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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수 없다

등록 2012-07-25 17:52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1989년 7월19일, 미국 덴버를 출발한 유나이티드항공 UA232편, DC-10 항공기는 296명의 탑승자를 태우고 지옥을 경험한다. 세 개의 엔진 중 꼬리날개에 달려 있던 엔진이 고장을 일으켰는데, 떨어져나간 엔진 부품이 조종면을 움직이는 3개의 유압라인을 끊어버려 모든 조종기능을 잃게 한 것이다. 뒤집히려는 비행기를 막아 가까스로 수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베테랑 기장의 침착한 대응 덕분이었다.

비행기는 엔진 추력을 높이면 기수가 들리고 반대로 낮추면 기수가 내려가는 현상이 있다. 비행기의 무게중심과 뉴턴의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떠올리면 된다. 또한 날개 양쪽 엔진의 추력을 다르게 하면 추력이 강한 쪽의 날개가 위로 들려지고, 비행기가 옆으로 기울어지면 선회하게 된다. UA232편의 조종사들은 이런 식으로 비행하였다. 조종간 대신 2개의 엔진 레버를 양손으로 잡고 상하좌우로 춤추는 비행기를 달래어 조종했다.

비행기는 가까운 수시티공항에 불시착을 시도했다. 랜딩기어 잠금 장치를 풀어 떨어뜨리자 비행기는 더욱 요동을 쳤다. 착륙을 위한 어떤 안전장치도 사용하지 못한 채, 비행기는 무서운 속도로 활주로에 부딪혔다. 우측 날개가 노면에 충돌하며 비행기는 뒤집혔고 기체는 네 동강이 나 옥수수 밭에 던져졌다. 그러나 가까스로 활주로에 불시착한 덕분에 296명의 탑승자 중 무려 184명이나 생존하였다. 조종사들은 영웅이 되었고, 사고는 역사에 기록되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맙소사, 엔진추력으로만 비행기를 조종하다니! 말이 쉽지, 조종기능을 잃어버린 비행기는 쇳덩어리와 같다. 수평 유지도 힘든 비행기를 넓은 대지 위에 눈곱만하게 놓여 있는 활주로까지 어떻게 몰고 갈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착륙까지? 그 후 많은 조종사가 같은 상황을 모의비행으로 재현해 보았지만 거의 대부분 비행기와 승객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기적 같은 일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조종사의 신공인가 아니면 하늘이 내린 행운인가?

내가 생각하는 해답은 간단하다. 바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신공과 천운은 따라오게 되어 있나 보다. 조종사는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조종사에게 ‘포기’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지선다의 옵션이 아니다.

그래, 세상이 힘들고 고달픈 것 안다. 슬프고 화나고 울화가 치민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으면 한다. 힘들 때 고개 숙여 포기하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의 이기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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