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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보단 자기애가 기본…난 되더라”

등록 2011-02-10 09:18수정 2011-02-10 10:07

모델 양윤영
모델 양윤영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이영애 제친 톱광고모델 양윤영


김어준이 만난 여자
김어준이 만난 여자
0. ‘프로젝트 런웨이’를 좋아한다. 패션에 유난한 관심 덕은 아니다. 딱히 실제 입고픈 의상 마주한 기억도 없다. 그건 오리지널리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소재가 누군가의 정체성과 만나 독창적 원본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그 누군가의 계급적, 인종적, 문화적, 지적 토대가 그가 택한 소재와 색감과 구조를 통해 형상화되는 장면들, 그렇게 그 사람이 곧 그 디자인인 지경을 목격하는 건, 묘하게 감동적이다. 유행에 불참하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낙오로 여겨지는, 하여 부단한 교차모방과 상호카피로 결국 모두가 유사한 태와 꼴로만 살아가는 이 몰개성 공동체로 인한 갈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입지도 사지도 않을 감성에, 그런 이유로 매료되는 건 말이다.

그런데 그 프로에선 디자이너뿐 아니라 모델도 서바이벌이다. 그 신세에 차이가 있다면 디자이너는 온전히 제 선택의 결과로 생사가 갈리나, 모델은 누군가 선택의 결과로 그리 된다는 거. 그렇게 제가 지닌 감성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그 용도 발견되고 이용되어야만 한다는 거. 그 지점이 바로 본 인터뷰의 발단이다. 누군가의 창작이 제 존재 목적의 선행조건이라는 거, 이건 좀 서글프지 않은가. 하여 언제 한번은 그들을 만나봐야지 싶었다. 모델이란 업 자체가 궁금했던 게다. 그 언제 한번이 하필 이번이 된 건, 참으로 한국적이게도, 아파트 덕. 올해 초 한 모델이 이영애를 제치고 모 브랜드의 새 얼굴로 발탁됐단다. 찬스.

양윤영을 그렇게 만났다.

① 인터뷰 하나. 도착하니 이미 촬영중. 그럴 때면 으레 자릴 피한다. 카메라만도 충분히 무안하다, 시선 하나라도 덜자, 그런 심산으로 복도에서 담배 한 대 물다 문득 깨달았다. 맞다. 저 처자는 저게 직업이지. 다시 입장. 오, 몸이 막 서먹한 각도로 휜다. 우, 저거 저 포즈로 10분이면 경추 추간판 탈출 확실시. 게다가 그 몽환농염꾸리한 표정. 으, 혼자 괜히 남세스럽다. 느물거리는 재주는 없는지라 괜스레 웃어 젖히곤 도로 나가려는데 던져진 한마디. 괜찮아요. 호, 그새 내 민망을 읽었네. 센스. 좋았어. 오늘은 군말 따윈 필요 없겠군. 하여 인사치레 건너뛰고 바로 들이댔다. 요즘 가장 잘나간다던데, 왜 잘나가나. 잘나가는 게 맞긴 맞나.

“음, 이 업계에선 시에프(CF)를 하나의 정점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2~3년 전부터 시에프 많이 하고 있으니까.” 그럼 왜 잘나가나. 모든 인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당대 대중이 욕망하는 분위기라거나. “그거죠.” 푸하하. 뻔뻔하다. “2~3년 전부터 글래머러스하고 고전적인 미가 트렌드예요. 그동안 모델들이 너무 강했거든요. 지나치게 동양적이었다고 할까.” 쌍꺼풀 없고, 찢어진 눈에, 낮은 코, 튀는 광대뼈. “네.”



모델 양윤영
모델 양윤영
이 대목, 개인적으로 불만 크다. 오리엔탈리즘에 잠식된. 서구에서 먹히니 그게 세련된 줄 아는. 서구가 재구성한 동양을 제 감성인 양 내면화한. 미적 감수성마저 종속된. 그리하여 그런 꼴이라야 시크한 줄 아는. 업계의 그 식민지적 감수성이 너무 초라해, 신경질 난다. 뭐 이건 또 이것대로 따로 다루기로 하고. 자, 다시 진도.

그래서. “그 반작용이죠. 저에 대한 수요는. 더구나 전 웃으면 은근히 친근하기까지 하니까.(웃음)” 푸하. 그럼 그 시작은. “5년 전, 엑스피드 광고. 제게서 코믹한 모습까지 발견한 거죠.(웃음)” 그럼 제대로 터진 건. “2년 전쯤 ‘티(T)가 답이야’ 시리즈. 전화선 잘라 던지면 개가 물고 오는. 극장이건 어디건 아주 빵빵 터졌죠. 그러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하하. 그러다가. “톱스타들만 찍는다는 에이스침대를 찍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양윤영의 몸값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푸하하. 웃기다. 대면 5분 만에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다. 이 처자, 총명하다는 거. 총기 없인 웃음을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잘나가는 이유 스스로도 모르면 시시하니까, 확인해봤다. 근데 애초 모델은 왜 한 건가. “이 말 하려니 모델이 꿈인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전 정말 우연하게 시작했거든요.” 그럴 거 없다. 인생, 계획으로 살아지는 거 아니다. “서울로 오고 싶었어요. 목포여고. 명문고거든요. 근데 수능을 너무 못 본 거예요. 인정할 수 없는 거야. 난 서울을 가야 하는 인재인데.(웃음) 재수는 싫고. 그래서 몸을 팔아서(폭소), 동덕여대 모델학과에. 편입할 생각으로.” 무슨 과로. “신문방송학과.” 그런데. “다들 모델 일 하는데도 전 범생이라 공부만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교수님이 용돈벌이 요량으로 해보라고.” 그래서. “한달 반 특강반 수료했더니 일이 막 들어왔어요.” 수료하자마자? “뛰어난 외모에 내적 아름다움은 숨길 수가 없더군요.(폭소)” 크하하.

실제 해보니 어떻던가. “화려한 직업이 절대 아니었어요. 대기하느라 종일 보내고. 백 스테이지 너무나 열악하고. 땅바닥에 그냥 비닐 깔고. 피곤하면 그 바닥서 자고.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죠.” 그럼 모델 하면 안 되는 사람은. “부정적인 마인드, 이쪽에선 절대 성공 못해요. 남들과 비교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자학하는.” 자존감 낮은. “네. 그리고 표현력, 집중력 부족하거나 너무 곱기만 한 이들도.” 그럼 어떤 자질 요구되나. “우선 자기애, 나르시시즘이 기본 필요해요. 보통 담으론 창피해 못할 일이거든요. 수많은 스태프 앞에서 재빨리 감정이입해 온갖 포즈 순간에 취해야 하니까. 그땐 자기가 세상 최고라고 정말 믿어야 해요. 머리도 순발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순간 미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본인은 그게 되던가. “처음엔 안 됐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저도 정상이 아니었던 거죠.(폭소)” 그게 끝내 안 터지는 사람도 있나. “많아요. 정말 완벽한 보디, 얼굴인데 그게 안 터져 어떤 단계에 못 올라서는 친구들, 정말 안타깝죠.” 반대도 있겠다. “있죠. 같이 슛 들어갔는데 옆에서 보면 장난 아니게 미쳐 있는.” 그게 보이나. “우리끼리는 보이죠.” 다른 고충은. “몸매 관리. 178 정도 친구들이 50킬로 나가니까.” 또. “이쪽은 위계가 굉장해요. 선배 있을 땐 절대 앉으면 안 되고, 물 갖다드리고 하는 식의 각종 수발까지. 군대처럼.”

그러다가. “3~4년차가 고비예요. 이 일은 나이 먹으면 할 수가 없어요. 더 예쁘고 더 크고 더 싼 신인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3~4년차면 몸값 비싸고 경력은 애매한 상황이 되죠.” 스물다섯에 이미 늙는 업이구나. “네. 그즈음이 분수령이에요.” 그때 살아남지 못하면. “주위에 공무원 준비하는 이들 많죠.” 본인은. “유학 가려고 했어요.” 뭘로. “그냥.” 도망이구나. “그런 셈이죠.” 그런데. “지금 회사에서 1년만 같이 해보자고.” 주 종목을 바꾼 거네. 런웨이에서 시에프로. “거기서 제 진로가 확 갈렸어요.”


모델 양윤영
모델 양윤영
해보니 모델이란 뭐던가. 한순간 몸만 빌려주는 마네킹인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배우들은 길게 몰입해 한 작품에서 한 캐릭터로 사는 거지만 우린 짧은 한순간만 그 인물이 되니까. 하지만 그 한순간만은 콘티 속 인물이 정말 되어야 해요. 그게 안 되면 절대 안 나와요. 그 모습이.” 호, 잔재주론 안 되는 거구나. 그게 안 될 때는. “모델로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죠. 스태프들은 이미 모였지, 돈은 지불됐지, 근데 몰입이 안 돼. 그럴 땐 정말 다 집어치우고 도망가고 싶죠. 오히려 옷 벗고 이런 건 전혀 창피하지 않아요.” 전혀? “네. 나 또 이거 보여주면 애들 죽겠군, 싶지.(폭소)”

듣고 보니 모델, 외로운 직업이다. 배우들은 활동중 배역 뒤 인간이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 인간으로 팬들과 교감도 한다. 근데 모델은 오로지 연출된 한순간만 노출된다. 사람들도 그 찰나의 이미지만 소비하지 그 뒤 인간을 묻지 않고. 마네킹으로 족한 거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해받을 기회 자체가 없는 거지. “그건 정말 그래요. 그래서 이쪽 사람들, 정말 외로움 많이 타요. 하지만 그게 이 직업이 감당할 몫이죠. 대신 대중의 기대심리도 낮죠. 이미지 배신하고 대중 기대 저버려 한순간에 망가지는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것도 그렇군.

근데 말이다, 패션용어는 왜 그 지랄들인가.(폭소) 아우터, 레더, 바텀 따위. 개중 젤 웃긴 게 퍼다 퍼.(웃음) “그래야 있어 보이니까.(웃음)” 전문용어로서의 패션용어를 원어로 쓰는 거야 얼마든지 이해 간다. 그런데 그런 건 패션용어가 아니라 그냥 영어잖나 영어. 털을 겨우 퍼라 해놓고 있는 척하는 거 진짜 촌스럽다. 업계에선 그런 문제의식 없나. “제가 아는 한은.(웃음) 이쪽엔 해외파가 많고 영어권 영향을 많이 받으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단 생각은 들어요.”

이후 이명박, 노무현부터 박근혜, 유시민에 대한 단상까지, 4대강부터 인권운동 하는 절친에 대한 부채의식까지, 정치사회적 견해를 한참이나 묻고 답했으나 아직은 모델 양윤영으로만 알려지고 싶단다. 하여 한 대목만 공개한다. 오세훈의 무상급식 발언에 대해 그는 이렇게 촌평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그 말을 뱉었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기서 최소 다섯 번은 박장대소했던 한 시간짜리 인터뷰는 끝이 났다. 영민한 처자다.


현수진 에스팀 본부장
현수진 에스팀 본부장
② 인터뷰 둘. 직업 자체를 짚기로 한지라 매니지먼트 쪽 시각이 궁금했다. 시스템으로 정착한 이후의 패션 매니지먼트 1세대로 장윤주, 송경아, 한혜진, 양윤영 등 국내 톱모델을 관리하는 ‘에스팀’ 현수진(사진) 본부장을 만났다. 다음은 그 일문일답.

모델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나? “모델은 살아있는 마네킹이다. 먼저 얼굴 크기, 다리 길이, 체형을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눈 작고 코 낮아도 그 체형에 어울리는 뉘앙스란 게 있다. 두번째 스타일. 스스로 의상 센스가 필요하다. 세번째 표현능력. 톱모델은 몸을 움직이는 게 다르다. 캣워크만으로 닭살이 돋는다. 그걸 다 갖췄어도 그 외모가 시대와 부합해야 한다. 그건 운이다. 마지막으로 인성. 결국은 인성 좋고 영리한 아이들이 된다.”

모델 하겠다는 이들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되나? “오디션 3개월 30명 정도 보는데, 다 나름 끼 있다 생각해서 오거나 타고난 몸 덕에 주변에서 권해 오지만, 정말 비율과 센스와 눈빛이 맞아떨어져 성공하는 건 한 명 정도. 10% 정도는 훈련으로 가능성을 모색할 만하고. 하지만 훈련으로 안 되는 부분 있다.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몸인데도 눈빛에 힘이 없어 안 되는 경우 있다. 그럴 땐 정말 안타깝다. 하지만 아무리 몸 되고 끼 되고 센스 있어도 모델이 그저 화려해 보여 시작하는 친구들은 못 버틴다.”

그렇게 데뷔한 모델들의 평균 수명은? 그게 끝나면 뭘 하나? “런웨이에만 서는 모델은 수명이 무척 짧다. 20대 중반. 후반까지라도 가려면 그중에서도 돋보여야 한다. 그때 되면 소수는 방송에서 픽업한다. 하지만 강동원, 김민준은 정말 드문 케이스고 대다수는 사라진다. 요구하는 재능이 다르니까. 나머지는 스타일리스트나 홍보대행, 아카데미 강사 등등. 결국 똑똑하고 성실하고 건방떨지 않고 시대감각을 유지하는 아이들,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그저 모델이 아니라 인간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친구들이 톱모델이 된다.”

그럼 신인들 평균 수입은 얼마고, 톱이면 얼마인가? “그건 정말 천차만별이고 비밀인데.(웃음) 신인의 경우 잡지 화보는 5만~10만원, 런웨이 15만~20만원선. 한달 평균 5~6개 무대에 잡지 5~6개 정도 하면 월 100 정도 손에 쥔다. 신인 때는 최소한의 생활비다. 신인은 1년 만에 끝내는 경우도 있지만 3년도 간다. 톱도 차이가 크지만, 1년 2억에서 5억 사이. 많게는 10억 정도까지. 하지만 절대다수는 직장인 연봉 수준이다. 이 직업은 오래 했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없다.”

디자이너와 모델, 그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경우도 있나? “최소 7년차 이상이면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중이라면 이 무대 선다 만다 선택권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자기 무대를 부탁하는 정도의 권력 역전이 가능한 경우는, 국내 다섯 손가락에 드는, 정말 극소수에 한정된다.”

이제 조금은 알겠다. 모델이란 직업의 실체를. 제품의 상업성을 몸으로 체현 대행하는 자영업자. 난 그리 이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업이 애처롭다. 작대기 같은 몸으로 타인의 판타지를 걸친 채 겅중거리며 자기도취하는 그들이. 수억대 연봉의 톱이 존재한다는데도.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주제에. 뭐랄까, 제 몸과 감수성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마치 대리점 인생 같은. 그래도 남자 모델은 하나도 안 슬픈 걸 보면 이 과잉 연민은 그저 내가 수컷인 까닭인가. 어쨌거나 잘됐다. 그 핑계로 양윤영을 한번 더 만나봐야겠다. 으하하하.

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양윤영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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