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홍정훈, 오경택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선고가 내려진 지난 2월25일 낮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군인권센터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당사자인 홍정훈(왼쪽 첫째), 오경택(왼쪽 셋째)씨가 '양심은 처벌할 수 없다'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본인·실명 인증 내역’, ‘문자메시지·통화 내역’, ‘웹하드 다운로드 내역’, ‘게임 회원가입 내역’. 이는 검찰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서 수집한 개인정보 가운데 일부다.
<한겨레>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4명에게 받은 2019~2021년 작성된 검찰 사실조회 신청서를 종합해보니, 검찰은 대법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병역거부를 처음 인정한 2018년 11월 이후부터 병역거부자의 진술을 반박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 이용 내역 조회를 위한 사실조회 신청이었다. 현역병 입대를 거부한 시우(활동명·34)씨의 검찰 사실조회 신청서에는 2019년 2월 게임업체 9곳에 그의 회원가입·로그인·게임서비스 등 이용 내역 일체를 조회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의 ‘양심’을 판단하기 위해 총기 등 무기를 사용하거나 폭력 등을 소재로 한 게임을 한 적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조처였다. 현역병 입대 거부자인 홍정훈(32)씨 사건에서도 검찰은 그해 4월 게임업체 3곳에 홍씨의 아이디, 게임명, 게임 가입 시기, 게임 접속 및 이용 시간을 조회해달라고 요구했다.
웹하드 다운로드 콘텐츠를 둘러싼 사실조회 신청도 단골로 등장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과 지난 1월 웹하드 업체 13곳에 각각 시우씨와 예비군 훈련 거부자인 김형수(33)씨가 구매하거나 다운로드한 콘텐츠를 모두 조회해달라고 했다. “여호와의 증인 교리상 폭력물, 음란물의 시청은 엄격히 금지된다”고 검찰은 밝혔으나,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니었다. 검찰은 지난달 예비군 훈련 거부자 조성현(34)씨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웹하드·게임업체에 대한 사실조회를 재판부에 신청했다가 “적절하지 않다”며 웹하드 업체를 신청 대상에서 뺀 적도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휴대전화 사용 내역과 기지국 위치 등의 정보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시우씨의 2019년 5월부터 1년치 통화 내역과 문자메시지 송수신 내역, 기지국 위치 정보 등이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신용정보업체인 나이스평가정보에 신청해 김형수씨가 2017~2020년 카드사·은행사·보험사 등에서 본인 인증한 기록도 전달받았다. 병역거부와 관련 없는 정보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공권력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 위원인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는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은 수사 목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는 흠집 내기나 꼬투리 잡기 식 접근으로 또 다른 인권침해를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초점을 벗어난 개인정보 수집은 공권력의 오남용”이라며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대하는 국가의 검증 기준과 태도 자체가 적절한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피고인이 소명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고 실질적 심리가 이뤄진다면 피고인에게도 유리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사실조회 결과는 단 한차례도 병역거부자들에게 유리한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바로가기 :
“나의 신념은 아직도 시험받고 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0492.html
▶바로가기 :
극단적 상황 가정한 채 ‘이래도 총 안들래’ 유도한다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04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