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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핸드폰·이어폰 치우니 사람이 보이네

등록 2007-10-15 20:02

나의 자유 이야기 /

일주일에 두어 번은 거의 막차를 타고 집으로 온다. 요즘은 잠시 영어공부를 해 보려고 이어폰을 끼고 왔다. 그런 이유로 주변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그저 영어 단어 하나 더 들리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고뇌했다. 그런데 그날은 좀 피곤했던 관계로 그러한 이어폰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렇게 해방된 내 귀, 눈, 머리는 주변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민중의 지하철. 그 밤의 공간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모습.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술을 먹고 얼굴이 벌게져서 주변 사람과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내 옆에서 그날 먹은 술과 고기 냄새를 진하게 내는 한 대학생. 그런 소란 중에도 밤늦게까지 꼭 붙어 있고 싶어서인지 꼭 안고 서로 바라보며 홍조 띤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커플들. 그런 모든 사람들이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집으로 간다. 지하철이라는 서울의 땅바닥을 누비는 어두컴컴한 공간을 통과하여 ….

50여분간의 장거리 지하철 탑승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도 바꾸어 놓는다. 냄새 나던 학생은 어느덧 내리고 고등학생같이 보이는 두 남녀가 탔다. 그리고 여학생이 앉는다. 남학생은 자리를 양보했다. 남학생과 여학생은 웃음이 흘러넘친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네들의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온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분명 여학생이 나이가 많은 것 같다. 남학생은 까치산역에, 여학생은 발산역에 내리는 듯하다. 남학생이 걱정된다며 여학생의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한다. 그러나 여학생은 자신의 얼굴이 무기라며 웃으며 거절한다. 까치산역에 도착했다. 남학생은 내리려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한다. 아무래도 발산까지 가야 할 듯하다고. 그네들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서로를 보는 순수한 눈빛. 서로에 대한 이끌림. 서로에 대한 설렘.

이팔청춘 남녀의 순수한 사랑이라 아름답게 느낀다고? 아니다. 이팔청춘 남녀의 사랑은 ‘이성 중심’ ‘성인 중심’ 사랑관의 폭력이다. 그저 그네들의 처음, 처음의 모습이, 그것이 아름다울 뿐이다. 인간에게 처음이라는 것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 아닌가. 처음 태어나서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엄마의 눈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놀라움처럼.

이런 즐거운 경험을 해보고 싶지 않은지. 그것은 바로 우리 귀와 눈이 핸드폰과 이어폰에서 해방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이런 독특한 경험을 해보는 건 어떨지. 지하철에서 혹은 버스에서 우리 가끔은 주변에 오감을 열어 놓는 것, 그것이 느림과 여유의 출발이 아닐지.

김도민/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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