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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꽃향기로 가는 꼬마자동차 갖고파/김선우

등록 2006-10-12 19:30수정 2006-10-14 19:09

‘꼬마자동차 붕붕’을 기억하시는지? 붕붕은 ‘미래소년 코난’과 함께 유소년기의 나를 텔레비전 앞으로 유혹하던 만화 캐릭터다. 붕붕의 주제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붕붕붕 아주 작은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 나도 모르게 아주 뜻밖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때가 있는데, 그 노래들의 목록에 꼬마자동차 붕붕이 섞일 때가 가끔 있다. 꼬마 자동차 붕붕을 흥얼거릴 때, 정말로 나는 붕붕이 그리워지곤 한다. 엄마를 찾아 주인공과 함께 모험을 하는 붕붕의 모험담보다 붕붕의 존재 자체가 그리워진다는 의미다. 이 노래를 부를 때 내 악센트는 주로 ‘아주 작은 자동차’와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에 가 있곤 한다. 내가 원하는 자동차의 두 측면, 일테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동차의 모델을 붕붕이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붕붕은 ‘아주 작은’ 자동차다. 한국의 도로는 보행자에게 너무도 위협적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위한 길을 만든 후 보행자의 길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도로를 비인간화한다. 보행의 자유가 배려되지 않은 도로를 덩치 큰 차들이 위협적으로 질주한다. 더 큰 차, 더 비싼 차, 더 ‘뽀대 나는 차’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도로 위에서 무의식적으로 무한 증폭된다. 처음 유럽에 갔을 때 조그맣고 예쁜 다종다기한 모양의 자동차들을 보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작은 차들이 무람없이 큰 차들과 섞이는 풍경의 경쾌함. 그에 비해 우리의 자동차 문화란 힘과 규모의 단선적 강조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내 차가 대기오염 주범’이란 부채의식 시달리다

바이오디젤 시판 얘기 듣고 한껏 부풀었다

그러나 눈앞 이익 좇는 기득권층 상용화 본체만체

가혹한 환경재앙 겪고서야 대체에너지 눈뜨려나

공간이동의 수단으로 제한되기 쉽지만, 인간이 오랜 시간 꿈꿔온 시간여행의 꿈을 가장 소박한 형태로 구현하는 것이 아마 자동차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자기만의 공간을 구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하철과 버스 등의 공공교통수단을 자주 이용한다는 정치인들의 ‘미담’이 선거 때면 가끔 회자되기도 하지만, 출퇴근 시간의 살인적인 혼잡함을 상시적으로 겪고 살아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현재의 공공교통수단의 비인간적인 혼잡함과 밀도는 자동차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여러모로 자동차의 매혹이 크긴 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내 감정은 끊임없이 이중적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자동차가 지구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심해지는 지구환경 문제를 각성하며 과감히 자동차를 버리는 실천적 이성들을 만날 때 몹시 부끄러워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내게 끊임없는 부채감을 불러일으키는 자동차의 최대 결점 요소가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하여, 고백하건대,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출현을 고대하는 것은 내 부채의식을 덜고 싶은 상당히 이기적인 욕망에서 출발한다. 나는 내 여행길의 동반자가 지구대기를 오염시키는 범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좋은 형태는 역시 붕붕이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 연료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올 때 들판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나 국화꽃 향기를 맡게 하면 ‘만땅’으로 에너지가 충전될 수 있다면! 꽃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피어있는 꽃의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 연료를 삼을 수 있다면 그처럼 꿈같은 일이 있을까.


교통 정체로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앞차가 뿜어내는 매연을 인상 찌푸리며 바라보면서 나 역시 똑같이 매연을 뿜어내며 이 도로 위 수천대의 차량 행렬 속에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삶의 양식을 취하고 변화시켜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그리하여 바이오디젤의 시판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나의 부채의식을 탕감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런데 어느 순간 바이오디젤의 보급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정부 차원의 과감한 지원과 의지 없이는 바이오연료의 보급과 확대는 현실 자본의 편중구도 속에선 매우 어려운 과제다. 정유회사들의 막강한 담합이나 로비를 견디기 힘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석유산업은 미국과의 연계성 속에 존재하므로, 미국이 석유로 돈을 벌 욕망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한 미국의 입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바이오연료를 써보기도 전에 온갖 악성 루머들을 언론에 노출시키며 소비심리를 위축하거나 바이오연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배후가 궁금하다. 악성 루머의 대표격인 자동차 엔진의 문제, 생산 원가의 문제 등은 석유에 의존하는 지금의 에너지 사용 체제에 비해 훨씬 용이하게 문제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바이오에너지 사용에 선구적인 유럽에서는 이미 많은 문제들이 극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선우/시인
김선우/시인
공존의 가능성, 지속가능한 미래의 공생에 관심 없이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려는 기득권자들의 탐욕이 바이오연료의 상용화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바이오연료의 생산과 사용 메커니즘이 선구적인 독일의 경우를 보면서, 나는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독일은 이미 60, 70년대에 가혹한 환경재앙을 겪은 나라다. 산성비로 타들어간 죽음의 숲과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치명적인 재앙을 경험한 독일에서 바이오에너지가 선구적으로 개발되고 상용화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역시 가혹한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대체에너지에 뒤늦은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언제쯤이면 부채의식 없이 당당하게 나의 조그만 자동차를 몰고 숲길을 지날 수 있을까.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미래의 붕붕이 그립다.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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