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이들
책꽂이 / 내가 만난 아이들
지난해 말 일본의 아동문학작가 하이타니 겐지로가 타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그의 작품을 읽고 살아갈 힘을 얻었던, 아픔을 딛고 일어설 용기와 위로를 찾았던, 그와 더불어 따듯한 세상을 일구고자 했던 사람들이 소리 죽여 마음으로 울었다.
다행히 그들을 위로할만한 책이 한 권 나왔다. 2004년 나왔던 책을 다시 고쳐낸 것이기는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 못하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겐지로가 직접 쓴 자전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겐지로가 태어난 곳은 대지진으로 우리에게도 귀익은 고베. 1934년생이니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세대다.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 그의 곁에는 언제나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세울 것 없는 하층민들이었지만, 어린 하이타니를 보듬어주고 희망을 불어 넣어준, 고맙고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굶주림에 지친 그는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다. 하지만 그의 담임은 혼을 내기는커녕 도둑질을 한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물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그는 예민한 시기에 ‘인간성을 다치지 않고 성장할 수 은총’을 얻게 된다.
이후 초등학교 교사로서 보낸 17년은 그의 삶을 다시 한번 뿌리부터 바뀌게 했다. 그가 아이들에게 배운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낙천성’과 ‘상냥함’. 가령 이렇다. 오카모토 료코란 아이는 아빠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 어느날 료코는 겐지로에게 다가와 원래는 안되는 일이지만 자신의 수학여행 적립금 통장에서 400엔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겐지로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렇게 해줬다. 이튿날은 부모 수업참관일. 료코의 엄마는 새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온다. “그 옷은 열한 살 소녀의 진지한 삶 속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움의 결정체”라고 겐지로는 적고 있다.
1학년 다카하시 사토루 역시 그에게 낙천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 아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다가 덤프트럭에 치여 오른쪽 다리를 자른 사토루는 <나의 다리>란 제목의 시에서 “나는 맨날 울기만 했다/그리고 한참 있다 뼈가 자랐다/‘뼈야, 너는 나한테 다리가 있는 줄 알고 자라 주었구나’”라고 적었다.
자신이 학교에 간 사이 부모가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는데도, 점심값으로 받은 100엔을 들고 빵 대신 아기에게 줄 장난감을 사는 아오야마 다카시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겐지로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상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상냥함을 잃지 않는 이 아름다운 인간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교직을 그만두고 이곳저곳 떠돌며 방황하던 시절에 만난 오키나와 사람들, <기린>이라는 문예잡지를 통해 알게 된 어린 시인들을 통해 인간의 낙천성과 상냥함 그리고 생명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겐지로의 진솔한 고백이 담겨 있다. 자신에게 절망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자신이 좀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실천해 온 삶의 기록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가 보여준 진정한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깨달음, 견손함 앞에 한 인간으로서 숙연함을 느낀다.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98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일본 아동문학작가 하이타니 겐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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