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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의 눈] 성숙한 국민, 미성숙한 정부
대한민국의 2008년 5월은 그 어느 달보다 뜨거웠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싫다는 목소리를 담은 ‘촛불’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저녁 7시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시작은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였다. 안티MB 카페가 주축이 되어 열린 촛불문화제에는 약 2만여 시민들이 모였다. 평일 저녁이었고 짧은 홍보 기간을 가졌다는 이유로 몇 백명 정도가 참여할 것이라는 주최 측의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인원이 청계광장으로 모였고,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곳곳에서 그들만의 모임을 만들어 ‘자신이 촛불을 든 이유’를 말했고, 박수를 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한편에선 청소년들이 모여 “광우병 걸리기 싫다”며 울분을 토했고, 다른 한 쪽에선 어린 아이를 업은 주부가 “우리 아이의 먹거리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5월 3일, 또다시 청계광장은 촛불로 일렁였다. 미친소닷넷이 주최한 이날 촛불문화제에서는 ‘청소년’이 주인이었다. 2만여 명이 넘는 참가자 중에서 80%는 청소년이었고, 그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나와 이명박 대통령에게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고기를 정말 먹기 싫다”고 소리쳤다. 특히 5월 3일이 많은 국민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자유발언’ 때문이었다. 이날 촛불문화제의 주인은 참가자 자신이었다. 중학생부터 노인까지 ‘책상으로 급하게 만든 무대 위로’ 올라와 가슴 속에 쌓아둔 자기의 이야기를 했던 ‘자유발언’은 촛불문화제의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날 발언에서 한 여고생은 어려운 가정 형편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한 노인은 이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서슴치 않았다.
3일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이후 소값 폭락을 우려해 음독 자살을 시도한 농민이 사망한 날이기도 했다. 또한 울산지역에서는 ‘인간광우병’ 의심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해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날이기도 했다.
두차례 열린 촛불문화제를 계기로 촛불은 전국으로 퍼졌다. 4일 경찰은 지난 2일부터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민들이 벌여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를 사실상 불법집회라고 규정하고, 촛불문화제를 주도한 사람들을 사법처리하기로 한다는 발표를 했다. 하지만 이 발표는 국민 여론의 반발만 불렀다.
6일에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소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가 꾸려졌다. 150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 및 인터넷 사이트가 연대를 맺고 본격적인 공동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도 청계광장에서는 촛불문화제가 열렸고 5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배우 정찬도 촛불을 들었고, 몇몇 연예인들은 개인 홈페이지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의견을 게시해 네티즌의 호응을 얻었다.
이튿날 7일에는 국회에서는 쇠고기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청문회에는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야당 국회의원들과의 언쟁이 있었다.
특히 정부를 향해 할 말은 했던 의원들은 ‘랩퍼영호’, ‘호통기갑’ , ‘야단경태’ 등으로 불리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스타가 되기도 했다. 청문회 국회의원만 스타가 된 것은 아니였다. 전국운수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미국산 소고기 운송’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많은 지지를 얻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민심을 읽지 못했다. 정부는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국민들 뒤로 배후세력 있다고 주장했으며, 조중동 등 일부언론에서는 사설을 통해 국민들 뒤에 좌파 혹은 빨갱이가 있다고 몰고갔다. 교육당국에서는 ‘전교조’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를 향해 규탄을 하고자 스스로 참여했던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배후’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10일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배후’가 있다고 주장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시민들은 “배후가 있다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혹은 "내가 바로 주동자다”라고 말했다.
이쯤 네티즌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촛불문화제 뿐만이 아닌 새로운 형태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대한국인’ 카페 회원들은 가두행진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또한 네티즌들은 아고라 등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글을 계속 올리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활동을 해나갔다.
이렇게 활동이 활발히 이뤄질 때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촛불문화제 참여와 관련된’ 조사를 수업 도중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시민들은 해당 경찰서 홈페이지로 달려가 항의를 남겼다.
16일에는 네티즌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네티즌 100분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네티즌들은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국민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 등 향후 방향 토론 했다. 또한 네티즌들은 “네티즌이 희망이다. 네티즌이 나서자”라고 외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겠다는 입장을 강력히 내비쳤다.
17일엔 다시 청소년이 나섰다. 서울 명동에서 시작해 청계광장까지 이어진 청소년들의 거리행진이 있었다.
150여 명의 청소년들은 자유발언부터 노래, 연극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함께하자고 외쳤다.
한 여학생은 “오늘 거리행진을 함으로써 내 감정을 확실히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거리행진을 하면서 누군가가 우릴 보고 ‘쟤네 알바 아니야?’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솔직히 기분은 나빴다. 이런 활동을 청소년이 하면 알바라고 생각하는데, 속상하긴 하다. 하지만 오늘 같이 행진을 하면서 청소년인 것이 자랑스러웠다.”고 소감을 전하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민심을 몰랐다. 정치권 끼리 담화를 통해 위기를 탈출하려고 했다. 지난 19일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의 회동은 많은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과 네티즌에게 실망만 줄 뿐이었다.
시민들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을 하고 싶다면 당 대표를 만나지 말고, 우리 국민들을 만나야 한다”고 입모아 말했다.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쇠고기 파문과 관련 “정부가 국민들께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렇지만 대국민담화문을 전해들은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담화문이 발표된 그날 저녁 청계광장에서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국민담화문이 아닌 대국민협박문”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고 내세우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했다.
더이상 국민들은 참지 못했다. 촛불문화제만으로는 안된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24일 토요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시민들은 ‘고시철회’와 ‘이명박 탄핵’ 등을 외치며 광화문 사거리, 종로 등으로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그 인원만도 2만여 명. 2만여명의 시민들은 그저 맨 몸으로 뛰어나와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싫다’고 외치기도 하고 ‘이명박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외침은 곧 ‘경찰병력의 투입’으로 제지를 당하게 된다.
24일부터 이어진 거리행진이 막바지로 접어든 25일 새벽 4시경, 경찰은 일명 ‘토끼몰이’를 통해 37명을 연행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들은 폭력을 행사해 과잉진압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이때부터 시민들은 고시철회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넘어 ‘평화시위 보장’과 ‘폭력경찰물러가라’까지 외쳤다.
지금까지 연행된 시민들만 해도 200여명이 넘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어청수 경찰청장은 ‘100명도 더 넘게 연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고 있으며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시민들을 계속 연행 중이다. 그 중에는 고등학교 학생도 있으며, 한 여학생의 경우는 하루를 경찰서에서 보내기도 했다.
경찰은 시민들을 계속 연행했지만, 오히려 시민들의 참여는 더욱 늘기만 했다. 경찰의 폭력은 인터넷 생중계, 네티즌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고, 이 방송을 본 시민들은 거리에 나섰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게임을 하던 청년이 ‘고등학생도 맞았다’는 소식에 거리행진에 참여하기도 했다.
27일 기사에서 연행되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시민들은 “두렵기는 하지만 책임감을 느낀다.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한달동안 우리 국민들은 성숙된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보여줬다. 성숙한 시민들의 수준만큼 정부가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었다.
정부가 고시철회를 하지 않는 이상 촛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제연행 시도에 자진연행으로 대답했던 시민들은 가두행진도 계속할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 분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정부에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하는 것이다. 정부는 ‘배후세력, 처벌’ 등을 이야기하며 국민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야한다.
29일,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관고시를 발표한다고 한다. 국민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이보람 기자 lbr52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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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월 3일, 또다시 청계광장은 촛불로 일렁였다. 미친소닷넷이 주최한 이날 촛불문화제에서는 ‘청소년’이 주인이었다. 2만여 명이 넘는 참가자 중에서 80%는 청소년이었고, 그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나와 이명박 대통령에게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고기를 정말 먹기 싫다”고 소리쳤다. 특히 5월 3일이 많은 국민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자유발언’ 때문이었다. 이날 촛불문화제의 주인은 참가자 자신이었다. 중학생부터 노인까지 ‘책상으로 급하게 만든 무대 위로’ 올라와 가슴 속에 쌓아둔 자기의 이야기를 했던 ‘자유발언’은 촛불문화제의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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