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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반 신간이 대거 출간되었던 여파인지 중순으로 접어들자 신간의 양이 줄었습니다. 덕분에 뽑을 만한 책도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추천할 책이 줄면 기자는 쓸 양이 주니 편하게 기사를 마감할 수 있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볼 만한 책 대신 유행에 지나치게 편승하거나, 전형적인 스타일의 책이 널려 있는 시대. 유행에 맞추어 출판 전략을 짜는 것을 마냥 비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성격을 갖고 책을 출판하는 곳이 줄어든 현실은 씁쓸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을 고르다 보니 우연치 않게 한 분야에 전념하는 출판사의 책이 주로 선정되었습니다. 비록 『팝툰』은 2월 이후로 잠정 휴간되지만 씨네21의 만화 출판 사업은 계속 되어 오랜만의 한국 느와르 만화 「밝은 미래」 Vol. 1이 나왔습니다. 문학 전문 출판사의 임프린트로서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애니북스에서 60년대 재즈 키드의 청춘을 다룬 「언덕길의 아폴론」 1권이 나왔네요. 인문 / 사회 과학 전문 출판사인 후마니타스와 시대의창에서는 각각 ‘민영화’의 이름을 내걸고 정부에서 추진하는 의료 사유화 정책의 허상을 들춘 「의료 사유화의 불편한 진실」과 시민단체 희망제작소에서 개최한 불만합창 페스티벌의 시작과 끝을 다룬 「불만합창단」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벨기에 신진 작가 토마 권지그의 유쾌한 풍자 소설집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도 발간되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1월, 더 알차고 신나게 보내길 빌겠습니다. 신간이 준 여파로 양이 줄어 아쉬운 다이어리,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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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일정
만화 : 밝은 미래 Vol. 1 (이영곤 원작 · 각색 · 그림 / 진철수 · 이우열 그림 / 팝툰 / 9,500원)
내용과 상반되는 무척 역설적인 느낌의 제목이다. 뿐만 아니라 표지도 무척 역설적이다. 붓으로 써진 제목은 밝은 미래를 노래하고 있지만, 색깔과 두 주인공의 모습은 도저히 밝지 않다. 말과는 다르게 도저히 밝지 않은, 파멸과 절망으로 점철된 끝이 기다리고 있는 무척이나 어두운 미래의 모습을 예고한다.
어린 시절, 머리에 못이 박히는 기억과 학대를 받은 것 외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상실한 현태는 고아원에 맡겨진 후 보험사기꾼에게 팔려가지만 곧 자신을 산 이가 죽자 거리로 나서게 된다. 머리에 못이 박혀 시각과 청각 외에는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현태는 아픔을 느끼지 못해 곧 타고난 싸움꾼이 된다. 어른이 되어 종로 보석 가게의 보디가드가 되지만 그는 결코 편하지 않다. 세력이 점점 커가는 현태를 의식하는 윗분, 그의 잃어버린 과거와 얽힌 일련의 세력들. 밝은 미래를 꿈꾸지만 세상은 그의 바람대로 흐르지 않는다.
현재 씨네21의 월간 만화 잡지 『팝툰』에 연재 중인 이 만화는 곧 완결을 앞두고 있다. 다만, 완결을 맺기 전에 잡지가 먼저 작별을 고할 예정이다. 스포츠 신문과 대본소나 만화방의 일일만화, 그리고 소수의 웹툰 빼고는 성인을 위한 성숙한 내용의 만화를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밝은 미래」 등이 작품이 연재되었던 『팝툰』은 미숙하지만 알찬 터전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잠정 휴간’이지만 언제나 잡지는 다시 돌아올까. 2008년 GDCA(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제작 지원 작품.
인문 · 사회 과학 : 의료 사유화의 불편한 진실 (김명희 외 7인 / 후마니타스 / 10,000원)
4대강과 지방 선거 이슈에 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한국인의 건강과 직결된 사안이 있다. 의료 사유화 문제이다. 사업을 추진하는 보건복지가족부 측에서는 ‘의료 민영화’나 ‘의료 환경 선진화’ 등의 용어를 쓰고 있으나 실상은 건강 보험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기업에 의료 이권을 나눠주는 ‘의료 사유화’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권리 침해를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진보신당 건강위원회, 노동건강연대, 건강연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등의 정당과 시민 사회에서 전문적으로 의료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일곱 명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든 이 책은 직접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의료 사유화’로 규정짓고 문제점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비록 과장되었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가장 급진적으로 건강 보험이 민영화된 국가, 미국의 실태를 낱낱이 보여준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는 반드시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물론 건강 보험 시장을 기업들에게 전면적으로 여는 순간 관련 산업은 성장할 것이다. 계속 홍보물에서 주장하는 것대로 의료 관광국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의료 관광국으로 손 꼽히는 태국이나 인도가 합리적인 정치를 구현하는 나라라는 소리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단순히 산업이 성장한다 해서 좋은 나라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 빨리 깨달으면 안 될까.
주간 일정
문학 (일반 문학 / 장르 문학 / 라이트 노블 / 자서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 (토마 권지그 /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10,000원)
직설적으로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때로는 풍자적으로, 우회적으로 유머스럽게 ‘까대는’ 감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그 매체가 문학이라면 더욱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은 추악한 행동을 일삼는 남자들의 내면을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을 통해 속속들이 파헤친다. 부부 싸움을 일으키는 남편, 머리 속이 텅빈 무기력남, 성적 판타지에 사로잡힌 남자. 하나같이 어딘가가 결여된, 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남성들의 모습이다.
그들 각자에게 괴이한 사건이 벌어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있던 남자들은 어쩔줄 몰라 당황하고 좌절한다. 그 당황과 좌절 속에 독자들은 통쾌함을 느끼고, 입에서 실실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여성들을 노린 소설집이지만, 평소에 짜증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널려있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남성들이 읽어도 괜찮은, 매우 유쾌한 작품이다.
인문 · 사회 과학
불만합창단 (김이혜연 · 곽현지 / 시대의창 / 14,500원)
일상 생활 속에 겪는 수많은 불만들을 합창으로 전한다. 참 신선한 발상 아닌가? 핀란드에서 창안하고, 2005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불만합창단’은 세계 곳곳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불만을 경쾌한 노래를 통해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3년 후 2008년, 참신한 시도로 사회 혁신을 노리는 시민 사회 단체 희망제작소에서는 불만합창단을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렇게 해서 전국 각지에 여덟 개의 팀이 탄생. 그리고 10월, 한 자리에 모여 각자가 느꼈던 불만을 노래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불만을 참고 마음 속 깊이 꾹꾹 숨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병’이라는 질환이 생길 정도로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 속에 깊이 숨긴 온갖 불만들을 불만합창단은 노래로써 소통의 창구를 만들어 내었다. 불만을 창조적 수단으로 바꾸는 시도가 필요한 때이다. 희망제작소과 시대의창이 함께 만드는 ‘희망제작소 희망신서’ 2권.
만화
언덕길의 아폴론 (코다마 유키 /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8,000원)
ⓒ 코다마 유키 / 김은희 / 문상미 / 애니북스 (문학동네)
세계 재즈 음악계를 보면 가끔 일본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1960년대 이후로 빠르게 성장한 일본의 재즈 음악 시장. 그 안에는 재즈에 인생을 바친 청춘이 있었고, 뜨거운 열정이 넘쳐 흘렀다. 한국에는 작년 「백조 액추얼리」, 「빛의 바다」로 처음 소개된 코다마 유키의 첫 장편작인 「언덕길의 아폴론」은 1960년대 일본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당시 일본을 강타한 재즈붐과 함께 청춘을 엮은 흥미로운 만화이다.
계속 되는 전학에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은 부잣집 도련님 카오루, 선배들에게도 문제아 소리를 듣지만 재즈에는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센타로,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다정하게 지켜보는 리츠코. 섞이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셋은 재즈에 빠져든 어느 순간, 끈끈하게 엮인 사이가 된다. 2009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 부문 1위에 오른 생생한 수작.
기타 일정
문학 (일반 문학 / 장르 문학 / 라이트 노블 / 자서전)
피그맨 (폴 진델 / 정회성 옭김 / 비룡소 / 9,000원) - 1968년에 나온 청소년 소설의 고전, 이제서야 한국에 소개되다. 청소년을 하나의 인격체로 그린 최초의 소설이기도 하다.
취미 일정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 (오렌 펠리 감독 / 케이티 피더스턴 주연 / 1월 13일 개봉) -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좋은 수작은 나오기 마련이다. 집 안에 숨어있는 누군가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그려낸 페이크 다큐멘터리. 화질은 나쁘지만, 오히려 그 점이 공포를 배가한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 (민환기 감독 /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주연 / 1월 14일 개봉) - 어렸을 적 부터 음악을 하고 싶던 감독이 인디 밴드 ‘소규모아카시아밴드’와 함께 하며 그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갈등과 성공, 그리고 음악적 고민 속에서 밴드와 감독은 함께 자란다.
페어 러브 (신연식 감독 / 안성기 · 이하나 주연 / 1월 14일 개봉) - 오십이 넘도록 연애도 못하고 친구에 사기를 당해 무일푼인 남자에게 어느 날 자기에게 사기를 친 친구 녀석의 딸이 찾아온다. 기묘한 관계지만 서서히 둘은 나이의 차를 잊고 사랑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을 주목하라.
성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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