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논술 / 31. 법과 제도는 왜 필요한가?
시사로 따라잡기 / [난이도 수준-중2~고1]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의 여성들이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여성들보다 오히려 더 사회적 지위가 높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고려시대에는 딸이 상속받은 재산은 시집 간 뒤에도 남편 재산으로 흡수되지 않고 자기 몫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당시 절에 기증한 토지를 보면 남편 소유와 아내 소유가 따로 명시돼 있다. 조선 초기 만들어진 족보들을 보면 손자로 이어지는 부계만이 아니라 사위나 외손자까지 함께 기록하고 있다. 부계만을 기록한 오늘날의 족보와는 전혀 다르다. 조선 초기때까지도 여성차별적 요소가 적었던 것이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신라시대에는 ‘여왕’까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왕조가 성리학과 주자사상을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확고히 굳히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는 급격히 무너졌다. 재산상속 방식이 ‘자녀균분제’에서 ‘장자단독제’로 바뀌었고 신혼부부의 살림살이도 시집살이로 변했다.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거나 ‘처가와 뒷간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다’는 등의 속담도 서민들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의 변화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위상’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법을 비롯한 제도는 사회구성원 사이의 권력관계를 반영하며, 그들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당시로서는 영원할 것 같았던 노예제도나 신분제도도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이 퍼지면서 사라져간 점은 이를 입증한다. 한국에서는 남녀차별적 제도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던 호주제가 폐지됐고, 미국에서는 최초로 여성대통령(또는 흑인대통령)이 탄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법과 제도를 절대화하는 태도는 자칫 기득권이나 기존 질서를 무조건 옹호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법이나 제도는 그것을 만든 인간을 억압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될 운명을 안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다만, 법·제도를 너무 자주 바꿀 경우 생길 수 있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의 훼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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