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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번 화끈한 랜딩

등록 2013-05-08 18:44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비가 오는 날 착륙을 하면서 활주로 조준한 위치에 비행기를 무겁게 툭 떨어뜨리려고 했는데, 바퀴가 땅에 닿기 직전에 기수를 좀더 당겨버린 것이 의도와는 다르게 소프트랜딩을 하고 말았다. 비행기가 도착하고 승객들이 모두 내리자 한 승무원이 와서 말해주었다. “기장님 어떤 승객께서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오늘 착륙 정말 좋았다고 칭찬하셨어요.” 비바람 부는 험한 날씨 속에 부드럽게 착륙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고마운 말씀이지만, 내 착륙이 절대 좋은 착륙은 아니었다.

‘세게 착륙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사실은 어떻게 ‘세게’ 내리느냐에 따라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다. 눈, 비가 와서 활주로가 미끄럽거나 돌풍이 불어 조종이 불안정할 때 세게 착륙하면, 강한 충격과 함께 속도가 빠르게 줄어들어 안정된 활주를 돕고 착륙 거리도 줄여준다. 하지만 불안정한 운동 방향과 과도한 에너지로 무조건 세게 내리면 오히려 충격의 반동만 커지고 조종성이 불안해질 수 있다. 즉, 안정적으로 충격이 흡수되면서 비행기가 빨리 감속될 수 있도록 ‘잘 세게’ 내려야 한다. 이것을 조종사들은 펌랜딩(Firm Landing)이라고 한다.

비행기란, 공중에서는 속도가 빨라야 안전하고, 지상에서는 속도가 느려야 안전하다. 공중에서는 속도가 빠를수록 표면에 흐르는 바람이 강해져 조종 효과가 좋아지고 양력도 더 많이 생기는 반면, 지상에서는 속도가 느릴수록 바퀴의 접지력이 좋아져 제동력과 스티어링의 안정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륙과 착륙은 서로 정반대의 특성이 있는 두 개의 조건이 만나면서 연출하는 재미있는 물리 현상이다. 정비례와 반비례 곡선이 겹쳐지는 곳에서 ‘떨어지지 않고 날 수 있는 최소 속도’와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최대 속도’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잘 세게’ 내린 펌랜딩은 대타협이 진행중인 막판 협상에서 양쪽 대표의 손을 강하게 쥐여주는 협상가 구실을 한다. 공중파(派)가 유리하도록 끝까지 에너지를 유지해주다가 지상에 닿는 순간 지상파(派)를 위해 급격하게 에너지를 줄여주면, 결국 모두가 웃으며 도장 찍고, 포옹하고, 악수도 하게 된다.

세상에 부딪히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입장에 따라 서로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서로 눈치 보면서 연착륙(소프트랜딩)할 궁리 하다 나중에 멱살 잡고 경착륙(하드랜딩)하지 말고, 지금 당장 두 손 화끈하게 잡고 펌랜딩 한번 해보면 어떨까? <끝>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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