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프라 윈프리’ 꿈꾸는 만능엔터테이너 박경림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 꿈꾸는 만능엔터테이너 박경림
① 윤여정을 인터뷰한 적 있다. 메이저 원했으나 끝내 도달치 못한, 그렇게 여집합으로 남겨진 게 아니라, 자발적인 혹은 태생적인 마이너로. 공주와 그 외 무수리로 양분되는 여배우 세계에서 애초부터 공주가 목표 아닌. 하여 여배우 특유의 자의식 과잉 없이 담담한 일상의 감각 유지하는. 덕분에 당대의 시대성과 쉼 없이 공조하는. 그리하여 여전히 현대적인. 그런 일류 마이너로 말이다. 비결 물었더니 그리 답했다. 연기가 직업이라서. 판타지가 아니라.
난 박경림에게서, 뜬금없게도, 윤여정을 본다. 그에겐 연예인 자의식이 없다. 화면의 그가 드러내는 건 언제나 달뜬 무대기예가 아니라 타고난 삶의 활력. 기술이 아니라 천성인 게라. 그의 방송에선 그렇게 건강한 노동의 에너지가 진동한다. 연예인이, 계급 아닌, 직업. 그 바닥에 그런 이, 드물다. 하여 언젠가 그에게 그 연유, 듣고 싶었다. 그러다 그가 오프라 윈프리가 되고자 한단 소릴 들었다. 오. 그렇다면. 궁금했다. 업계 사건들에 대한, 내부자로서,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 정도를 꿈꾸는 자로서, 그만의 견해가.
② 평면을 직접 입체로 확인할 때면 으레 어딘가 생경하게 마련이다. 특히 사람의 얼굴은. 박경림도 그랬다. 낯설도록, 작다. 얼굴까지. 괜히 흐뭇했다. 하하. 바로, 윤여정은 일류 마이너고 동일 맥락에서 박경림도 그러하다고 말문 열었다. 대뜸 답한다. “전 스스로 연예인이란 생각을 안 하고 살거든요.” 왜. “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마인드가 전혀 없어요. 여러 직업이 있는데 내가 하는 일이 방송 일일 뿐이다.” 역시. 제대로 만났다.
어찌 연예인 자의식 없나. “전 일약 스타덤에 오르거나 공채나 특채가 된 게 아니었으니까. 제가 계속 찾아다녀 여기까지 온 거니까.” 어떻게 시작됐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소풍 가서 사회를 보게 됐어요.” 원래 그런 걸 좋아했나. “아니요. 몰랐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반장이었는데.” 반장씩이나.(웃음) “네.(웃음) 원래 사회 볼 다른 반장이 못하겠다고. 김밥 먹다 체해서. 너무 떨렸어요. 근데 사람들 앞에 서서 박수 받으니 갑자기 홀린 것처럼, 2시간을 진행했어요. 끝나고 나니 어지러웠어요. 긴장이 풀려서. 이 기분이 뭐지. 신기했어요. 그러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보다 아, 저거다. 관객 앞에서 무대를 이끄는. 저걸 하고 싶다.”
그때 옆 반 반장이 김밥에만 안 체했어도.(웃음) 그래서. “그즈음부터 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단 생각을 했어요.” 왜. “6학년 때 학생회장 됐는데,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학교에 뭔가 해줘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된다고. 축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우셨어요.” 아버지는. “상이군인이신데 제가 고1 때까진 선일여고 수위를 하셨고. 형편이 그랬기 때문에.” 그래서. “다음날 교장선생님 찾아갔어요. 회장 되면 학교에 꼭 뭔가 해줘야 하냐고. 엄마가 그럴 형편이 안 돼 속상해하신다고. 올해는 안 하면 안 되겠냐고. 교장선생님이 무슨 말이냐고, 안 해도 된다고.” 그다음 해 회장은 다시 하라 했을 거다.(폭소)
본질로, 두려움 없이, 바로 간다. 사람에 대해서도. 타고난 건가. “그 점은 엄마를 닮은 거 같아요. 그리고 골목에 집이 따닥따닥한 동네에서 자랐어요. 이웃과의 경계가 없는. 그 덕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요.” 그러다가. “중1 때부턴 자원해 사회를 봤어요. 그때부턴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단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러다 중3 때 축제 사회를 보게 됐는데, 원래는 전교회장이 하는 게 관례라 선생님이 당위성이 필요하다며 연예인을 섭외하라 하셨어요. 우여곡절 끝에 장동건씨를 섭외하게 됐죠. 그때부턴 쟤가 장동건 섭외한 애다. 그렇게 알려져 주변 남자학교에서도 섭외가 왔죠. 2만원씩 받고 했죠.(웃음)”
그런 후. “저에 대해 정말 모르시는구나.” 모른다.(웃음) 난 원래 모른 채 인터뷰한다.(웃음)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에 캠프신청 했는데 1만명 신청자 중 80명에 제가 뽑혔어요. 그 버스 안에서, 다들 초면인데, 제가 진행 욕심이 난 거예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 버스 뒷좌석에 피디가 앉아 계셨던 거죠. 그분이 공개방송 때 학생대표 하라고. 저보고.” 피디가 다른 버스에만 탔어도.(웃음) 역시 인생은, 운이다.(웃음) “그걸 또 <별이 빛나는 밤에>의 작가 언니가 우연히 운전하다 듣게 됐고. 그러면서 별밤 출연을 하게 되고. 그렇게 풀려갔어요.”
그렇게 풀려갔는데 왜 유학 갔나. “어릴 때 항상 생각했어요. 나처럼 혈연도 학연도 지연도 없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을까. 그때 홍정욱의 <7막7장>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의 책을 읽게 됐어요. 아, 미국은 나처럼 가진 게 없어도 뭔가 이룰 수 있는 땅이구나.” 그래서. “미 영사관으로 갔죠. 중3 때. 아무나 못 들어가더라구요. 문 앞에 서 있는데 어떤 언니가 오기에, 여기서 일하세요? 그럼 언니 저, 미국 좀 보내주세요.(폭소)” 다짜고짜. “전 거기서 일하면 보내줄 수 있는 줄 알았죠.(폭소) 부모 동의 있어야 하고 초청장도 있어야 하고 학교 어드미션도 받아야 한다고. 초코파이 사주시면서 부모님이랑 의논해보라고.”
그래서. “나중에 몇 십 배로 갚을 테니 그저 비행기만 태워달라고. 편지를 써서 아빠 구두 속에 넣어 놨어요. 3일 후 답장이 책상 위에 있었어요. ‘정말 보내주고 싶지만 지금은 현실이 안 된다. 너무 미안하고 아빠 믿고 대학 졸업까지만 열심히 해주면 그땐 달러 빚을 내서라도 보내줄게.’ 아빠가 이 편지 쓰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너무 슬픈 거예요.(눈물) 내가 왜 아빠한테 못질을 했나. 그때 결심을 했어요. 대학 졸업하면 바로 떠난다. 내가 번 돈으로. 그래서 적금을 3개나 부었어요.”
두렵진 않았나. “전 어차피 가진 게 없이 시작했으니까. 말린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런 이해득실 따지면 평생 못 간다. 이런저런 합리화만 하다간 아무것도 못한다. 내가 돌아왔을 때 대중이 나를 버린다면 그동안 내가 활동을 잘못한 거다.” 어른스럽구나. “그리고 그때 제가 엠비시(MBC) 최연소 연예대상을 받았어요. 허무하더라구요. 너무 많이 이룬 거예요.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스스로 정신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평생 이 환상에 빠져 힘들겠다. 그래서 그냥 갔어요.”
③ 이제 박경림의 견해 차례. 본인은 다른 연예인과 어떻게 다른가. “음. 아주 쉽게는 누가 밥 먹자 하면 연예인들은 매니저랑 가는 게 대부분이죠.” 왜. “관리해줘야 하니까. 혼자 갔다가는 본의 아니게 구설에 오를 수 있으니까. 매니저 있으면 보호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자기 생활까지 다 매니저가 대신 해주죠. 예를 들면 공과금 처리까지.” 또. “마인드.” 어떤. “연예인들 인터뷰하면 그런 이야기 해요. 친구랑 명동 한가운데서 떡볶이 먹고 싶다. 연인이랑 손잡고 어딜 걷고 싶다. 이해는 해요. 하지만 그런 거 그냥 하면 되는 거거든요. 조금 불편할 뿐.”
연예인들 특유의 자의식. 예를 들면 한때 기특했던 ‘비’가 어느 날 스스로 너무 대견해 느끼해져 버리는. 그런 거, 자기는 못 느끼나. “못 느껴요. 그 자리에서 내려가거나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기 전까지는. 전 미국 가서 느꼈어요. 내가 빠지면 방송이 티가 날 줄 알았는데. 그러기를 바랐는데.(웃음) 안 그렇거든요. 세상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가거든요. 지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점에 불과한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거죠. 그런 계기가 없으면 어딜 가나 받들어주고 눈 마주치면 웃어주고 사인 받으러 오고 사진 찍자 하고. 현실감을 잃게 되죠.”
연예인은 공인인가. “전 공인이라 여겨야 자기 행동에 더 책임질 수 있다 생각해요.” 공적자금 받는 것도 아니고 공무 하는 것도 아닌데. “대중이 그걸 바라잖아요.” 마침 일하는 장소가 공공연할 뿐, 그 역시 사사로운 직업 아닌가. “대중에게 영향 끼치고 대중의 사랑으로 살아가니까.” 대중영향력만 따지면 유명 주식투자가도 만만찮다. “실은 저도 가끔 대중이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단 생각을 하긴 해요. 물론 그분들 덕에 내가 일한단 생각도 하지만.” 정말 공무라면 사람들이 돈 모아 출연료 주고 의무방청 해야지. 하지만 대중은 인기 없으면 바로 버린다. 공공이 연예인 지켜주지 않는다. 연예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는 것도 대부분 개인적 싸가지의 영역이고.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죠.”
검증된 가수 서바이벌을 모욕적이라 여기는 <나는 가수다> 논란은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뭐하러 저 정도 가수들이 저러나. 그냥 자기 콘서트 하면 되는 사람들이. 그런데 하더라구요. 아, 저게 바로 김영희 피디의 힘이구나. 그거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얼마나 떨릴까.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하지만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뿐.” 그럼 재도전은. “만약 저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저도 그 상황에선 그런 행동 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재도전은 제작진이 결정할 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물었어야 했단 생각을 지금은 하죠. 소라 언니 행동도 전 이해가 가요. 이소라의 그런 섬세한 감성 때문에 결국 우리가 그런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거거든요.”
신정환 사건은. 자기 자산에 손해 끼친 거지 대중에게 피해준 건 없는데. “거짓말했으니까.” 도박이 그렇게 큰 죄라니까. 도박 자체가 그리 나쁘면 왜 정선에선 되나. 룰이 다른 것도 아닌데. 거기서 패가망신한다고 나라가 보상해주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나라도 세금 걷느라 도박하는 거다. “배신감 아닐까요. 안 한다고 했는데 다시 하니까. 그리고 그 큰돈을 쉽게 벌어 그렇게 쉽게 날리느냐.” 다른 어떤 나라든, 연예인이 도박해 2억원 잃었다고 퇴출되겠나. “안 되겠죠. 상대적 박탈감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큰 죄인가, 하는 의구심은 저도 있어요. 전 정말 신정환 개그가 그립거든요.” 그의 인생을 대신 책임져 줄 것도 아닌 대중이 그에게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건, 인격적 완성이 아니라 재능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솔직히 전 신정환씨가 돌아와도 된다는 생각은 해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사생활이 어떠하든, 무대에서 제 역량 보여주면 박수 쳐주는 것처럼.”
본인이 진행자로서, 유재석과 강호동, 누가 좋나. “하하. 전 재석 오빠를 좋아해요.” 왜. “분위기를 휘어잡는 장악력은 호동 오빠가 더 있겠지만, 두 사람 다 겪어본 저로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석 오빠의 능력이 더 좋아요.” 유재석의 약점은. “약점이 있나요?” 강호동은. “호불호가 강하다는 거겠죠. 그 약점까지 강점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난 강호동이 정말 재밌다. 대단한 재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손해 보는 장사는 결코 않는다. 누군가를 몰아줘도 그게 그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특정인을 그렇게 띄울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는. 영악하다. 아닌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본인의 진행자로서 장점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거. 그런데 그게 안 좋은 면도 있어요. 방송은 어느 정도 긴장이 필요한데, 너무 편하면 필요 이상 오버를 하게 되거든요. 방송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런 위험이 있어요. 그런데 언제나 가장 자기다운 게 좋은 거거든요. 자기답지 않은 모습은, 그게 설혹 인기를 끌더라도, 결국 자기 발목을 잡아요.” 그렇다면 편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딱 그 사람만큼만 드러나도록 해주는 게 좋은 진행자인가. “맞아요. 그거예요.” 정치에는 관심 있나? 오프라 윈프리를 모델 삼는다면 정치적 감각도 필요한데. “연예인들은 정치적으로 자기 색깔이 분명할 경우 불이익 당하는 걸 너무 많이 봐 와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비겁한 생각이긴 한데.” 그래서 이명박과 노무현 중 누가 좋나. “둘 다요.”(폭소)
④ 다음날 오후,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프라 윈프리라면 정치에도 관심 가져야 한단 말을 곰곰이 되새겨 봤단다. 그리고 이리 말했다. “정치는 너무 큰 거고 나와는 무관한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게 결국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닐까. 이제 공부해봐야겠다. 그러니까 오빠가 저를 좀 도와주세요. 네?” 10년 이상 수많은 이들을 인터뷰해 왔으나 이렇게 제 부족 보완토록 도와달라는 이, 처음이다. 박경림이 왜 박경림인지, 알겠다.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 불려 마땅한 진행자가 탄생하게 된다면, 그건 십중팔구 박경림일 거라는 데 500원, 자신 있게 거는 바다.
멋지다, 박경림. 아자.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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