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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폭력을 이겨내는 인간의 ‘선한 기운’

등록 2008-01-27 15:24수정 2008-01-27 16:13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
[난이도 수준-고2~고3]

고야의 ‘5월 3일 (1814 )’과
‘이성의 잠은 요괴를 부른다’

고야의 판화집은 절대로 누워서 편하게 볼 수 없는 그림이다. 그것은 깊은 밤 천둥소리처럼 정신을 ‘콰과광 쾅’ 하고 울리며 벌떡 일어서게 만드는 숨막히게 무서운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고야의 일명 ‘검은 그림’은 폭력과 파괴, 정신적 공황의 잔혹사가 어둠의 무게로 덧칠해져있는 절망의 묵시록이다.

폭력은 여전히 곳곳에 산재해 있고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뼛속 깊이 증오할 수 있는가, 혹은 인간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힘의 논리로 지배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묵인하고 싶은 처참한 학살의 현장을 고야는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의 예리하고 정확한 시선은 모든 허위와 기만을 발가벗긴다. 그것이 종교든 권력이든 그는 에두르지 않고 직격탄을 날린다. 고야는 이것을 자신이 지닌 예술가적인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자신의 시대적 소명을 ‘이것을 나는 보았다’라고 단언한다.

폭력은 함께 일군 대지의 생산물들을 인정하지 않게 하고 힘에 의존해 어느 한쪽이 강제로 탈취해 대다수 사람들에게 공포와 절망을 안겨준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반사회적이다.

인류가 다행히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은 그나마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폭력은 권력을 동반한 다양한 외피와 화려한 수식을 하고 있어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인류의 역사가 폭력을 휘두르는 주체와 폭력에 희생당하는 객체로 이분화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대립하면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 사이 폭력은 수많은 희생양의 피를 뿌리며 점철해오고 있다.


고야는 폭력의 실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림을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그렸다. 그림은 ‘5월 3일(1814)’
고야는 폭력의 실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림을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그렸다. 그림은 ‘5월 3일(1814)’
사람들은 폭력을 막기 위해 크게 두 가지 방안에 합의한다. 폭력을 개인의 도덕성에 기초해서 막아보려는 시도는 결국 폭력에 무저항해 스스로 자멸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연대하거나 조직화해서 막아보려는 노력은 또 다른 덫에 걸려 좌초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오래 전부터 들어온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게 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라는 식의 명제는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다. 그러다보면 결국 개인이 선택할 방법은 체념과 망각밖에는 없다.

그러나 체념하고 망각한다고 해서 폭력이 근절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고야는 생각했다. 오히려 폭력의 실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행위가 폭력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내는 시작이라고 그는 ‘5월 3일(1814)’를 통해 강변한다. 그림 왼편에 흰옷을 입고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두 눈을 부릅뜬 사내가 있다. 그의 오른손 바닥에는 못자국이 있다. 그는 메시아다. 그리고 메시아에게 총검을 겨누고 있는 반대편의 군사들은 얼굴이 없다. 그들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인간성을 포기한 살인병기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이 잔혹한 처형을 곧 기계적으로 실행에 옮길 것이다. 고야는 이 그림을 통해 민중들의 숭고한 저항을 그림 속에 담아냄과 동시에 그들을 살해한 자들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이렇게 우리 앞에 바짝 들이민다. 폭력을 거부하는 민중의 저항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있다.

고야의 첫 연작집 ‘변덕’에 있는 판화 중에 특히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 있다. ‘이성의 잠은 요괴를 부른다.’ 이 에칭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글을 쓰던 작가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추악한 현실을 고발하고 진실의 승리를 만천하에 알리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그의 이성이 잠에 빠져있는 동안 주변의 요괴 같은 비이성적인 현실이 무기력한 작가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럴수록 박쥐들은 활개 치며 난장판을 만든다. 이런 타락한 세상이 주는 끝없는 열패감이 어쩌면 작가를 오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성이 잠들기를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고야는 분명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하나같이 불쾌한 죽음과 흡혈의 냄새가 난다는 사실도….

고야는 말한다. 폭력이 인간에게 강요하고 있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많은 파괴적인 국면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는 힘은 인간에게 내재한 ‘선한 기운’과 ‘이성적 판단능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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