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오영욱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호불호를 쉽사리 결정하기 힘든 건물이 있다. 그렇다고 아예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치 갈대 같은 남자의 마음처럼 그때그때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건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요동을 친다. 은근한 매력을 느끼다가도 사소한 티끌 하나에 의해 감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다만 건물은 남자의 변심을 돌리려 애쓰지 않는다.
내겐 종로 한복판에 웅장하게 서 있는 종로타워도 그런 건물 중 하나다.
처음에는 탄생의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7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에게 예전의 흔적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있을 리는 없다. 다만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한 ‘일제 강점기 순수 민족 자본으로 지은 최초의 백화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을 뿐이다.
실제로는 화신 백화점이 철거된 자리에 새로이 공사 중이던 건설현장의 둔탁하면서도 앙상했던 뼈대가 종로타워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그 후 어떤 사연으로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동안 폐허처럼 남아 있던 철골조의 뼈대는 라파엘 비뇰리라는 남미 출신의 미국 건축가에 의해 설계 변경이 된 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게 되었다. 건물의 상부에는 커다랗게 빈 공간이 생겼고 모든 구조는 노출되어 자신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이 종로타워의 디자인적인 가치, 주변과의 조화, 종로에서의 상징성 등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 건물이 금세 좋아졌다. 화신 백화점의 흔적에 대한 아쉬움을 잠시 잊은 채 간판으로 뒤덮인 특징 없는 종로통의 건물들 사이에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들어섰다는(혹은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설렜다. 특히 멀리서 바라볼 때가 인상적이었는데 고만고만한 서울 구도심의 건물들 사이에 당당하게 턱을 하늘로 치켜든 이 화려한 여인은 길거리에서 마주친 연예인처럼 마구 튀어주었다. ‘앞으로 나란히’와 ‘단정한 머리에 교복’ 같은 것들에 익숙해야만 했던 지난날에 복수라도 하듯 나는 그녀에게 마음을 주었다.
요즘도 이따금 종로를 지날 때면 한 번씩 고개를 젖혀 종로타워를 쳐다보고는 한다. 그런데 말이다, 분명히 매력적인 건물 같기는 한데 생애 최대의 용기를 발휘하여 퇴짜 맞을 각오를 하고 뒤쫓아 가서 말을 걸고 싶은 마음까지는 들지 않는다. 어쩐지 잠시 시선을 돌려 작게 감탄하며 씩 웃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여인이 나의 인연이 아니듯, 내가 외로울 때 기댈 수 있는 건물에 나는 더 끌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영욱/건축가·오기사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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