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30만부가 팔린 〈시크릿〉(론다 번 지음, 살림BIZ 펴냄)에는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책에서 말하는 비밀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뿐이다.
데카르트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이후 미국 대중의 관심은 몸과 마음으로 이월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빠르게 ‘상품화’하는 데 귀재인 그들도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성찰 같은 것을 더욱 중시하게 됐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한편에서는 늘 보아왔던 ‘신변잡기 같은 하찮은’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간단하게 매도해버린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기다리던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열광한다. 하지만 책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내가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에 저절로 빠져들 것이다.
올해 이런 종류의 책이 유난히 강세다. 〈이기는 습관〉(전옥표 지음, 샘앤파커스 펴냄),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정철진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신시야 샤피로 지음, 서돌 펴냄), 〈금융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송승용 지음, 웅진윙스 펴냄) 등의 자기계발서나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돈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김영사 펴냄), 아주 작은 약국을 마산의 랜드마크로 키워낸 김성오의 독특한 경영철학을 담은 〈육일약국 갑시다〉(21세기북스 펴냄),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난 손자에게 심리학 박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인 〈샘에게 보내는 편지〉(대니얼 고들립 지음, 문학동네 펴냄) 등 자전적 이야기가 가미된 책도 남다른 ‘비밀’을 털어놓기는 마찬가지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남인숙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와 〈여자생활백서〉(안은영 지음, 해냄 펴냄)의 ‘성공’ 이후 갈수록 자장을 넓혀가는 여성용 자기계발서나 〈배려〉 〈경청〉 등 인간의 마음 한구석을 확대해 보여주는 한 단어 제목 책들의 유행도 같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책이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날로그 시대 독자는 정보를 얻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주축 세대는 새로운 흐름을 따라잡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에서 하루도 벗어나기 어렵다. 평균수명이 높아진 이후 새로 발견된 중년기에도 늘 미래에 대한 준비만 있을 뿐 한시도 자신을 제대로 즐겨보지 못하고 있다.
개중(個衆, 개인으로 흩어진 대중)은 그런 불안감 때문에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와 논리가 생성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을 빠르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돈과 성공, 건강이라는 생활 관련 갈래에서부터 철학과 고전 등 문학 갈래에 이르기까지 이것만 읽으면 기본은 한다는 기초적 책 찾기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말이 기초이지 개중은 그것을 만병통치약(솔루션)으로 여기고 있다. 앞의 책들은 남보다 효율적으로 핵심을 취하고 싶다는 개중의 욕구에 부합해 갈수록 시장성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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