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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그들의 명품과 당신의 명품

등록 2006-08-23 21:35

강주연 패션 어드벤처
패션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쓰기 찜찜한 용어가 ‘명품’이다.

장인의 손에 의해 탄생하는, 그야말로 장인의 혼이 깃든 물건이 바로 명품일진대, 요즈음 우리에게 명품이란 그저 ‘고급 수입제품’이란 의미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한평생 한 가지 기술에만 매달려 예술로 승화시키는 각계의 명인들에게는 누가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고급 수입제품 중에는 마치 장인이 빚어낸 듯, 본래 의미의 ‘명품’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훌륭한 제품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제품 하나하나 모든 공정을 숙련된 시계 장인들의 손을 거쳐 완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계 밴드의 탄력성에 대해서만도 수천 번의 테스트를 거쳐 탄생한다는 모 수입 브랜드의 시계나, 가죽 표면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소의 땀구멍부터 관리하여 실오라기만한 흠집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모 브랜드의 가죽 백 같은 것은 분명히 ‘명품’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충분한 정성과 공이 깃들어 있는 제품들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이런 제품들은 고가 수입품 중에서도 ‘더러 있을 뿐’ 값비싼 수입품 모두가 명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위 ‘패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옷 잘 입기로 소문난 모델 케이트 모스(사진 왼쪽)나 여배우 클로에 세비니는 평소 싸구려 빈티지와 유명 브랜드 제품을 함께 섞어 멋지게 연출하는 ‘믹스 앤 매치’의 달인들이다.

이들이 어떤 백을 들고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하면 바로 유행이 될 만큼 패션에 있어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이들이 선택하는 쇼핑 목록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들만의 기호와 스타일에 따르는 고집스러운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저 유명 디자이너의 것이라 해서, 그저 트렌드라 해서 마구잡이로 사거나 입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오른쪽)은 케이트 모스나 클로에 세비니와는 좀 양상이 다르다. 타고난 부에 대한 노골적인 행사(?)랄까, 유행이라면 뭐든지 사들이고, 뭐든지 입어댄다. 어쨌거나 그녀 역시 이제는 패션 산업에 영향력을 끼치는 ‘패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패리스 힐튼처럼 자랑해야 할 부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라면 쇼핑의 기준은 주체적이어야 한다. 대대로 유럽 왕족들이 애호했다는 고가의 프랑스산 수제 백이 내가 원하는 용도와 내 스타일에 맞아서 들겠다면 그건 다행이다. 그러나 단지 남들이 그 백을 든다니까, 그 백이 그저 최고의 ‘명품’이라니까 든다면 그건 오답이다. 그런 기준이라면 가짜 명품 시계도 피해 갈 방법이 없다.

옷 잘 입는 멋쟁이들이나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게 될 때마다 묻는 질문이 있다. ‘옷을 잘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을 먼저 발견하세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고가의 수입 브랜드를 모조리 ‘명품’이라 부르느니 차라리 내 스타일에 맞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만의 애장품을 ‘명품’이라 부르면 어떨까.

엘르 패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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