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본질을 비켜간 ‘표현 수위 논쟁’

등록 2010-08-22 19:17

<악마를 보았다>
<악마를 보았다>
[남다은의 환등상자] <악마를 보았다>

<악마를 보았다>를 끝까지 보았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극장 문을 열고 나가는 상상을 여러 번 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그것이 이 영화에 대해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대의 항의의 표시였다. 영화가 건 게임에 휩쓸리지 않고 똑똑히 본 후, 발언할 것이다, 라는 게 그때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 생각이 얼마나 끔찍하고 바보 같은 것이었는지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자리를 지킨 것이 항의라고? 거기에 은밀한 쾌감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보고 말았고, 이제 그다음 내가 선택할 일은 이 영화를 쓰느냐, 마느냐의 여부다. 어떤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끝까지 침묵을 지키는 것이 최선의 태도일 때가 있다. 무슨 견해를 피력하든 일단 논쟁의 중심에 발을 들이는 순간, 비평은 결국 그 영화의 담론 내부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쟁은 영화라는 산업, 혹은 외설적 호기심에 대한 싸움이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에 공모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가 그런 영화일까.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여러 함정을 무릅쓰고라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것이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둘러싼 대개의 논쟁들, 이를테면 폭력의 수위나 그와 관련된 심의 결과에 대한 찬반론에 관심이 없다. 이 영화가 잔인한 건 맞지만, 이보다 강도가 센 영화들은 무수히 많다. 영화의 폭력성이 모방범죄를 일으킬 것이라는 겁에 질린 목소리들에 대해서라면 당신이 사는 이 현실부터 제발 똑바로 보라고 말하고 싶다. 반대로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사태에 대해, 마치 그럴 줄 몰랐다는 듯 억울해하는 자들에 대해서라면, 영화를 만드는 일이 결국 세상과 싸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는지 되묻고 싶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이미 초중반, 수현이 범인 경철을 찾아냈을 때 끝난다. 그런데 영화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수현의 복수를 미룰 때, 그 목적은 경철에게 고통을 안기려는 수현의 것이 아니라, 영화의 것이다. 어떤 서사적 의미도 없이 그저 더 잔혹한 스펙터클을 기다리는 시간, 혹은 그 시간이 미뤄지는 데서 오는 쾌락. 영화가 구경꾼들을 위해 벌어준 시간. 그때 영화는 스스로를,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수현의 자리로 거듭 되돌려 놓는다. 그의 복수심을 이해한다면 복수의 행위도 영화적으로는 용납할 수 있지 않냐고 유혹한다. 하지만 복수는 가학적 쾌감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말하자면 영화와 우리는 희생자를 희롱하고 육체를 훼손하는 경철의 시점 쇼트를 즐기면서도 그 시점의 주체를 경철에게 떠넘긴다. 그러니 <악마를 보았다>를 본 뒤, 영화가 상영되는 걸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 자리로 이끄는 우리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것, 차라리 그 편이 솔직하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