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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베, 조금만 기다려〉(양철북)는 아이들이 강아지를 구해낸 이야기입니다. ‘로쿠베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하는 이야기로 첫 장면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림에는 로쿠베의 모습이 없습니다. 구덩이 아래를 보느라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엎드린 아이들의 걱정스런 얼굴만 그려져 있습니다. “바보!” 칸이 말했습니다. 개가 구덩이에 빠지다니 진짜 바보라는 거죠. 이렇게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에는 아이다운 생각과 말, 행동들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로쿠베를 구하려 애씁니다. 엄마들을 불러오기도 하고 골프채를 흔들며 지나가는 아저씨도 불러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가버립니다. “비겁해!”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아이들은 로쿠베를 위해 노래도 불러주고 비눗방울도 불어줍니다. 구덩이에서 꺼내지 못하는 동안에도 로쿠베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죠. 아이들은 궁리 끝에 로쿠베의 여자 친구 쿠키를 바구니에 태워서 내려 보냅니다. 로쿠베가 바구니에 올라타기를 기대하면서요. 쿠키를 바구니 안에 넣고 내려 보내는 대목의 글과 그림이 재미있습니다. 쿠키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약간 무서워하는 듯합니다. ‘살살 살살. 기우뚱. 앗!’ 하마터면 쿠키를 떨어뜨릴 뻔도 했습니다. 로쿠베가 구덩이에 빠진 뒤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위기 끝에 따뜻한 결말을 맞습니다. 아이들이 로쿠베를 결국 구해내지요.
글을 쓴 하이타니 겐지로는 17년 동안 교사생활을 한 뒤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태양의 아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같이 좋은 동화를 쓴 작가입니다. 겐지로는 ‘어린이는 인간의 뛰어난 원형’이라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지닌 생명력과 세상에 대한 태도, 모든 것을 느끼고 흡수하는 지적 호기심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죠.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에서 아이들은 고통에 처한 친구를 저희들 힘으로 구해냅니다. 어쩌면 구덩이에 빠진 로쿠베는 아이들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은 이야기 자체를 즐깁니다. 하지만 로쿠베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책속에 나오는 아이들의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무척 중요한 믿음을 얻게 됩니다.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구해주겠다는 생각, 내가 위험할 때 누군가 도와줄 것이란 믿음을요
이성실/자연그림책 작가 6315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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