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황수정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영화 ‘여의도’로 복귀한 배우 황수정
영화 ‘여의도’로 복귀한 배우 황수정
① 통상 그렇다. 인터뷰이는 인터뷰어가 정한다. 뭐 그런 당연한 소리 하느냐. 이번엔 좀 달랐기 때문이다. 황수정을 차기 후보군 중 하나로 〈esc〉 팀장이 언급하기 시작한 건 벌써 몇 주 전이다. 별 알고픈 게 없다. 뭐가 있겠나. 그렇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그가 등장한 어떤 드라마도 본 적 없다. 떠올릴 화면 한 컷이 없다고. 그러니 그가 아쉬울 리 없다. 소위 ‘물의’ 사건 역시 그저 ‘음, 이건 결국은, 남녀 문제다’ 정도가 당시 입력된 정보의 전부다. 남녀 문제에, 제3자가, 판관 노릇 하는 것처럼 같잖은 짓도 없다. 더구나 무려 10년 전인데. 그와의 인터뷰, 난 그리 받아들였다. 시큰둥할밖에.
근데 일정 잡혔단다. 어라, 내 반응, 시들했는데. 그래도 잡았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별 무반응에도 그와의 인터뷰 추진하게 만든, 그럴 가치와 필요 있다 판단한 팀의 궁금증, 바로 그게 궁금해진 게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로부터 듣고 싶은 게 있는 게라. 그는 들려주질 않는단 소리고. 왜 황수정이냐는 반문 대신 황수정을 검색했다. 영화로 복귀한단다. 10년 만인가. 아니네. 3년 전 드라마 했네. 그냥 간만에 출연이네. 그걸 복귀라 할 만큼, 그의 이미지는 여전히 ‘퇴장’이 지배하고 있단 소리다. 게다가 개봉 인터뷰 않는다고 욕먹는다. 허. 개봉 관련 노출이 너무 많다고 욕먹는 건 봤어도. 검색창 닫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번엔 왜 인터뷰 않는지를 물으러 인터뷰 가는 거다. 거참 희한한 경우일세.
② 요즘 연예인들, 어딘가, 만화적이다. 예를 들어 서우. 성형으로 만든 부자연스런 안면 입체감이 오히려 배우 존재감으로 작동한다. 사람들, 그걸 받아들인다. 인조인간도 아닌데. 나로선, 신기하다. 해서 그들,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쉽게 구분 간다. 복장부터 태도까지, 뭔가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그의 실물. 모르겠다. 섞여 있어도. 평범하단 게 아니다. 뭐랄까. 이물감이 없다. 아이러니다.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생경하다. 어째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요즘 보기 드문 뉘앙스라, 따로 짚어둔다. 자, 이제 가자.
일단 자백부터 했다. <허준>도 못 봤다고. 해서 황수정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없다고. 뭐 기껏 찾아간 자가, 어렵사리 응한 자에게 할 말은 아니다만 사기 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당신을 궁금해하더라. 난 안 궁금한데.(웃음) 그래서 왔다. 뭘, 왜 궁금해하는지, 그걸 당사자로부터 확인하러. 그런데 난 10이면 10이라 하지 100이라 못 한다. 아니다 싶으면 아예 인터뷰 날린다. 이거 응한다고 나한테 배려나 찬양 따위 기대 말라 못부터 박았다. 단박에, 좋단다. 바로 그걸 원한단다. 10이면 10이라 하는 거. 여기서 시~작.
근데 인터뷰는 왜 안 하는 건가. “인터뷰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뭐가 있나요?” 호, 맞다. 기자들, 아무에게나 마이크 들이댈 무한권력 있는 양한다만, 그런 건 없다. 하고픈 이야기 없으면 안 해도 된다. 그럼 다시 묻자. 하고픈 이야기가 없는 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도 하지만 없기도 해요.” 왜. “사람들이 저한테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사생활에 대한 거잖아요. 제 연기나 일에 관한 평가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데, 저 개인에 대해선 꼭 답해 드릴 의무가 없으니까.” 호, 브라보. 속물적 호기심도 집단화되면 절로 공중의 알 권리가 되느냐고, 이리 대놓고 항변하는 연예인, 진작 보고 싶었다.
“옛날부터, 제가 신인일 때부터 그랬어요. 얼굴 한번 안 봤는데 독점인터뷰 그러면서 하지도 않은 말들 막 쓰고. 그땐 그런 일, 수도 없이 당했죠. 인터뷰를 해도 전혀 다르게 나가더라고요. 서로 필요에 의해 중요한 시간을 공유했는데 정작 의도한 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매체 장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그런 걸 보면서 안 하는 게 낫겠다, 의미를 못 느끼겠다, 그런 생각 했어요. 그런데 그걸 또 기자분들은 쟤 뭐야, 하시는 거죠.” 어릴 때부터 기자들이 재수 없어 하는 스타일이었구나.(폭소) “쟤 뭐야. 쟤 무슨 빽 있어? 막 그러는. 그래서 되게 미운털이 많이 박혔어요.” 기자들 곤조다. 감히, 지가. 그럼 아주 지랄한다.(웃음) 근데 그런 처자가 배우는 왜 한 건가. 어떻게 시작했나. “엠시(MC) 공채시험 봐서. 1기로. 에스비에스(SBS)에서.” 드라마는. “6개월 만에 <해빙>이란 드라마로.” 굉장히 빨리 됐다. “북한여자 배역이었는데. 제가 아무래도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하고 볼도 통통하니까. 모던하게 생긴 스타일이 아니니까. 북한 이미지가 났나 봐요.” 자기 예쁘단 소릴 굉장히 조심스럽게 한다.(웃음) “재수 없다고들 그래서.”(폭소) 그럼 원래 배우 하려 한 건 아니었구나. “아니었어요. 되게 운 좋게 빨리 됐다고 할 수 있는데 전 원래 연기자가 꿈이었던 게 아니니까 오히려 이게 나한테 맞는 길인가 하는 회의가 있었어요.” 언제부터. “처음부터.”
그럼 연기는 왜 한 건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위에서 시킨 것도 있었고. 왜냐면 공채 엠시는 직원이에요. 상사가 너 이거 해, 하니까.(웃음) 어리기도 했고.” 그럼 연기는 직원으로 근무였네.(웃음) “지금 주어진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적어도 욕은 먹지 말자. 그건 제 성격인데. 그런 생각으로 그냥 열심히 했어요.” 점점 익숙해지던가, 배우가. “반반이었던 거 같아요. 일단 제가 연기를 잘한단 생각이 안 들었기 때문에.(웃음) 내게 자격이 있나, 하는 갈등. 그리고 제 성격이 활달한 게 아닌데, 여기는 사람 대 사람이 만나 모든 걸 하니까. 그런 스트레스.”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건 좋던가. 연예인들 보면 대부분 주목받는 걸 즐기는 성향인데. “전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연예인이라고 누가 좋다고 하잖아요? 그럼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그 사랑이 떠났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아요. 이건 그저 제가 선택한 삶이고 일이니까. 그냥 제 일을 열심히 하고 제 인생을 열심히 산 거지, 인기를 얻으려고 연기한 것도 아니고, 그분들 좋으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로 제 직업을 객관화해내는 연예인은 또 처음 본다. 그럼 인터뷰 마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연기자는 연기를 할 때만 연기자지, 단지 직업이 연예인이지, 나머지는 인간으로 똑같잖아요. 그런데 자꾸 사람들은 뭔가 다른 걸 듣고 싶어 하니까. 전 신비주의가 아니에요. 제가 색다른 뭘 드릴 게 없는 거지.” 그의 직업관. 하도 야무져 거의 야박하다.
그럼 당시 당신을 움직인 건 뭔가. “제 인생에 대한 만족. 이런 말 하면 거창하지만 전 제 인생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행복인가, 어릴 때부터 그런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었어요. 아마 이런저런 책의 영향일 거예요. 그런데 당시 문제는 제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단 거예요. 충전도 없이.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었어요. <허준> 전후로 4년 동안. 미친 듯이, 바쁘게 달리기만 했어요.” 워커홀릭인가. “그런 면도 있는 거 같아요. 생각해보면 어릴 적 아르바이트 할 때도 다른 사람들은 대충 쉬어가며 하는데 전 바쁜 게 좋았어요.” 완벽주의자인가. “그런 면도 있고. 그런데 로봇이 아닌데 달리기만 하니 어느 순간 과부하가 걸렸어요.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거죠. 방전이 된 거죠. 모든 게 귀찮아지고, 불친절해지고.”
그러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러면서 만인이 알고 계시는 그 일. 당시만 해도 여배우가 누굴 만난다고 하면 그 자체로 대단한 스캔들처럼 이야기되던 시절이라 누굴 만날 수도 없고.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상황에. 누군가 말 한마디만 따뜻하게 해줘도 마음을 파고들 때 있잖아요. 그때 그랬던 거 같아요.” 세상 모든 연애는 타이밍이니까. “맞아요. 인생엔 타이밍이 진짜 중요해!(웃음) 나 지금 고해성사 하는 건가.(웃음) 그런데 남녀 일은 당사자밖에 모르잖아요. 특히 연예인은 더더욱.” 그렇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인터뷰에 실을 이유가 없는 거 같아요. 아직은 타이밍이 아닌 거 같아요.” 그런 타이밍이 따로 오진 않는다. “그건 제가 정하죠.” 이런 똑똑이를 보게.(폭소) 오케이.
그리고 이어진 그의 스토리, 한참을 듣다 보니 알겠다. 사람들이 믿지를, 않았겠다. 실제 있었던 그대로를. 사연과 내막 듣다 생각나는 건, 한 가지다. 참, 억울했겠다. 대체 그 수준의 분통은 어찌 견딜까. 왜 그런 이야기 하지 않았나. “누구한테요?” 누구든. 언론이든. “그런 이야기 한다고 뭐가 달라졌겠어요. 누가 믿었겠어요.” 맞는 말인데, 사람이 억울하면 일단 하소연부터 하는데. “저 또한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모든 걸 믿었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는 거죠. 그걸 억울하다고 하는 게 오히려 사람 꼴 우스워지는 거잖아요.” 이건 뭐 하도 어른스러워 거의 어리석다 할 지경이다.
“그래도 제가 조사받을 땐 그 이야기 수도 없이 했어요. 나는 몰랐다. 그리고 검사 고소까지 했지만 아시다시피 싸움이 안 되는 거였어요.” 기자들한테는? “기자들은 이미 저에 대한 이미지가.” 재수 없었지 참.(폭소) “그런 것도 있고. 또 그런 것도 있었던 거 같아요. 얌전하게 생겨 가지고 인기 많다고….”(웃음) 도도하게 굴더니 이년 잘 걸렸다, 이런 거.(폭소)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구나. “그렇죠. 그때는 말할 기회도 없었고. 그리고 지금은 구질구질 그걸 변명할 이유가 없고요.”
그런데 말이다. 일단락은 필요하겠다. 적어도 이 일을 계속하는 한. “연예인들, 이미지 중요하죠. 그게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도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제게 가진 호기심을 풀어줘야만 제 일이 잘된다는 걸 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럼 사생활 예쁘게 포장해 보여주면 잘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렇게들 한다. “전 그건 싫어요. 그리고 사람들, 제가 실제 어떠하든, 자기 인생 살기 바쁘잖아요.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건, 당신 인생에선 중요하다. “절 연기자로 먼저 받아들이고, 나중에 그런 이야기 하면 몰라도, 그런 호기심으로만 저한테 접근한 건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직업적 특수성이란 건 있다. “전 매체들의 장사를 위한 소품이 아니잖아요. 제 인생이 장사 소품이 아니잖아요.” 이 대목에서 내내 씩씩하던 그, 그렁그렁하다. 문득, 애처롭다. “그리고 그것도 아셔야 해요. 이제 그 사람과 만날 이유도 없고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사람 또한 자기 삶이 있고 인생이 있는 거예요.” 이제 알겠다. 사람들이 왜 10년 전 그 순간에 여전히 묶여 있는지. 그리고 그는 그럼에도 왜 아무 호응도 않는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 길을 왜 또다시 가느냐. 이제 연기 잘할 것 같은가. 거울 보니까 아까운가.(웃음) 음, 둘 다.(폭소) “인간관계에 대한 노련함이 없어서, 비즈니스에 서툴러 힘들었지만 일 자체는 매력 있고 좋은 직업이라 생각했어요. 더구나 여전히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시고. 이 일은 그렇더라고요. 한번 연기자면 영원히 연기자구나, 내가 이제 연예인 아니라고 해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구나, 피할 수 없는 거구나, 그럼 부딪혀 즐기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고. 그리고 여태 한 가지 역할밖에 한 게 없어요. 순애보에 울고 짜고 우울한.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요. 그런 미련도 있었어요.” 이제 버틸 수 있겠나. “인생은 어차피 자기 선택이니까. 세상엔 공짜가 없는 거니까.”
③ 그는 연예인을 직업이라 한다. 그게 신분인 줄 아는 세상인데. 그는 신세 한탄 따위 않는다. 그런다고 누구도 뭐랄 수 없는 사연인데. 그는 어떤 비위도 부러 맞춰줄 생각 없다. 그 바닥 일이 결국 다 영업이고 장사인데. 연기라는 작업에 능하나, 연예인이란 직업과는 이렇게 불화하는 자, 처음 본다.
그런데 말이다. 제 선택의 결과, 스스로 감당하고 생겨 먹은 대로의 자신, 배신치 않으려는 이 강단 세계관 자존감. 연예인이고 나발이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품위 있지 않은가.
그가 제 과거를 어찌 처리할지는 나도 모른다. 어느 날 기자회견 할지, 언제까지고 침묵할지. 하지만 그게 어떤 선택이든, 앞으로 내 한 표는 그의 것이다. 이런 정도 사람이면, 어떻게든 제 역경 넘어, 마침내 제 길 가는 거, 정말이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야 공평하다. 그리고 그런 게 드라마다.
그 역에 캐스팅될 때까지,
건투를 빈다, 황수정.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배우 황수정
“옛날부터, 제가 신인일 때부터 그랬어요. 얼굴 한번 안 봤는데 독점인터뷰 그러면서 하지도 않은 말들 막 쓰고. 그땐 그런 일, 수도 없이 당했죠. 인터뷰를 해도 전혀 다르게 나가더라고요. 서로 필요에 의해 중요한 시간을 공유했는데 정작 의도한 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매체 장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그런 걸 보면서 안 하는 게 낫겠다, 의미를 못 느끼겠다, 그런 생각 했어요. 그런데 그걸 또 기자분들은 쟤 뭐야, 하시는 거죠.” 어릴 때부터 기자들이 재수 없어 하는 스타일이었구나.(폭소) “쟤 뭐야. 쟤 무슨 빽 있어? 막 그러는. 그래서 되게 미운털이 많이 박혔어요.” 기자들 곤조다. 감히, 지가. 그럼 아주 지랄한다.(웃음) 근데 그런 처자가 배우는 왜 한 건가. 어떻게 시작했나. “엠시(MC) 공채시험 봐서. 1기로. 에스비에스(SBS)에서.” 드라마는. “6개월 만에 <해빙>이란 드라마로.” 굉장히 빨리 됐다. “북한여자 배역이었는데. 제가 아무래도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하고 볼도 통통하니까. 모던하게 생긴 스타일이 아니니까. 북한 이미지가 났나 봐요.” 자기 예쁘단 소릴 굉장히 조심스럽게 한다.(웃음) “재수 없다고들 그래서.”(폭소) 그럼 원래 배우 하려 한 건 아니었구나. “아니었어요. 되게 운 좋게 빨리 됐다고 할 수 있는데 전 원래 연기자가 꿈이었던 게 아니니까 오히려 이게 나한테 맞는 길인가 하는 회의가 있었어요.” 언제부터.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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