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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디자이너 도그

등록 2016-03-04 20:51수정 2016-03-06 11:02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선생님~ ‘코카푸’를 키울지 ‘퍼글’을 키울지 고민돼요. 아니다, 폼피츠가 나은가.”

“무슨 푸요?”

“코카푸요, 코카푸. 쌤, 요즘 인기 엄청 많은 품종인데?”

코카푸(cock-a-poos)는 코커스패니얼과 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란다. 그런 조합이면 퍼글은 퍼그와 비글 사이의 2세일 거다.

요즘은 믹스견, 잡종견이라는 표현 대신에 ‘하이브리드 도그’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처음에는 이런 코카푸가 단순히 그런 혼혈종을 귀엽게 부르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예전에 말티즈(몰티즈) 중에 순종이라고 하기엔 살짝 애매한 긴 입과 큰 덩치, 얼룩덜룩한 털을 가진 강아지를 말티즈와 발바리 사이에서 태어난 품종이라는 의미로 농담처럼 ‘말바리’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으니까.

몇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디자이너 도그라고 각기 다른 품종의 개를 교배시킨 품종이 유행을 하고 있는데, 요즘 우리나라에도 인터넷에서 이런 아이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 올려지는 외국 블로그에는 특이한 하이브리드 도그가 종종 소개되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디자이너 도그’ 혹은 ‘하이브리드 도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들은 코카푸 외에도 래브라두들(Labradoodles: 래브라도리트리버와 푸들의 혼혈), 폼피츠(포메라니안과 스피츠의 혼혈) 등 다양했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였다. 강아지의 품종에 유난히 집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또다른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자리잡는 계기가 된다는 말에 솔깃했다. 품종견이 진짜 순수혈통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문화에서 디자이너 도그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이브리드 도그가 유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혼혈종에 대한 차별도 없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물 분양업자들의 생각은 달라 보였다. 그들에게 디자이너 도그와 잡종견은 달랐다. 자기들이 ‘디자인’한 또 하나의 품종이라는 주장이었다. 소위 말하는 ‘잡종’은 어떤 품종이 섞였는지 모르지만, 디자이너 도그는 혈통이 확실한 부모에게서 디자인된 품종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카푸는 코커스패니얼처럼 귀여운 외모지만 푸들처럼 털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푸들이 털이 빠지지 않는 품종이니 푸들과 다른 품종을 혼합해 더 나은 품종으로 개량된 새로운 품종이란 말이다. 심지어 이렇게 디자인된 하이브리드 도그는 몇백만원에 팔리기도 한다는 말에 놀랐다.

보호소에 가면 믹스견들은 품종견보다 항상 입양 선호도에서 밀린다. 보호소에서 입양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똑같이 생긴 퍼글, 코카푸는 100만원이 넘는 가격을 주고 산다니 이건 대체 무슨 심리일까.

사역견으로 오래전부터 길러온 몇몇 품종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흔히 보는 품종의 대부분은 만들어진 지 200여년도 안 되었다. 19세기 영국에서 우생학이 유행을 하면서 귀족들의 놀이로 브리딩이 시작된 거다. ‘난 얼굴이 납작하게 눌리고 머리가 큰 개를 만들어봤다’, ‘난 주둥이가 뾰족하고 좀더 작은 개를 디자인했다’고 서로 자랑하면서 경쟁하듯 만들어냈다. 이런 식의 기묘한 신놀음이 만들어낸 것이 품종견, 즉 ‘순종’이다.

한 연구를 보면, 퍼그 1만마리가 고작 50마리 정도만큼의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합스부르크 왕국에서 근친혼으로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다가 병들어버린 것도 퍼그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사람은 이런 순수혈통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고 피하지만 유독 개에서는 알고도 모른 척한다. 순종이 혼혈종보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귀여우니까’ 모른 척한다. 이런 우리의 생각이 디자이너 도그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괴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면 억지스러운 디자이너 도그를 쳐다보지 말고 보호소를 가서 세상에 하나뿐인 ‘하이브리드 도그’를 데려오자.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하이브리드 도그. 하느님이 디자인한 ‘디자이너 도그’.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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