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내 맘을 왜 몰라?

등록 2013-02-27 19:21

[매거진 esc] 신 기장의 야간비행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내 팔을 잡아끌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낮에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내가 말하길, 은행 앞 달랑 하나 남은 주차구역에 후진으로 차를 넣으려는데, 뒤따라오던 차가 쏜살같이 달려와 그 자리에 전면으로 주차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아내가 황당해서 “지금 그 자리에 제가 주차하고 있는데요?”라고 말하자, 차에서 내린 남자는 “내가 당신 마음을 어떻게 알아?”라고 말하고 가버렸단다. 좋은 자동차에 고급 옷을 차려입은 그 신사는 교수풍의 지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말로 외모만큼 지적인 분이시라면, 어디서도 그렇게 남의 마음을 몰라주실까?

대형 제트기는 기장, 부기장 두 명의 조종사가 같이 비행한다. 그중 한 사람이 비행기를 조종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그를 도와주며 감시하는데, 비행이란 것이 단지 비행기를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용환경을 적절하게 운용하고 통신도 하고 닥치는 상황마다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기에 두 명의 팀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가끔 마음이 잘 맞는 부기장과 비행할 때는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듯 서로 손발이 척척 맞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부기장은 지나치게 나를 감시하고, 또 자신의 의도를 계속 설명하면서 비행한다. 나를 믿지 못하고, 내가 자기의 뜻을 모를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너무한다 싶으면 결국 한마디 한다. “시어머니, 중계방송 그만하세요.”

비행 절차 중에 콜아웃(call-outs)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쇠돌이가 마징가제트에서 로켓 펀치를 날릴 때 “로켓 펀~치!”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즉, 어떤 상황을 인지했거나 기기를 조작할 때, 자신의 의도를 옆에 있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다. 팀워크가 좋으면 서로 한몸이 된 것처럼 눈짓만으로도 달나라까지 날아갈 수 있지만, 그게 잘 안되니 많은 콜아웃을 만들어 억지로 호흡을 맞추고 소통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내 직업이 고마운 것은, 적어도 비행은 소통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비행기가 사고로 치닫는 순간, 마지막으로 내 승객을 구해줄 사람은 오직 마음으로 소통하는 내 부기장뿐이다.

요새 ‘소통’이란 말이 유행이다. 그런데 모두가 원하는 소통이란 그저 얼굴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 하고 듣고 싶은 말 듣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소통이란 서로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눈앞에 후진하는 차가 주차를 하려는지 이륙을 하려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통이 되겠는가?

신지수 대한항공 A330 조종사·<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한겨레 인기기사>

초등생, 학원 차에 옷 낀 채 끌려가다 사망
박 대통령, 국회에 불만 표시 “안보위협 상황…김장수 없어 안타까워”
구리로 옷을 만든다?
이재용, 영훈초에 컴퓨터 40대 기증…아들은 재단 같은 영훈국제중 합격
“김병관, 천안함 사건 다음날 골프장 출입”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