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화 “저 쉬운 여자 아니에요”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개그우먼에서 가수로 변신한 곽현화
개그우먼에서 가수로 변신한 곽현화
① 며칠 전 아침이었다. 어떤 프로에 연예인 하나와 그 양친이 출연했다. 음, 또 누군가가 가족사 빌려야 할 만큼의 궁박한 처지가 된 게군. 아침방송 가족동원이야 각종 물의 후 이미지 세탁 코스 아니던가. 저 처자, 최근 모종의 사유로 비토되고 있을 확률 74.8퍼센트 정도 되겠군. 평소라면 딱 거기까지 하고 관심 껐을 게다. 그런데 저 처자, 가물가물 낯이 익다. 으. 답답하다. 누구지. 누구지. 아, 맞다. 그 개그하던 처자들. 그 장신 여성 개그 트리오. 그 외모에 그 막춤. 그 반전과 그 부조화. 난 이 정도 외모니 그에 합당한 대우 받겠단 자의식 따위 흔적도 없이, 아무런 맥락도 기승전결도 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춰대는 그들 보며 저거 저러다 신종 장르 하나 탄생하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 트리오는 어찌 되었나. 그리고 그런 막개그 일삼던 처자가 아침방송서 부모까지 대동해 대중에게 어필할 게 무에 그리 있었을까. 하여 검색했다. 동일 어휘가 아주 무더기로, 주기적으로 쏟아진다. 노출, 유출, 몸, 가슴, 선정성. 몇년치 사연, 그렇게 한 번에 일괄 업데이트 하다 결정했다. 그를 인터뷰하기로. 왜. 하도 희한해서.
그를 문제 삼는 이들 그를 꽤, 불편해한다. 물론 그가 마땅찮을 수 있다. 얼마든지. 노골적이라며. 적나라하다며. 그런 세태 자체가 불만일 수도 있다.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하나의 입장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거의 모든 아이돌도 같은 대접이 마땅하다. 그의 둔부가 진자운동을 할 땐, 아이돌이 제 골반을 격렬히 털어댈 때와는 달리 인체에 유해한 무슨 전자파라도 발생하는가. 혹은 그가 그냥, 싫을 수도 있다. 얼마든지. 취향 아니라며. 타입 아니라며. 그럼 그가 싫다 할 일이다. 옳지 않다가 아니라. 그러나 그는 줄곧 호오가 아니라 시비의 영역에서 타박 된다. 희한하다. 이번 인터뷰가 마련된 건 그러니까 순전히 바로 그 의아함 덕이다. 뭐가 그리 옳지 않다는 걸까. 자, 가 보자.
② 대한민국에서 가장 건조한 모범생 언론사, <한겨레> 사옥에서 그를 만나면 그가 조금이라도 더 튈 줄 알았건만, 그런 건 없다. 인상, 멀쩡하다. 다만 왜 하필 개그였을까 자연스레 궁금해질 정도의 분위기. 해서 물었다. 왜 하필 개그였냐. “게임방송 엠시(MC) 했었는데 같이 사회 보던 분들이 다 개그맨이셨어요. 그분들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쭤봤죠.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냐고. 전 남들이 저를 보고 막 즐겁게 웃고 재밌어하면 나도 같이 행복해지거든요. 그게 이유예요.” 음. 끼, 목표 따위가 거론될 줄 알았다. 그러는 게 더 행복해서라. 아따, 바람직하여라.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던 개그를 왜 결국 그만뒀나. “저는 남들 웃기는 게 너무 좋은데, 거기 가서 알았어요. 제가 안 웃긴다는 걸.(폭소) 학교 다닐 땐 제가 웃기는 줄 알았거든요. 알고 보니까 여자애들이 웃음이 많은 거였더라고요.(폭소)” 엠시로 출발했으면 폼도 좀 잡고 그런 게 익숙했을 텐데 망가지는 게 두렵지는 않았나. “그런 거 없었어요. 제가 면접 볼 때 뭘 입고 갔느냐면요. 풀메이크업을 정성스럽게 하고 롱코트 차려입고 안에다 다 해지고 구멍 난 빨간 내복 입고 갔어요.(웃음)”
자, 이제 본격 진도. 키 큰 여자 셋이 미친 듯 춤춘 거 기억한다.(웃음) 그 정도 외모면 적당히 예쁜 척해도 되는데, 그 기대를 확 저버리더라.(웃음) 어떻게 구성된 멤버인가. “가서 처음 만났어요. 키 크고 예쁜 애들이 있는 거예요. 어, 쟤는 뭐야. 내가 제일 괜찮은 줄 알았는데.(웃음) 근데 다들 성격이 비슷했어요. 엽기적인 거 좋아하고 망가져도 거리낌 없고. 너무너무 친해졌죠.” 그런데 그 코너는 왜 없어졌나. 난 정말 재밌었는데. “진짜요? 선배님들은 저희가 못 웃긴다고. 그래서 매번 무대에서 끌려 나가다 없어졌죠.(웃음)” 음. 난 재밌기만 하던데. 거 이상하군. 그러다 ‘키 컸으면’으로 문제가 되는데. “전 그게 왜 문제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방송 나가자 난리 났죠. 하지만 전 이해가 안 가요. 제가 뭘 잘못한 게 있어야 뉘우치고 사과를 하죠.” 그 일로 그 코너에서 잘렸나. “그건 오해예요. 원래 그 코너는 장도연씨가 고정이고 ‘시바이’ 살릴 수 있게 돌아가며 들어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언론에선 ‘도중하차’라고 하데요.(웃음)”
그러다 개그 관둔 결정적 계기는. “꼭 다시 듣고 싶으세요? 제가 안 웃긴단 말을.(웃음) 계속하고 싶었지만 코너 짠 건 자꾸 잘리고 무대에 서는 건 여전히 좋고. 그러던 중 가수 제안이 들어왔어요.” 논란과는 무관한 건가. 감독이나 작가가 본인 모르게 뺀 거 아닌가. “그럴 리가 없어요. 저를 얼마나 좋아하시는데.(웃음)” 가수도 섹시 콘셉트던데, 본인 생각인가, 회사 기획인가. “암묵적 동의죠.(웃음) 누가 봐도 섹시한데.(폭소)” 누가 그러던가.(폭소)
근데 부정적 반응은 걱정 안 했나. “악플 인생이라.(웃음) 늘 그분들 안고 가는 거라 생각하죠. 장르를 이탈하는 데 따르는 기본 안티도 있겠고. 개그에서 뭔가 뚜렷한 캐릭터도 구축 못한 친구가 가수 한다니까. 그런데 앨범 재킷을 선정적이라 비난할 것까진 예상 못했어요.”
사실 요즘 아이돌 다들 그런다. 복근이 성댄가. 가수가 웃통은 왜들 까.(폭소) 그런데도 사람들이 유독 본인한테 더 가혹하다 생각한 적 없나. “사실 그런 생각 들 때가 있긴 해요. 미니홈피에 대놓고 이상한 글 쓰는 사람도 많고. 나랑 어떻게 하자느니. 그럼 저는 일단 니 얼굴부터 보고, 하고 싶지만….(폭소)”
왜 사람들이 본인에게 더 야박하다 생각하나. “아무래도 ‘출렁녀’ 이미지 때문이겠죠. 거기에 의상사고도 있었고. 그러면서 뜨려고 작정한 거다, 의도한 거다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의도한 건가. “어떻게 의도를 했겠어요.” 하지만 가수로서 섹시 콘셉트는 의도 아닌가. “그건 제가 처음부터 그렇게 찍고 싶었어요.”
그럼 자기 선택에 스스로 감당할 몫 있겠다. 그렇게 선정적 이슈로만 뜨니까 아침방송에 부모님까지 동원된 거 아닌가. “그건 맞는 말이에요.(웃음) 하지만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일부러 몸 꽁꽁 쌀 이유가 없잖아요. 저도 남들처럼 예쁘고 싶은 아가씨인데. 그리고 제가 봐도 전 그런 시원한 의상이 잘 어울리거든요.(웃음) 네크라인, 보틀라인, 오픈숄더. 그래서 제 기분과 아름다움 위해 그렇게 입는 거지 누굴 홀려야겠다고 작정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 겪다 보니 이대라도 안 나왔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단 생각 들어요. 진짜.(웃음)”
내 보기엔 그 학력이 더 문제다. 개그맨 정도는 우월한 위치에서 만만하게 내려다보고 싶은데 당신은 안 만만한 거다. 개그맨 주제에.(웃음) 키 크고 몸 좋은데 학벌까지 좋아. 여자들은 그게 싫다. 남자들은 통제범위에 들지 않는 그런 여자가 본능적으로 무섭고. 아예 김태희 정도면 로망이 되고 말지만 개그맨에게조차 주눅 느끼면 스스로 찌질해지니까. 그 지점에서 방어기제 맹렬히 작동한다. 빌미도 있겠다, 헤픈 싸구려 치는 거다. 그럼 취급이 만만해지니까. “음, 그럴싸한데요.(웃음) 하지만 저 쉬운 여자 아닙니다.(웃음) 강조할게요. 쉬운 여자 아니라는 거.(웃음)” 그런 댓글 보면 상처 받나. “제가 털털해서 그냥 웃어요. 하지만 욕설은 기분 나빠요. 그땐 저도 흥분해요. 뭐야 이 자식아 하면서.(웃음) 아참, ‘그녀의 섹시엔 철학이 없다’. 이런 기사도 열 받죠.(폭소)” 웃기고 있다. 소녀시대 허벅지엔 무슨 변증법이라도 둘렀나.
어떤 사람인지 대략 파악. 해서 갑자기 점프. 4대강은 어떤가. “음, 정치적 견해는 되도록 밝히지 않겠습니다. 요즘 민감해서.” 글쎄 당신은 그 정도 위치가 아니다. 김제동 정도는 돼야지.(폭소) “그래도 미연에 방지.(웃음)” 그럼 한마디로. “전 개발이 싫습니다.(웃음)” 이명박은. “싫어해요.(폭소)” 노무현은. “좋아했어요. 되게 울었어요.” 무상급식은. “필요하죠.” 전교조는. “회사에 노조가 있듯 선생님들에게도 당연한 거죠.” 조중동은. “싫어해요.(폭소)” 지방선거 투표는. “다 했죠. 정치적 무관심은 나쁜 거니까.” 부산 출신인데 한나라당은. “믿을 수가 없어요. 음모가 많아.(웃음)” 좋아하는 그림이나 작가는. “마르셀 뒤샹 좋아해요.” 앞으로 뭘 더 해보고 싶나. “책 쓰고 싶어요. 운동 관련. 그리고 행복에 관한 에세이도.”
제 욕망에 솔직하며 균형 잡힌 세계관에 유쾌한 성정. 이만하면, 대단히, 건강하다.
③ 만나고 보니 트리오 중 남아 있는 자의 이야기도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해서 장도연(왼쪽 사진)을 짧게, 만났다. 다음은 그 일문일답.
동기인 박지선은 줄곧 잘나가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박지선은 시집 잘 못 갈 거라고 혼자서 위로한다.(폭소)” 그런데 박지선은 왜 뜬다고 보나. “박지선은 자기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주어진 역할을 너무나 훌륭히 수행하는 똑똑한 친구다. 하지만 그래도 일상 중엔 내가 더 웃긴다.(웃음) 뜨지 못해 이런 말 하는 게 남세스럽지만.” 내 생각엔 좋은 학벌에도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 제 외모 자학하는 개그는, 개그우먼 보면서까지 경쟁·시기·자조 느끼며 긴장하고 싶진 않은 여성들에게 안전한 위무가 된다. 내 남자 뺏길 리도 없고. 그게 여자들이 박지선에게 느끼는 호감의 근본 정서다. “음….”
그럼 박지선과 정반대여서 결국 포기한 곽현화의 가수 데뷔는 어떻게 보나. “언니는 반드시 성공하길 빈다. 그래야 내 자리가 보전된다.(웃음) 그래서 너무너무 잘되길 빈다.(웃음)” 본인은 그런 갈등 없나. “실은 나도 처음엔 금방 될 줄 알았는데 쉽지 않더라. 이젠 몇 년 더 기다려야 할지 몰라 일단 학교 졸업은 하려고 한다.” 뭘 전공했나. “경희대 시각디자인 휴학.”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서른셋까지는 도전해볼 생각이다. 만약 안 되면 개그 프로 피디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피디 시험도 알아보고. 차근차근 길게 보고 준비하려 한다.” 혹시 개그하는 여자라 부당하게 대우받는단 생각은 없나. “스스로 연예인이란 호칭에 오그라든다. 여자 개그맨은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존재다.” 얼마나 버나. “3년차 되고 등급이 두 단계 올라서 일주일에 50만~60만원 정도.”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아니다. 무대에 올라야 나온다.”
그럼 떼돈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이 일에 그렇게 매달리나. “언젠가는 세상을 다 웃겨버리고 싶다.(웃음) 아직은 내 시대가 아니다. 언젠가는 내 웃음 코드가 통할 때가 있을 거다.” 기존의 개그문법 무시하고 합을 짜지도 않고 기승전결이나 맥락도 없이 그냥 생겨먹은 대로 막 들이대서 어처구니없어 터지는 그런 웃음 코드? “오, 이해하시는구나. 그런 세상이 반드시 올 거다.” 혹시 좋아하는 정치인 있나. “노무현. 너무 짠하다.”
④ 이들은 내가 만났던 어떤 연예인보다 자기객관화되어 있었다. 스스로 대견해 꺼뻑 죽는 연예인 자의식 따위 없다. 담백하고 솔직하며 그리고 명석하다. 하긴 제가 속한 사회의 관습 한계와 인간 본성에 대한 섬세한 통찰 없인 개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균형감각도 부족함 없다. 기획 뒤에 숨어 이미지로 장사하며 오로지 제 한 몸 건사만 관심 있는 숱한 연예인들보다 백배는 멀쩡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가장 하대받는다. 진정 싸구려는 위선과 연출과 기만이건만. 참, 희한하다.
이들이 똑똑하게 굴거나 야하게 굴거나 정치적으로 굴면, 가소롭거나 불편하거나 건방지다. 추녀와 바보 노릇만이 안전하다. 얼짱과 스타 될 수 없는 일반의 좌절과 불안과 소외, 그리 위로받는다. 그러나 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웃음의 범주는 그 사회의 관용과 지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법이다. 바보와 추녀로만 웃는 사회는 바보와 추녀만이 만만한 사회다. 그 빈약한 자존감. 그건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런 평면적 감수성으론 섹시하고 싶은 개그우먼이 전교조 지지자란 사실 정도도 소화가 벅차다.
이제 우리도 사회적이거나 성적이거나 정치적인 웃음에, 공개적으로 파안대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진짜 건강한 거니까. 그게 제대로 세련된 거니까. 개그 하는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비는 이유다. 졸라.
PS - 곽현화, 장도연, 성현주. 이들 트리오의 어처구니없는 막춤 개그,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개콘, 어떻게 좀 안 되겠니.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김어준이 만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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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연. 장도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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