에도 새 빛을 뿜는다.
걸리면 혼날 것을 감수하고도 머리모양에 대한 학생들의 집착은 매우 크다. 교칙 건의사항의 1순위가 언제나 두발 규정인 걸 보면, 그저 머리카락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유행하는 머리 모양에 따라 구체적인 규제 내용은 달라지지만, 학교에서 ‘학생다운 머리’에 대한 견해 차이는 늘상 평행선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두발 제한은 생활지도의 중심축이다.
인간은 ‘털 없는 원숭이’이면서도 유독 과도하게 발달한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류는 오래전부터 팔뚝위의 털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체계를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신화를 보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부드러운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등장하고, 인도의 시바신은 우주가 진행되는 방향으로 긴 머리카락을 흘러 보낸다. 머리카락은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우주의 에너지를 나타내는 상징체계인 셈이다.
특히 여성의 머리카락은 성적 매력과 맞닿아 있다. 12세가 되어 높은 탑에 갖힌 라푼젤은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지만,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왕자님과 만난다. 건강하고 풍성한 머리는 라푼젤의 처녀성을 의미한다. 우리 전통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처녀는 길게 땋아 댕기머리를 내보이다가 결혼을 하면 쪽을 지고 더 이상 머리카락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머리카락에서 느낄 수 있는 여성성을 단속한 탓이다.
반면 남성의 머리카락은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 삼손의 힘을 빼앗은 건 전쟁이 아니라 일곱 갈래의 머리카락을 잘라낸 데릴라의 가위질이었다. 물론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을 때 그는 힘을 되찾았다. 고대 멕시코에서 머리카락은 신이 거주하는 곳이다. 아즈텍 성직자들의 머리카락은 다리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도 매우 머리가 길었는데, 머리를 깎인다는 것은 왕위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이다. 머리카락은 용기와 지도력을 보여주고 권위의 기반인 정통성의 표식이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규제하는 방식 속에는 다양한 문화의 코드가 숨어 있다. 성적 유혹의 치명적 기능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이다. 뱀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보는 자는 돌로 변한다. 인간의 욕망을 경고하는 포스터가 아닐까. 신에게 영혼을 바치기로 맹세한 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수녀와 이슬람 여인들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불교의 스님들은 완전 삭발을 한다. 머리카락을 제어함으로써 속세 인간의 욕망을 떠나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한편 중세 기독교의 성직자들은 둘레 머리를 원형으로 남기는 부분 삭발을 하였다. 원의 형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의 속성을 표현하며 그의 대리인으로 살겠다는 언어이기도 했다.
머리카락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자발성의 여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발적 삭발은 종종 슬픔을 표현한다. 그리스 신화의 오레스트는 아버지의 무덤에 머리카락을 바쳤고, 많은 전통 부족에서는 장례식에 머리를 깎으며 죽은 자에게 존경을 표했다. 또한 시위와 봉기에서 거행하는 삭발은 극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저항의 표시이다. 반면 강제 삭발은 모욕과 예속의 증거이다.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뿐 아니라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를 다룰 때 머리부터 깎았던 오랜 관행은 그들의 인격을 박탈하겠다는 적극적 조치이다. 여성들이 싸울 때 종종 볼 수 있는 머리채 잡기도 머리카락을 강제하겠다는 심리적 표출이기도 하다.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자라고 수가 매우 많으며, 뽑힐지언정 잘 끊기지 않는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풍요와 무성함, 비옥함을 상징한다. 농경 사회에서는 머리카락을 빗는 일을 밭을 가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식물의 은유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여인들은 식물을 다루듯 머리카락을 길고 굵게 땋아 다산성을 기원했다. 영화 <천녀유혼>의 여주인공이 긴머리를 가진 나무의 정령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자들의 대머리가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도 늙어가면서 겪게 될 생명의 소진을 두려워하는 마음 탓이다. 물론, 늙음이 무조건 거부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백발의 노인은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 지혜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머리카락의 의미는 그 숫자만큼이나 복잡하다. 그러나 문명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의미가 크게 바뀌기도 하였다. 전통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관례적 표현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수단이 되었다. 예전에는 머리모양을 통해 직업과 신분, 민족을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머리 모양을 통해 어떤 관직인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 대신, 얌전한지 개방적인지 또는 학구적인지 활동지향적인지를 알려준다. 모발 관리는 각자의 정체성과 이상적 이미지를 대변하는 문화활동의 수단이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카락으로부터 문명성을 의식한다. 현대인은 선사시대 사람들을 떠올릴 때 머리를 풀어헤친 산발한 사람들로 표현한다. 그러나 고대인들도 두발관리에 상당히 공을 들였던 점을 생각하면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머리카락에 대한 애정을 각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카락은 영혼이 거주하는 곳을 덮어주고 보호하는 신성한 영역의 수호자였을 테니까.
1895년 고종황제에 의해 시행된 단발령은 근대 문명으로 들어서는 문이었다. 1930년대 시인 김기림은 근대 초기를 일컬어 ‘단발의 시대’라 명명했다고 한다. 머리 모양의 변화가 삶의 기준과 인식틀의 근본적 변화를 대변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봉건적 신분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를 상징했던 단발령이 현대 학교에서는 개성 표출을 제한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공부에 방해되는’ 두발 자유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보시키고 있다. 앞으로 학교는 점점 더 비틀거리리라. 학생들의 소년기는 길어지는데 신체 발육은 점점 빨라지고 있는 탓이다. 교사와 학생이 언제까지 대리전을 치러야 할까. 어찌하면 좋을 것인지 심층을 보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머리카락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자발성의 여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발적 삭발은 종종 슬픔을 표현한다. 그리스 신화의 오레스트는 아버지의 무덤에 머리카락을 바쳤고, 많은 전통 부족에서는 장례식에 머리를 깎으며 죽은 자에게 존경을 표했다. 또한 시위와 봉기에서 거행하는 삭발은 극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저항의 표시이다. 반면 강제 삭발은 모욕과 예속의 증거이다.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뿐 아니라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를 다룰 때 머리부터 깎았던 오랜 관행은 그들의 인격을 박탈하겠다는 적극적 조치이다. 여성들이 싸울 때 종종 볼 수 있는 머리채 잡기도 머리카락을 강제하겠다는 심리적 표출이기도 하다.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자라고 수가 매우 많으며, 뽑힐지언정 잘 끊기지 않는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풍요와 무성함, 비옥함을 상징한다. 농경 사회에서는 머리카락을 빗는 일을 밭을 가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식물의 은유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여인들은 식물을 다루듯 머리카락을 길고 굵게 땋아 다산성을 기원했다. 영화 <천녀유혼>의 여주인공이 긴머리를 가진 나무의 정령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자들의 대머리가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도 늙어가면서 겪게 될 생명의 소진을 두려워하는 마음 탓이다. 물론, 늙음이 무조건 거부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백발의 노인은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 지혜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머리카락의 의미는 그 숫자만큼이나 복잡하다. 그러나 문명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의미가 크게 바뀌기도 하였다. 전통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관례적 표현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수단이 되었다. 예전에는 머리모양을 통해 직업과 신분, 민족을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머리 모양을 통해 어떤 관직인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 대신, 얌전한지 개방적인지 또는 학구적인지 활동지향적인지를 알려준다. 모발 관리는 각자의 정체성과 이상적 이미지를 대변하는 문화활동의 수단이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카락으로부터 문명성을 의식한다. 현대인은 선사시대 사람들을 떠올릴 때 머리를 풀어헤친 산발한 사람들로 표현한다. 그러나 고대인들도 두발관리에 상당히 공을 들였던 점을 생각하면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머리카락에 대한 애정을 각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카락은 영혼이 거주하는 곳을 덮어주고 보호하는 신성한 영역의 수호자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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