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비타민/
[난이도-고2~고3] 교과서 훑어보기 언뜻 보면 과학과 종교는 조화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학 시대의 종교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월적이며 근원적인 물음에 대답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며, 과학은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영역의 한계로 인해 종교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고 있다. 여기에서 바로 종교와 과학이 대립이나 갈등을 지양하고 공존해야 할 당위성을 발견하게 된다. ―<시민 윤리>(교육인적자원부) 131~132쪽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몽된 인간 사회에서는,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인류의 스승인 성인들의 삶이 그러하였고, 각종 교육과 종교 및 문화 또한 바로 정신적 가치를 고양시키려는 일련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산업 사회 이후, 가치 전도의 현상이 급속하게 퍼져 나가면서 황금 만능주의, 과학 기술 만능주의, 감각주의 등과 같은 물질적 가치가 활개를 치게 되었다. ―<도덕>(교육인적자원부) 81쪽 교과서에서 논제 찾기 근대에 들어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기 전에는 과학이 구태여 종교와 부딪칠 까닭이 없었어. 과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데 반해,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사를 다룬다는 강점을 무기로 국가 권력을 뛰어넘는 강력한 권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16세기에 이르러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여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 종교와 과학의 싸움이 시작된 거야. 그리하여 한때는 과학 없이는 인간의 삶 자체가 어렵다고 할 정도로 과학의 승리가 확정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지. 하지만 과학이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성마저 황폐하게 만들면서, 많은 이들이 과학이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어 온 유토피아가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어. 돌이켜보면, 20세기 문명의 위기는 과학주의와 기술주의에서 시작되었지. 이성으로 무장한 과학주의는 모든 것을 기계론적으로 생각하여, 인간의 생명까지 기계라고 여겨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망가뜨렸어. 과학에 바탕을 둔 기술주의 또한 기술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맹신하게 되어, 우리는 핵무기의 공포에 떨게 되었고 환경 파괴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되었지. 과학에 의해 폐기될 것 같았던 종교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야. 종교와 과학을 관계를 새롭게 조명해 보아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고.
우선,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상호 배타적’으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부터 살펴볼까. 그들은, 근대의 여명과 함께 나타난 과학이 전통적으로 종교가 다루어 온 문제를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판정하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해. 사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종교의 판단을 코페르니쿠스가 뒤집어 버렸고, 인간은 신의 손길로 빚어진 창조물이라는 종교의 판정을 다윈의 진화론이 부셔 버렸지. 이처럼 종교와 과학이 동일한 영역에 대해 서로 맞서 이론을 전개하다 보니, 충돌은 피할 수 없었던 거야.
지식의 측면에서 보면 종교적 주장이 비합리적이라는 게 그들의 지적이야. 개별적 사실을 관찰하여 보편적 법칙을 추론해내는 과학은 합리적인 데 비해, 종교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거지. 뿐만 아니라, 자연을 움직이는 ‘힘’에 대해서도 과학과 종교는 차이가 크다는 거야. 과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원인을 자연 자체에서 찾으며, 만약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이에 반해, 종교는 초자연적인 힘이 그 원인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에 깔고 있어. 따라서 입증할 수 없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종교와 과학 사이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거야.
이와는 달리, 종교와 과학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어. 그들은, 과학과 종교가 역사적으로 충돌한 것은 과거의 종교가와 과학자들이 자기영역의 한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하지.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과학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파악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종교는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가치 판단에만 관계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서로 영역이 달라. 따라서 종교는 갈릴레이나 다윈의 과학적 학설들과 맞서려 해서는 안 돼. 그것은 종교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거든. 또한 과학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앙적 가치 체계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돼. 그것 또한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지.
종교는 과학이 제시하는 지식을 참작하면서 무엇이 올바른가 하는 가치 판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야. 종교는 우리가 실현해야 할 삶의 설계와 행동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거지. 예를 들어, 과학자는 유전자의 복제 기술을 개발하였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거든. 따라서 도덕적 선악 문제나 가치 판단의 문제는 종교의 가치 체계가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거야.
정말 그래. 과학이 사실의 문제를 다룬다면 종교는 가치의 문제를 다뤄. 과학이 자연 현상을 연구하고 서술하는 학문이라면, 종교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와 행동 기준, 그리고 그에 따르는 가치 판단을 제공하지. 과학이 방법을, 종교가 목표를 제시해 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양자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따라서 과학이 종교까지 대체하려는 시도나 종교가 과학의 방법과 목적을 지배하려는 시도는 둘 다 물리쳐야만 해.
이러한 생각을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무력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눈먼 것이다.”라는 말로 대변했지.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삶의 종교적 측면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인간의 운명, 곧 삶과 죽음의 문제, 인류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욕구, 선한 삶에 대한 동경,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 등이 그거야. 과학과 종교는 진리의 추구를 본질로 하는 인간 활동이라는 점에서 형제이자 자매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돼.
박용성 <교과서와 함께 구술 논술 뛰어넘기> 저자, 여수여고 교사
위 논제와 관련된 기출 문제(2005학년도 중앙대 논술 문제)는 인터넷한겨레(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본지에 연재되고 있는 기출 문제에 대한 박용성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는 전라남도교육정보원(www.jnei.or.kr)에 들어가 ‘인터넷교육방송→고교논술→실전논술’순으로 검색하면 무료로 들을 수 있습니다.
[난이도-고2~고3] 교과서 훑어보기 언뜻 보면 과학과 종교는 조화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학 시대의 종교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월적이며 근원적인 물음에 대답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며, 과학은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영역의 한계로 인해 종교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고 있다. 여기에서 바로 종교와 과학이 대립이나 갈등을 지양하고 공존해야 할 당위성을 발견하게 된다. ―<시민 윤리>(교육인적자원부) 131~132쪽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몽된 인간 사회에서는,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인류의 스승인 성인들의 삶이 그러하였고, 각종 교육과 종교 및 문화 또한 바로 정신적 가치를 고양시키려는 일련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산업 사회 이후, 가치 전도의 현상이 급속하게 퍼져 나가면서 황금 만능주의, 과학 기술 만능주의, 감각주의 등과 같은 물질적 가치가 활개를 치게 되었다. ―<도덕>(교육인적자원부) 81쪽 교과서에서 논제 찾기 근대에 들어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기 전에는 과학이 구태여 종교와 부딪칠 까닭이 없었어. 과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데 반해,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사를 다룬다는 강점을 무기로 국가 권력을 뛰어넘는 강력한 권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16세기에 이르러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여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 종교와 과학의 싸움이 시작된 거야. 그리하여 한때는 과학 없이는 인간의 삶 자체가 어렵다고 할 정도로 과학의 승리가 확정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지. 하지만 과학이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성마저 황폐하게 만들면서, 많은 이들이 과학이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어 온 유토피아가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어. 돌이켜보면, 20세기 문명의 위기는 과학주의와 기술주의에서 시작되었지. 이성으로 무장한 과학주의는 모든 것을 기계론적으로 생각하여, 인간의 생명까지 기계라고 여겨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망가뜨렸어. 과학에 바탕을 둔 기술주의 또한 기술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맹신하게 되어, 우리는 핵무기의 공포에 떨게 되었고 환경 파괴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되었지. 과학에 의해 폐기될 것 같았던 종교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야. 종교와 과학을 관계를 새롭게 조명해 보아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고.
종교와 과학은 양립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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