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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이 뭔데

등록 2013-04-10 18:47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대학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는데, 다들 한목소리로 일이 힘들어 죽겠단다. 화이트칼라들의 일을 잘 모르는 내가 대화에 어울리지 못하자 한 친구가 말을 걸어 주었다. “이번달엔 어디 어디 가니?” “발리, 하와이, 몰디브, 그리고…”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 친구가 소리쳤다. “와, 좋겠다. 완전 놀러 다니는구나!” 그러고 보니 스케줄이 모두 휴양지들이었다. 나는 정색하며 ‘가봐야 모두 24시간밖에 머물지 않고, 그동안 잠자고 밥 먹으면 컨디션 조절할 시간도 모자란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하고많은 날 밤샘과 시차 때문에 신체 리듬은 엉망이고, 소음, 방사능, 자외선, 전자파 등등 몸에 해로운 것 천지이며, 날씨나 비행기가 나쁘기라도 하면 초주검이 된다며 엄살을 떨었다. 그때 다른 친구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래도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 나는 이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어떤 젊은 부기장이 이런 의논을 해 왔다. “저는 수십년 동안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꿈을 이루었으니 앞으로 무엇을 꿈꾸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말했다. “비행이나 잘해라.” 한번은 비행 준비를 막 끝낸 부기장이 흥미로운 말을 했다. “어떤 항공사는 조종사들이 객실 청소까지 도와야 한대요. 꿈꿔왔던 조종사의 모습은 이제 현실에는 없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꾸했다. “비행 준비 다 됐으니 나도 가서 청소나 좀 도와줘야겠다.” 또 한번은 조종사를 꿈꾸는 한 아이가 내게 걱정스러운 듯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께서 ‘이제는 조종사가 버스 기사나 마찬가지이니 더 훌륭한 직업을 꿈꾸어라’고 하시는데 정말 그런가요?” 나는 대답해 주었다. “그렇다면 ‘훌륭한 버스 기사’를 꿈꾸어 보는 것은 어때?” 그러고 보면 나도 성격 참 못됐다.

나의 어릴 적 꿈은 기타리스트였고, 지미 헨드릭스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10살 때 주빈 메타와 뉴욕 필 앞에 선 장영주를 보니 거장, 비르투오소는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평범했고, 일찌감치 그 길을 포기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친구들과 모여 연주하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아직도 음악은 내 마음속에 꿈으로 남아 있나 보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 꿈이란 그저 상상 속 욕구 해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002년에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모두가 행복하지 않았나. 열심히 보람된 하루를 보낸 당신이야말로 오늘 밤 달콤한 꿈을 꿀 자격이 있다.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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