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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재판부 자의적 해석에…유·무죄 갈리는 ‘양심’

등록 2021-06-24 04:59수정 2021-06-24 08:01

‘양심’ 판단 기준 제시에도…
법원 ‘다른 잣대’ 진정성 부정
종교가 아닌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홍정훈, 오경택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선고가 내려진 2월 25일 낮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군인권센터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회원들과 당사자들이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종교가 아닌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홍정훈, 오경택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선고가 내려진 2월 25일 낮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군인권센터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회원들과 당사자들이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회복지사인 ㄱ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뒤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 2011년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이 벌어진 제주 강정마을에서 활동하며 평화주의 신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그는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군사훈련을 포함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한 만큼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같은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ㄴ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양심과 타협”해 현역병으로 입대했지만, 군사훈련 등을 받으며 ‘실제 전쟁이 벌어져도 적에게 총을 쏠 순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겨 제대 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됐다고 했다. 재판부는 ㄴ씨가 이런 양심을 갖게 된 개인적 경험, 입대 뒤 ㄴ씨가 느꼈던 후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최근 2년간 종교와 무관한 양심적 병역거부로 확정판결을 받은 사례 11건을 분석해보니, 재판부가 ‘양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재판부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고, 또 다른 재판부는 양심 형성 과정에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는 이유로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진실하지 않다며 배척했다. 검찰의 ‘십자가 밟기’ 식 신문에 모호한 답변을 했다는 점을 들어 “양심이 유동적”이라고 판단한 경우도 있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양심’이란 ‘선한 마음’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다. 2018년 11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의 판단 기준으로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런 양심의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법관은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 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 등을 바탕으로 판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양심의 무게’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 것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입대를 거부하고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 확정판결을 받은 홍정훈(32)씨 사건에서 법원은 양심의 무게가 아니라 ‘양심의 내용’에 초점을 맞춰 판결했다. 재판부는 “(홍씨의 양심이) 비폭력·평화주의보다는 주로 권위주의적 문화에 대한 반감에 기초하고 있다”고 판단해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집총 및 군대 내 권위주의에 대한 반대 모두 비폭력주의에 해당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전반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홍씨의 양심이 얼마나 깊고 확고하고 진실한지를 가리기보다는 특정 대목을 부각해 양심을 판단한 셈이다. 홍씨는 최근 <한겨레>와 한 옥중 서면 인터뷰에서 “현대 사회에선 모든 종류의 물리적·비물리적 폭력을 금지하고 처벌하는데, 오로지 군대만 폭력을 정당화하고 상급자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한다”며 “비폭력주의자로서 권위주의 거부를 강조한 것이었는데, 법원이 양심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아 깊은 좌절을 느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1년6개월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인 오경택씨의 경우는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들이 총을 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검찰 신문에 ‘폭력 행위라고 비판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양심의 진실성을 부정했다.

또 다른 재판부는 양심이 형성된 ‘계기’를 평가해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2017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지난해 10월 실형이 확정된 ㄷ씨 사건에서 재판부는 그의 양심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보고 남과 다른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유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ㄷ씨가 양심 형성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건은 널리 알려진 것이거나 대중매체물,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가 발간한 저서”라며 “그것만으로 ㄷ씨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확고한 신념을 형성하게 됐다고 보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양심은 개인마다 형성되어 유지되고 실현되는 과정과 모습이 서로 다르고, 그 동기와 내용 역시 다양하다”며 양심을 형성하게 되는 동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지만, 재판부는 이와 배치되는 판결을 한 것이다.

신민정 조윤영 기자 shin@hani.co.kr

▶바로가기 : “나의 신념은 아직도 시험받고 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0492.html
▶바로가기 : 극단적 상황 가정한 채 ‘이래도 총 안들래’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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