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유 이야기 /
“궁상이다. 정말 궁상이야~”
한편으로는 한심하다는 듯,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남다르긴 하다. 요즘 세상에 연필, 더군다나 몽당연필을 볼펜깍지에 끼워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또 그 흔한 연필깎이도 없이 문방구용 칼을 쓴다.
연필을 주 필기구로 쓰기 시작한 건 취업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집에서 ‘놀고 있는’ 연필이 있어서 쓰기 시작했던 것 뿐이다. 기나긴 취업 공부에 다듬어져 어느새 몽당연필이 되었을 뿐. 버리기 아까워 볼펜깍지를 끼우고 나니 그것도 제법 쓸만했다.
연필을 쓰면서부터, 뭉뚝해진 심을 칼로 싹싹 깎을 때의 손맛이 상당히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필을 깎다 보면 새삼스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되뇌어진다. 대충 했다가는 얼마 쓰지를 못한다. 잘못 깎았다가는 중간에 심이 팍 부러져 처음부터 다시 칼질을 시작해야 한다. 조심스레 연필을 그러잡고 차분히 깎아낼 때 나는 은은한 나무 냄새, 곱게 갈려 흩뿌려지는 흑연 냄새는 연필 깎는 잠깐의 수고를 위로하는 듯 향기롭다.
그 향에 실려 초등학교 시절의 아련한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 시절 나는 연필을 잘 못 깎는 편이었다. 부잣집 아이들은 ‘은하철도’ 연필깎이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연필을 들고 왔지만 우리집은 그럴 형편이 못됐다.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부지런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됐는지 내가 깎는 연필들은 죄다 울퉁불퉁했다. 내 짝꿍은 다혜라는 아이였는데, 그 애는 마치 수필 ‘방망이 깎는 노인’에 나오는 노인처럼 연필을 참 잘 깎았다. 연필계의 ‘마스터피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혜는 집이 부자라 멋진 연필깎이가 있었는데도 꼭 시간을 들여 칼로 천천히 연필을 깎았다. 마음씨도 참 고와서 못나고 뭉뚝한 내 연필을 종종 깎아서 건네주곤 했다. 잘 다듬어진 연필처럼 다혜의 얼굴도 참 예뻤었다.
볼펜깍지에 끼워진 몽당연필로 영어공부를 한다. 시간이 흘러 잠시 머리가 아파지면, 천천히 무뎌진 연필끝을 깎으며 잠깐의 휴식을 즐긴다. 어쩌겠나. 나이 제한에 걸려 취업이 안 되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살길을 찾아야지. 공들이지 않으면 연필 하나조차도 제대로 깎이지 않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이제껏 난 공짜나 ‘한방’ 인생을 원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방망이 깎는 노인이나 다혜처럼 나만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어야겠다. 집에 있는 연필들을 다 쓰고 깎고 하면 나한테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려나? 얼씨구!
곽동운/서울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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