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방송중
일주일 중 가장 무료한 시간이 주말 저녁이 된 것은 순전히 티브이 때문이다. 집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리모컨 발명한 사람에게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으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그 ‘황금시청시간대’에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이유는 오락프로그램에서 땀흘리는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가수들이라서다. 팥쥐 엄마 밑에서 깨진 물동이를 채우느라 고생하는 콩쥐를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하여간 그래서 〈사랑과 야망〉 하기 전까지 다시 잔다. 나이 든 증거래도 솔직히 할 말은 없다.
몇년 전만 해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얼굴 없는 신인가수의 7분짜리 뮤직비디오 최초 공개도, 컴백한 서태지의 단독 콘서트도, 주말 저녁시간을 설레게 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부~탁~해요”라는 유행어로 가수들을 소개받았던 시간도, 이태원 무명 그룹 ‘들국화’의, 대학생 ‘이선희’의 첫 스페셜 무대를 본 시간도, 지금 “당연하지”라는 반말 대결을 들으며 웃기를 강요받는 그 ‘골든 타임’이었다.
방송이 음악을 버린 것인지, 음악이 스스로 집을 뛰쳐나간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프로그램 말미에 광고 시간보다도 짧게 틀어주는 뮤직비디오는 갖은 착한 척을 다한 뒤 얻어먹는 보리개떡 한 조각 같아서 더 부아가 치민다. 이혼을 할 거면 〈연애시대〉의 동진과 은호처럼 애나 없든지. 방송과 음악의 이혼 같은 별거, 혹은 별거 같은 이혼에 눈칫밥을 먹는 이들은 그들이 낳아 놓은 수많은 가수들뿐이다. 무책임하게 헤어졌으면 만나지나 말든지다.
4년에 한번 만나서 공 차는 선수들 응원이나 해주란다. 심지어는 새벽 4시까지 말이다. 월드컵 응원전을 새벽까지 눈 비비며 같이 보고 있던 초등학교 동창 녀석의 “저런 걸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 제대로다”라는 반어법에 얼굴이 더욱 벌게진 것은 공범이라는 자책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만난 음반제작자는 “더 큰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똑똑한 친구들이 음악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이에요”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잘 된다고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다 몰려서 5년 뒤에는 그나마 있던 음악적 경쟁력까지 없어질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연애시대〉에서 받은 ‘은혜’는 이혼이라는 극단적 이별방법이 결국 그들을 다시 만나게 했다는 낯선 방법을 발견했다는 것, 또 행복했던 만남의 추억에서 나온 영원한 에너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방송이 음악을 향해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이라고 노래 불러준다면, 음악은 다시 그에게 와 ‘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4년마다 찬란하게 피어나 너무나 허무하게 지는 그런 것 말고 말이다. 어쨌든 한 달 남짓 동안 다들 수고 많았다. 특히 프랑스의 지단. 으이구 좀 참지.
이문혁/씨제이 미디어 기획특집팀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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