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은 디자인으로 경쟁한다. W호텔(왼쪽), 밀레니엄 서울 힐튼(오른쪽 위), 신라호텔(오른쪽 아래)
[매거진 Esc]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⑥
디자인·음악·인테리어는 물론 냄새까지 ‘브랜드화’ 경쟁하는 시대
디자인·음악·인테리어는 물론 냄새까지 ‘브랜드화’ 경쟁하는 시대
호텔은 전통적으로 그저 머무는 공간이었습니다. 대부분 호텔의 겉모습이 비슷했어요. 스타일이나 디자인에서 다를 게 없었죠. 아시아에서만 그랬던 건 아녜요. 불과 20년 전까지 유럽의 호텔들도 서로 구분이 안 됐어요. 그러다 호텔들 사이에 스스로 다른 경쟁 호텔과 구별지으려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호텔은 내외부의 디자인을 전통 양식에서 현대적으로 ‘스타일리시’하게 개조했죠. 어떤 호텔은 건물 외관에서 튀려고 노력했고요. 또다른 호텔은 식음료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모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것을 찾았죠.
다른 호텔을 다니며 벤치마킹 연구
저 같은 경우는 10년 전부터 호텔은 ‘섹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디자인이 매혹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각 호텔들이 자기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건 각자의 등급에 따라 달라져요. 레저에 초점을 맞춘 호텔, 사업가를 위한 호텔, 나이든 세대를 위한 호텔, 젊은 세대의 호텔 …. 한마디로 호텔 브랜드는 ‘삶의 방식’인 것이죠. 그게 아니면 호텔은 그저 (자기만 하는) 호텔일 뿐입니다. 그래서 호텔들은 브랜드화에 힘을 씁니다. 브랜드화는 호텔 사업에서 매우 중요해요. 여기에는 호텔에서 맡는 냄새·음악·디자인·인테리어 등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특급 호텔들 사이 경쟁은 아주 치열합니다. 제가 괌 하얏트에서 근무하던 1993년 일이에요. 제가 몸담은 하얏트는 개업을 막 석 달 앞둔 그야말로 최첨단의 호텔이었습니다. 다른 특급 호텔들은 낡은 편이었죠. 그러다 그해 진도 8.3의 대지진이 일어났어요. 말도 마세요. 1분 동안 덜덜 떨었습니다. 우리 건물은 아무 피해가 없었지만, 한 경쟁 호텔 지붕에 금이 갔습니다. 그 호텔은 1년 동안 문을 닫고 받은 보험금으로 내부 수리에 들어갔어요. 그들은 우리를 포함한 다른 경쟁 호텔들의 시설과 외관을 모두 공부했어요. 그리고 나서 모든 객실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뜯어고쳤어요. 기술 장비도 싹 바꿨죠. 우리가 개업하고 나서 열 달 뒤 그 호텔은 문을 열었어요. 아주 훌륭했습니다.
누가 더 훌륭한 호텔 바를 뒀는지 경쟁한 적도 있습니다. 2002년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에 있는 한 호텔에서 근무했어요. 그때 제가 일했던 호텔 바는 인기가 높았죠. 우리와 경쟁하던 ‘럭셔리’ 스타일 호텔에도 꽤 인기 많은 바가 있었죠. 그러자 또다른 호텔이 두 호텔의 성공을 질투해서 아예 레스토랑 하나를 부수고 바를 새로 만들었죠. 그리곤 하루종일 생음악을 연주했죠. 바 세 곳이 서로 경쟁했죠.
경쟁에서 앞서가던 럭셔리 호텔에서 바를 뜯어고쳤어요. 저를 포함해서 다른 호텔 담당자들이 바에 몰려갔죠. 혹시 ‘벤치마킹’할 게 있을까 하고요. 그들은 최고가 되려고 40만달러를 투자했죠. 디자인을 완전히 뜯어고쳤어요. 인테리어가 ‘섹시’한 바였어요. 나도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를 좋아했어요. 가만있을 수 없었죠. 저의 호텔 바 중간에 있던 기둥을 헐어버렸어요. 그리고 손님들이 사방으로 둘러앉기 좋은 섬 모양으로 개조했죠. 기존의 밋밋한 무대에 각광도 달았어요. 그리고 제가 직접 자카르타에서 음악을 연주할 밴드를 섭외해 왔습니다. 그리고 미국 독립혁명기념일 파티를 여기서 열었죠. 다른 경쟁 호텔 담당자들도 와서 봤죠. 결과는 나쁘지 않았어요. 제가 있던 호텔이 다시 넘버원이 됐죠.
미국·유럽에선 레스토랑보다 바에 집중
호텔업계엔 일반 기업들처럼 경쟁업체가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 연구하는 전담 부서가 없어요. 하지만 우리 스태프들이 가끔 경쟁 호텔의 레스토랑이나 바에 갈 때가 있죠. 우리도 벤치마킹을 하냐고요? 물론이죠. 변화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경쟁! 경쟁! 경쟁! 호텔업계에서 경쟁은 지구적이에요. 미국이나 유럽의 호텔이나 아시아의 호텔이나 다를 바 없어요. 작은 차이는 있죠. 가령 미국이나 유럽의 호텔은 상대적으로 레스토랑보다 바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음·식료’(비버리지 앤 푸드)라는 용어를 써요. 반면 아시아의 호텔에서는 ‘식·음료’(푸드 앤 비버리지)라고 말합니다. 미국·유럽은 호텔 밖에도 레스토랑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아시아에서는 호텔 레스토랑이 고급 레스토랑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차이도 바뀌고 있죠. 최근에는 미국·유럽의 호텔 레스토랑도 주방장의 이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죠. 변화와 경쟁. 이게 우리 호텔업계의 상황이에요.
닉 히스 W서울워커힐호텔 총지배인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미국·유럽에선 레스토랑보다 바에 집중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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