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그림에 덧칠된 현대인의 황량한 심리

등록 2007-11-04 16:53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정지원 시인의 교과서 미술기행 / 난이도 수준-고2~고3

뭉크의 ‘절규’와 ‘사춘기’

저물녘의 피오르드는 뭉크의 표현처럼 핏빛으로 구불구불 절규하고 있을까? 몇 해 전 노르웨이로 갔다. 오슬로의 미술관에서 ‘절규’와 뭉크의 다른 작품들을 원 없이 보고 돌아왔는데 ‘절규’가 도난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절규’를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입을 쫙 벌리고 두 뺨을 거머쥔 채 ‘아악!’ 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전세계에서 지르겠구나, 하는 상상이 퍼뜩 지나갔다.

뭉크의 그림은 습하고 어둡다. 그것은 마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굳이 까발리려 하는 잔인하고 악랄한 취미를 가진 적처럼 가까이에 붙어 있다. 음습한 기운과 불길하고 축축한 두려움. 출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 불안한 공간에 갇혀서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공포를 기다리며 병들어가고 있는 단절과 고립의 상황. 이런 현대인의 내면을 뭉크는 격렬하고 고통스럽게 그린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환부가 욱신거린다.

뭉크는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삶의 불안이 나를 따라다녔다.’라고.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불안을 통해 스스로를 예술로 치유해내고 나아가 자신의 이러한 성찰이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주리라는 소망을 품었다고 밝혔다. 절망을 직시한 끝에 그는 불안이나 병, 상처와 고통 같은 어둠의 영역들을 통해 마침내 희망의 빛에 다다르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계속되어 온 식구들의 죽음과 병의 무겁고 숨막히는 공기, 그의 그림은 그가 일일이 겪어낸 상처의 흔적이며 고통의 몸부림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 풍경들은 매우 주관적이며 상징적이다. 뭉크의 감정이 풍경 속에 곧장 전이되어 들끓고 흔들리며 휘감긴다.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뭉크의 그림 전반을 흐르는 주제는 상처와 불안, 외로움과 죽음이다. 이것이 노르웨이의 쓸쓸하고 스산한 풍경과 맞물리면서 현대인의 황량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뭉크의 그림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주제는 상처와 불안, 외로움과 죽음이다. 뭉크의 그림 ‘절규’(왼쪽)와 ‘사춘기’(오른쪽).
뭉크의 그림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주제는 상처와 불안, 외로움과 죽음이다. 뭉크의 그림 ‘절규’(왼쪽)와 ‘사춘기’(오른쪽).
‘절규’는 핏빛으로 회오리치는 하늘과 소용돌이치는 터키석 빛 피오르드와 진홍빛 노을이 물든 물결이 어지럽다. 그리고 사선으로 다리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맨 앞에는 한 사람이 온몸을 움츠린 채 서서 우리를 향해 해골 같은 얼굴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른다. 그는 어떤 공포와 마주친 것일까? 그의 비명소리에 물결은 미친듯이 소용돌이친다. 그는 두려움에 턱이 빠져나갈 듯 악을 쓰지만, 저 멀리 뒤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의 친구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삶을 위협하는 두려움에 맞닥뜨려 있어도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 속에서 뭉크는 “절규, 나는 대자연을 통과해 가는 거대한 절규를 느꼈다.”라고 1895년에 제작한 석판화에 적어놓는다. 사람이 들어주지 않는 절규를 들어주는 자연. 뭉크는 끝없이 불화하는 자신과 세상과의 진절머리 나는 외로운 싸움을 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아무도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관심이 없다. 그의 상처, 그의 절망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질식할 것 같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내야 한다고 뭉크는 그림을 그리며 버텨낸다.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는 통각이 마비된 지옥 같은 세상이지만 “나는 영혼을 해부하듯이 그릴 것이다”라고 끝없이 자기 암시를 하며 자신과 싸운다.

‘사춘기’는 발가벗은 소녀가 두 손을 교차해서 몸을 가리고 침대에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아직 덜 성숙한 소녀의 젖가슴과 앙상한 팔. 겁에 질린 듯 커다란 눈동자엔 슬픔과 두려움이 담겨 있다. 갓 초경을 치른 소녀는 막막한 얼굴이다. 이제 더는 아이가 아니다. 몸에 생긴 변화만큼 마음에도 여러 변화가 찾아왔지만 소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들은 곁에 없다. 소녀는 낯설고 무섭다. 도대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충고가 한꺼번에 소녀를 짓누른다. 이 사춘기 소녀의 침대 뒤 오른 쪽 벽에 그려진 어두운 그림자처럼 무언가 순식간에 들이닥쳐 송두리째 삶을 망쳐버리게 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러나 마냥 어둡고 답답할 것만 같던 사춘기가 지나면 네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 그저 방문을 잠그기 시작하는 너의 비밀을 존중해주며 기다리는 수밖엔.

삶이 언제는 우리에게 우호적이던가. 때론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이 위태롭고 우리가 바치는 열정을 비웃듯 차갑고 냉랭한 시선을 던져도 우리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담담히 걸어가야 한다. 끔찍했던 순간들이 돌아보면 아득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는 것처럼. 뭉크의 고뇌는 역설적이게도 살아있는 자가 누리는 생생한 증거이며 그래서 축복이 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