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유 이야기 /
어려서부터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틈만 나면 동네 책방을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책을 보고 돈을 치르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었다. 권 단위로 계산하는 것과 시간 단위로 내는 것. 나는 시간 단위로 돈을 냈다. 한 시간에 다섯 권을 후딱 해치우면, 권 단위로 돈을 내는 것보다 훨씬 돈을 아낄 수 있었다. 이렇게 빨리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문장을 단어에 집착하지 않고 통째로 읽으면서 빠르게 내용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을 통독이라고 해야 하나, 속독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책을 굉장히 빨리 읽는 이런 기술은 꽤 유용했다. 시험 시작 1시간 전에 다른 범위를 공부했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알아채고 다른 학우들의 노트를 빼앗아 볼 수 있을 때는 더더욱 쓸모 있었다. 시험 공부도 그러할진대 수필이나 가벼운 소설 한 권 정도는 한 시간이면 볼 수 있었고, 어렵고 두꺼운 책이라도 넉넉잡아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다. 삼겹살을 먹으러 가서 고기 굽는 시간도 지루해할 만큼 급한 성격도 속독 버릇을 들이는 데 한몫했을 게다.
일찌감치 자리잡은 습관 때문인지, 난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글을 봤다. 책을 내려놓았을 땐 대략의 줄거리만 남았을 뿐, 작가가 살며시 글자 사이사이에 숨겨놓았을지도 모를 의미까지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책장을 덮고 잠시 사색에 잠길 시간도, 지금까지 봤던 책을 떠올리며 되새김질할 시간도 없었다. 이 문장은 참 멋지구나, 메모해 보고 때론 이런 건 어떤 의미일까 찬찬히 생각하며 나만의 필터로 걸러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난 모든 것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생각해 봤다면 나에게 소중한 의미로 남았을 것들을 그냥 지나쳐 온 것은 아닌지. 책이야 다시 펴볼 수 있다지만, 그냥 지나간 일들은 다시 잡을 수도 없다. 사랑했지만 멀어져 간 사람, 항상 옆에 있었지만 서먹해진 친구, 언제나 함께할 것 같았지만 떠난 동료.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지. 인생도 통독으로, 속독으로 살고 있는가.
그런 마음으로 우연히 펼쳐든 노자의 도덕경에서,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그릇 속의 빈 곳”이라는 구절을 만났다. 사람들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아(自我)라는 양질의 점토를 고운 그릇으로 빚어낸다면, 쓸모 있는 빈 곳은 책이 남겨준 사색으로 채워지는 그곳이 아닐까.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새롭게 펴 본다.
허정윤/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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