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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영어 수동태와 우리말 피동문

등록 2008-02-03 15:23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김철호의 교실밖 국어여행 /

[난이도 = 중등~고1]

14. 능동과 피동 ①

15. 능동과 피동 ②

16. 능동과 피동 ③

우리말의 피동문에는 피동사와 피동형이 있다고 했다. 피동사는 동사의 어간에 ‘이, 히, 리, 기’를 붙여서 만드는데, 이렇게 피동사가 있는 동사의 경우에는 ‘-아/어지다’가 붙는 피동형을 쓰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 까닭은 이쪽이 음절이 하나 적어서 발음하기에 더 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보이다’가 있으니 ‘보아지다’ 같은 표현은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원칙에 따라 우리는 ‘먹어지다’ 대신 ‘먹히다’를, ‘밀어지다’ 대신 ‘밀리다’를, ‘쫓아지다’ 대신 ‘쫓기다’를 쓴다. 이게 정상적인 한국어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있다. 즉, 경우에 따라서는 ‘먹히다’ 대신에 ‘먹어지다’ 같은 표현을 쓸 때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돌같이 딱딱해서 씹히지 않거나 플라스틱같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 몸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먹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쇠로 된 숟가락을 먹으려고 한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친구가 “그게 먹어지니?” 한다. 이때 “그게 먹히니?”는 왠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경제성을 좇아 ‘-아/어지다’에서 ‘이, 히, 리, 기’로 변화해온 한국어의 진화 과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듯한 이런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흔히 영어의 수동태에 해당하는 것이 우리말의 피동문이라고들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한 오해다. 지난 시간에, 영문법에 대한 지식을 뛰어넘는 한국어 문법 지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영어와 한국어는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피동도 마찬가지다. 우리말의 피동은 영어의 수동태하고 사뭇 다르다.

잘 알다시피 영어에서 수동태를 만들려면 ‘be’ 동사에 본동사의 과거분사형을 이어 붙이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본동사는 반드시 타동사여야 한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 같지만, 한국어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즉, 우리말에서는 자동사에도 피동형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경우일까.

‘가다’와 ‘놀다’는 목적어를 취하는 경우가 없으니 둘 다 자동사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동사도 피동형으로 표현하는 때가 있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마음만 그렇지 잘 가지지가 않아.” “한참 어린 애들하고 놀려니 잘 놀아지지가 않아.”

앞에서 예로 든 ‘먹어지다’와 방금 언급한 ‘가지다’ ‘놀아지다’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즉, 어떤 행동의 가능ㆍ불가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어떤 행위의 가능성 여부를 표현할 때에는 피동사 대신 피동형을 쓰는 게 자연스런 한국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가지다’ ‘놀아지다’같이 자동사를 피동형으로 쓰는 대목이다. 이런 어법은 우리말에서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별이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어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인사말을 제외하면 타동사가 나왔을 때 목적어를 생략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타동사라도 얼마든지 목적어를 생략할 수 있다. 영어 시간에 배운 문법 지식으로 우리말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영어는 영어, 우리말은 우리말이다.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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