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유 이야기 /
대지를 녹여버릴 듯 작열하던 한여름의 태양이 서산 위에 걸리면 그제야 서늘한 바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불어온다. 그 순간 일과 더위에 지친 나의 몸과, 한시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온갖 정신적 자극들로 벌겋게 달아오른 정신은 아직 빛이 남아 있는 이 일몰 전후의 시간들을 헛되이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온다. 몸과 정신이 연합작전을 펼치며 압박해 오는 ‘휴식’에 대한 요구다. 예전 같으면 이런 열망 앞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막막해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신호를 받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달려가는 곳이 생겼다. 사실 내 몸은 이미 내가 가야 할 곳을 알고 ‘그곳’으로 빨리 달려가자는 아우성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곳은 바로 나의 ‘주말농장’이다. 주중 어느 때에라도 원하는 시간에 갈 수 있고, 내가 아직 진정한 농부가 못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주말’ ‘농장’이라는 이름보다는 나의 ‘텃밭놀이터’ 혹은 ‘초보농부학교’라는 이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처음 주말농장을 신청해서 시작할 때만 해도 이곳이 나에게 그토록 의미 있는 공간이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다만 씨를 뿌려주고 간혹 내킬 때면 찾아가서 물을 뿌려주었을 뿐인데, 노력한 그 이상의 수확으로 되돌려주는 땅의 관대함이란.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맛본 소중한 체험이고 감동이었다.
내 손으로 키워 수확을 했으니 화학비료나 농약에 대한 우려 없이 풍성한 야채를 맛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막 수확한 식물들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느낄 수 있는 나눔의 기쁨 또한 누렸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도시라는 공간에 나와 살면서 서서히 잊혀져가던 소중한 가치의 재발견이었다. 내년엔 평수를 넓혀서 더 많은 사람들과 수확을 나누고픈 생각에 마음은 벌써부터 저만치 앞서간다.
텃밭에 나가 물을 주거나 풀을 뽑아주는 등의 크고 작은 노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내가 식물을 돌보고 가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물들이 나를 쉬게 하고 돌보아주는 것만 같다. 이런 즐거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를 거듭해가며 주말농장과의 인연을 지속적으로 가꾸어가는 것이리라. 이 글을 읽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주말농장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맛보기를, 그래서 그 생명의 녹색 공간이 이 삭막한 도시 속으로 점점 더 많이 파고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병주/서울 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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