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우리도 꼭 이겨야 하는 팀 있죠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미수다’ 출연한 핀란드인 따루·독일인 미르야·베트남인 흐엉
‘미수다’ 출연한 핀란드인 따루·독일인 미르야·베트남인 흐엉
0 그러니까 이게 다 월드컵 때문이다. 뭔 소리냐. 인터뷰 데드라인은 월드컵 개막 당일 밤. 1986년 멕시코대회부터 국가 불문 모든 경기를 실시간 시청하였으며, 1986년 박창선이 25m 전방서 때려 크로스바 하단 맞고 들어간 최초의 골부터 2006년 박지성이 우측 골포스트 하단으로 우겨넣은 골까지 모든 골의 시각과 장면을 암송하는 축구신도로서, 이 위중한 시국에 월드컵과 무관한 인터뷰로 그 신심을 흐린다는 건 용서할 수 없는 배교행위 아니던가. 하여 금번 인터뷰는 월드컵과 유관해야만 했다.
월드컵. 어떤 이에겐 그저 공놀이일 터이고 또 어떤 이에겐 축제이겠으나 내게 월드컵은, 오랜 세월, 콤플렉스였다. 서구가 발명하고 우리 스스로 내면화한 오리엔탈리즘으로 자신의 열세를 항상적 질서로 수용하며 식민과 전쟁과 독재로 강화된 그 우라질 변방의식과 낮은 자존감. 2002년 눈물은 그러니까 이 땅에서 나이 먹은 이라면 누구나 얼마쯤은 품고 살던 그 식민기질과 패배의식과 자기비하의 상처들이 쏟아낸 자기치유의 울음이었던 게고.
앗, 그렇다면 축구를 고리로 다른 이들의 콤플렉스를 들여다보자. 거기엔 그들만의 역사와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터. 세계를 읽는 독법의 하나로 이거 제법 유용하겠다. 아예 각국 콤플렉스 시리즈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고. 그리하여 결정된 인터뷰이가 바로 한국어 유창하며 <한겨레 21>을 읽는다는 지성파 미수다 미녀 3인방. 핀란드 따루, 독일 미르야, 베트남 흐엉. 본 월드컵 특집은 그렇게 기획되었다.
담날 아침 핀란드로 출국한단 따루가 김, 단무지, 진미오징어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먼저 도착했다. 아무래도 따루는 역술인 동원해 전생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고.
질문 1. 미수다에선 항상 한국 이야기만 하는데 오늘은 당신들 나라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당신네 나라의 어린 시절 아이들 롤모델은 뭐냐?
따루: 운동선수들. 그리고 경찰이나 소방관. 사람을 구하니까. 핀란드에선 한국처럼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 않다. 저축도 거의 안 한다. 복지가 되니까.
미르야: 여자애들은 발레리나. 남자애들은 축구선수. 독일도 경찰, 소방관 멋있어한다. 한국에선 돈 때문에 대학 가고 직업 구하지만, 독일에선 자기가 진짜 되고 싶은 걸 한다.
흐엉: 베트남 남자애들은 축구선수. 여자애들은 승무원.
축구선수 아닐까 싶어 물었다. 그런데 경찰과 소방관이 등장한다. 이유는 사람을 구하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남 이기고 어떻게 내가 살까 하는 경쟁만 학습하는 한국에선 어림도 없다.
질문 1-1. 혹시 어린 시절 경쟁이란 단어는 얼마나 많이 듣나. 반 등수 같은 게 발표되나?
모두: 성적은 나오지만 등수는 알 수 없다.
미르야: 등수는 완전히 나쁜 거라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경쟁을 만드니까.
따루: 핀란드에선 중학교 끝나면 직업선택 하기 때문에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선생님으로부터 듣긴 한다. 그래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는 하지 않는다. 각자 목표를 세워 자기가 자기랑 경쟁하는 거다.
미르야: 독일에선 어린 시절 경쟁이란 단어를 전혀 들을 일이 없다. 실패해도 문제없다. 실패해도 나쁜 사람 아니라고 강조한다.
우리 정권은 전국 학교 등수까지 매기는데. 어떻게 뇌 치료라도 받게 해야 하나.
질문 2. 이제 본론이다. 한국은 일본, 미국에 국가적 콤플렉스 혹은 서양인 대비 숏다리라는 신체 콤플렉스 따위가 있다. 당신들의 집단 콤플렉스는 뭔가? 그리고 축구 라이벌은?
따루: 핀란디제이션(finlandization)이란 게 있다. 핀란드가 독립국이긴 했지만 80년대 말까지 구소련에 내정간섭 받고 정치인들, 기자들이 부역했던 데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핀란디제이션-핀란드화. 인접 강대국 구소련 때문에 약소국 핀란드가 스스로 자기검열한 외교역사로 인해 만들어져 일반화된 정치용어) 그래서 러시아는 싫어한다. 전쟁도 했고 상처가 있고 젊은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웨덴에 대해선 열등감을 오래 느꼈다. 식민 역사도 있고 우리보다 잘살았으니까. 요즘은 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스웨덴 남자들은 다 게이라는 농담도 한다.(웃음)
그래도 축구하면 스웨덴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웃음) 그리고 하키! 1995년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을 스웨덴에서 했는데 핀란드가 이겼다. 살면서 그때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일동 폭소) 또 우린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우리가 유럽 사람이란 걸 증명하려고 애썼던 게 있다. 책도 쓰고 하면서. 2차 대전 때는 독일과 같은 편이 되었는데, 안 그랬으면 먹혔으니까. 그 때문에 전쟁 끝나고 대통령이 감옥 오래 갔다 오고 그랬다. 그래도 독일에 대한 원망은 없다.
미르야: 우린 축구하면 무조건 네덜란드를 이겨야 한다.(웃음) 경기하면 완전 난리 난다.(웃음) 네덜란드 사람들에 대한 농담도 많다. 어차피 다들 캠핑카 타고 독일 놀러 오면서.(웃음) 그래서 우리 아우토반이 많이 막힌다. (네덜란드와 독일이 유럽 최대의 축구앙숙이 된 건 1988년 유럽선수권 준결승에서 네덜란드가 독일을 2 대 1로 이기고부터다. 주요 대회의 준결승 이상에서 최초로 독일을 이긴 이날, 2차 대전 당시 5년간 독일에 점령당하며 모든 자전거를 징발당했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일제히 자전거를 공중에 던지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제야 우리 자전거를 되찾았다”라며.) 영국에 대해선 네덜란드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와 나쁜데 그것도 우리 세대엔 없다.
나치에 대해선 옛날 사람들이 한 건데 내가 왜 죄책감을 가져야 되느냐 하는 젊은 세대들이 없지는 않다. 무의식적으로. 하지만 최근엔 오히려 그런 불만이 많다. 아랍이나 터키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들에게 사회복지에 돈이 많이 나간다고. 옛날엔 독일 내부적으론 또 그런 게 있었다. 옛동독 중앙정보국 슈타지가 자국민을 감시하고 감옥 보낸 역사에 대한 콤플렉스. 그리고 독일 사람들에 대한 큰 오해가 있다. 독일 사람들은 무조건 일 열심히 하고 약속시간 칼같이 지킨다고. 실제 독일 사람들 안 그렇다. 코리안 타임보다 더 심하다.(웃음) 사회복지 때문에 일부러 일 안 하고 노는 사람도 많고. 독일인 이미지를 너무 잘못 알고 있다. 그리고 히틀러 이야기 하면 엄청 기분 나빠한다. 너무 창피해서.
흐엉: 음. 계속 생각해봤는데 베트남은 그런 면에서의 콤플렉스는 별로 없는 거 같다. 식민과 전쟁을 겪었지만 프랑스나 미국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마음은 없다. (부럽다. 역시 스스로 승리한 자들에겐 상처가 남지 않는다.) 인접국인 라오스나 캄보디아엔 관심이 없고.(베트남에게 침공당했던 캄보디아만 베트남을 라이벌로 여긴다.) 하지만 중국은 싫어한다.(웃음) 비호감이다. 우리나라보다 안됐으면 좋겠다.(웃음)
그러나 축구를 하면 무조건 타이를 이겨야 한다.(웃음) 타이에게 굉장히 많이 졌다. (2008년 12월28일 AFC 주최 동남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베트남이 후반 45분 추가시간에 프리킥을 극적으로 성공시켜 최초로 타이를 이기고 우승하자 베트남에선 수백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오토바이 클랙슨을 밤새 울려대며 2002년 한국을 능가하는 일대축제가 벌어졌고 당시 감독이었던 포르투갈 감독은 히딩크 버금가는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질문 2-1. 그럼 미국 콤플렉스는 어떤가? 한국 주류는 미국에 대한 무한존경이 있다.
따루: 핀란드 사람들은 미국인을 빈말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쓸데없는 스몰토크 한다고. 일단 힘이 아주 센 나라라고 여기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지들이 세계경찰인 줄 아니까.
미르야: 독일 사람도 미국에 대해 너네 뭐가 그리 잘나서 잘난 척하냐 그런 게 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 대하는 태도 중 놀라운 건 미국 욕하면서 결국 다들 미국 가 버린다.
흐엉: 나도 이상하다. 욕하면서도 다 가고 싶어 하고 미국 국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전쟁과 유사한 의식상태 촉발한다는 축구는, 역시 집단 콤플렉스를 직접 반영한다. 그런데 이를 어째. 그녀들, 이 주제에 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전부다. 아, 이 주제 재밌는데. 할 수 없다. 여기서부터 정치 이야기가 급등장한 건 그러니까 땜빵이다. 자백하건대.
질문 3. 그럼 정치 이야기 좀 해보자. 혹시 당신들도 경상도, 전라도 같은 지역감정 있나?
따루: 없다. 핀란드는 2차 대전 뒤 지역평등정책을 만들어 놨다. 하지만 경상도 비슷한 느낌의 지역은 있다. ‘사보’라는 곳인데, 그곳 출신을 사보 마피아라 한다.(웃음) 왜냐면 많은 정치인이 그곳 출신이다. 하지만 한국 지역감정과는 비교도 안 된다. 내가 사보 출신이니 사보 출신이 계속 대통령이 되어야 한단 의식은 전혀 없다.
미르야: 독일은 북쪽 사람들이 남쪽 바이에른 사람들을 촌스럽고 보수적이라고 여기는 지역색이 있다. 한국도 사투리가 심할수록 서로 뭉치지 않나. 독일도 그렇다. 물론 정치인들이 내가 뮌헨 출신이니까 나를 찍어달라는 그런 거는 어렵다.
흐엉: 지역감정 같은 건 없다. 지역별로 서로 싫어하고 그런 건 없다. 하지만 남북 사람들 특징은 있다. 남쪽 사람들은 돈 벌어도 잘 쓴다. 개방적이고. 북쪽 사람들은 돈을 벌면 아낀다. 그래서 북쪽 사람들이 부자가 많다.
질문 3-1. 그럼 당을 보고 투표하나, 사람을 보고 투표하나.
미르야: 반반인 거 같다. 찍고 싶은 당인데도 그 사람이 좀 아니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찍는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자신의 지지 정당을 밝히지 않는다.
따루: 핀란드는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먼저 선택하고 그다음 사람을 본다. 물론 무조건 당을 보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질문 3-2. 한국의 촛불집회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따루: 좀 부러웠다. 몇십만명이 나와 데모하는 게. 핀란드에선 그런 게 없다. 데모를 해도 백명.(웃음) 그런데 유모차까지 끌고 나오고. 한국 사람들은 열정이 있구나 생각했다.
미르야: 생각하는 건 많은데 말하고 싶지 않다. 한국 정치에 대해선.
흐엉: 미르야 언니처럼 이 문제는 나도 민감하다.
그녀들조차 자기검열하게 만드는 놀라운 절대능력자, 이명박. 아, 쪽팔려.
질문 3-3. 정권이 바뀌고 혹시 연예인이 잘리는 경우 본 적 있나?
모두: 연예인?(놀람) 아니! 연예인이 무슨 상관인가?
질문 3-4. 김제동이 전 대통령 추모제 사회 본 이후 공중파 못 나온다. 이해 가나?
모두: 아니! 그래서 안 나오는 거구나.
따루: 핀란드에선 정권하고 방송국은 완전히 별개다.
질문 3-5. 예를 들어 언론이 정부를 비판했다고 불이익을 당한다거나.
따루: 그게 기자들 일이잖나.
미르야: 법에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 아닌가. 저널리스트 이즈 프리. 그거 건드리면 죽지. 나라가 끝나지.
나라가 끝난단다. 그렇지. 지금 우리나라를 그렇게 끝내주고 있는 중이지. 이후 한국 남자들은 창피한 줄 몰라 싫고 다정해서 좋단 연애 이야기까지 한참 더 떠들었으나 아무리 우격다짐이라지만 월드컵 특집이라 해놓고 차마 거기까지 내달리긴 스스로 남세스러워, 금번 억지특집은 여기서 황급히 마칠까 한다. 정치와 연애특집은 따로 마련하겠다. 해놓고 보니 이리 얼렁뚱땅하다 중구난방 뜬금없이 마무리한 인터뷰는 또 처음이다. 아이, 쑥스러워. 그러니까 이게 다 월드컵 때문이라니까. 후다닥.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김어준이 만난 여자
‘미수다’ 출연한 핀란드인 따루·독일인 미르야·베트남인 흐엉
‘미수다’ 출연한 핀란드인 따루·독일인 미르야·베트남인 흐엉
‘미수다’ 출연한 핀란드인 따루·독일인 미르야·베트남인 흐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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