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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보다 문화] 제 5화 : 불법 대신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많다
오랜만이다. 춘식이 아저씨 죽집에 오는 것은. 한 동안 온갖 추측성 기사와 스캔들로 의도적으로 F4를 피해다닌 터라 알바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었다. 나쁜 기자들, 그렇게 F4 연애 기사나 쓸 시간에 문화나 소개하는 기사 한 편 더 쓸 것이지. 그런 잡생각들을 하면서 죽집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지만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죽집은 한산했다. 춘식이 아저씨와 가을이가 심혈을 들여 가게를 정돈하거나, 온갖 새로운 메뉴에, 이벤트를 벌이고 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죽집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아저씨와 가을이도 손님 맞이 준비는 하지않고 있다.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잔디 : 춘식이 아저씨, 가을아! 나 왔어.
춘식 : 어유! 오랜만이다. 그 동안 뭐하고 살았던 거야. 난 또 네가 다른 음식점에 스카우트 된 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는 줄 알어.
잔디 : 그럴 일 없어요. 춘식이 아저씨가 얼마나 정겨운데. 그런데, 아무리 손님이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영화나 보고 있어도 되는 거에요? 가을 : 됐어. 어짜피 오후 쯤에야 손님이 들어올 걸. 잔디야, 너도 같이 영화 보지 않을래? 잔디 : 어떤 영화인데? 춘식 : 이건 보통 영화가 아니야. 뛰어난 영상 감각과 감동적인 주제가 담겨있지. 잔디 : 그러니까 제목이 뭔데? 춘식 :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온갖 좌절과 재정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뛰어난 영상미를 선보인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척박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제약을 뛰어 넘어 관객에 선보인 이 영화는… 잔디 : 「워낭소리」지? 춘식 : …잔디, 너 대단한데? 난 아직 소개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잔디 : 그런 영화가 「워낭소리」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이거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잖아요. 춘식 : 훗, 잔디야.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단다. 안 돼면 돌아가라고. 솔직히 요새 경제도 어려운 데 영화 상영료는 너무 많이 올랐잖니. 초고속 인터넷 세상 대한민국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단다. 잔디 : 네? 이거 불법 다운로드한 영화였어요? (갑자기 컴퓨터 마우스를 잡는다.) 춘식 : 잔디야, 지금 뭐하는 거니? 잔디 : 뭐하긴요. 지워야죠. 춘식 : 안 돼, 잔디야! 그것만은 안 돼! 내가 얼마나 인터넷을 뒤지다가 찾은 소중한 파일인데. 그것도 웹하드 비용으로 거금 300원을 주고 받은 거란 말이야. 가을 : 그래, 잔디야. 이번 만은 봐주자. 춘식이 아저씨 가게도 장사가 안 되는데, 이까짓 영화 떄문에 8,000원을 쓰는 것은 너무 아깝다고. 잔디 : 그래, 경제도 어려운 와중에 무리하면서 까지 영화를 보라고 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지금 가을이와 아저씨가 하는 행동은 8,000원보다 더 큰 타격을 문화에 주고 있다고요. 가을 : 뭔 소리야. 겨우 8,000원 밖에 손해보는 거 아니었어? 잔디 : 한 사람만 불법 다운로드를 받으면 8,000원 밖에 손해를 보지 않을거야. 하지만 너도 나도 싼 맛에 영화를 본다고 불법 다운로드를 하기 시작한다면, 상상 그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거야. 가뜩이나 불황인데 타격은 더욱 커지겠지. 게다가 「워낭소리」는 독립 영화야. 보통 영화는 극장 상영과 부가 판권 시장(비디오, DVD 판매)에 의존하지만, 독립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을 하기 때문에 극장 상영보다는 부가 판권 시장에 상업 영화보다 더 목숨을 걸어.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불법 다운로드로 DVD를 사지 않는다면, 수익은 나지 않고 다시는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겠지. 춘식 : 하지만 잔디야, 그래도 영화 표값이 너무 비싼 것은 사실이야. 장사도 안 되서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영화 한 편 보자고 팔천 원이나 쓰는 것은 나로서도 출혈이 크다고. 잔디 :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요? 돈은 적게 들면서도, 더 즐거운 문화를 찾으면 돼죠. 가을 : 설마, 그런 문화가 어디 있어. 문화를 즐기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고. 잔디 : 미안하지만 그런 문화는 있어. 둘 다 저를 따라 와봐요. [잠시 후, 홍대 앞 어린이 놀이터] 춘식 :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는거야? 손님 올지도 모르니까 빨리 가봐야 한다고. 잔디 : 어짜피 손님 안 들어온다고 영화 보고 있던 사람이 누군데요? 자, 다 왔습니다. 가을 : 사람들이 앉아서 물건을 파는 것 같은데. 잔디 : 여기는 시민들이 모여서 각자의 문화 상품을 파는 장소, ‘프리 마켓’이야. ‘플리 마켓’ (Flea Market)이 오래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곳이었다면, ‘프리 마켓’ (Free Market)은 독립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문화 상품을 값싸게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곳이야. 전국 곳곳에 있지만 특히 홍대 앞 프리 마켓이 가장 유명하지. 그 뿐만이 아니야. 여기서는 클럽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인디 뮤지션들이 놀이터로 나와서 시민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 창작 워크숍도 있지. 이정도면 오천 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음악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 아니야? 춘식 : 야,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이야? 난 처음 알았어. 가을 : 저도요. 이렇게 싼 값으로도, 더 즐길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처음인 것 같아요. 잔디 : 이게 바로 서민들을 위한 문화라고 할까? 비록 화려하지도 않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돈과 권력에 좌우되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문화잖아. 「워낭소리」가 좋은 독립 영화이기는 하지만, 불법으로 즐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문화를 즐기는 것이 더 좋지. 가을 : 잔디야, 고마워. 너 덕분에 내 일도 잘 풀릴 것 같아. 잔디 : ??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면야 나야 좋지. [잠시 후, 우송 미술관] 이정 : (이정의 휴대폰에서 소리가 울린다.) 문자가 왔군, 추가을? ‘소이정, 시간있으면 다음주 토요일에 홍대 놀이터에서 만나지 않을래?’ …갑자기 왠 일이람, 근데 하필이면 왜 놀이터야? 초딩도 아니고. 성상민 기자 gasi4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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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 그럴 일 없어요. 춘식이 아저씨가 얼마나 정겨운데. 그런데, 아무리 손님이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영화나 보고 있어도 되는 거에요? 가을 : 됐어. 어짜피 오후 쯤에야 손님이 들어올 걸. 잔디야, 너도 같이 영화 보지 않을래? 잔디 : 어떤 영화인데? 춘식 : 이건 보통 영화가 아니야. 뛰어난 영상 감각과 감동적인 주제가 담겨있지. 잔디 : 그러니까 제목이 뭔데? 춘식 :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온갖 좌절과 재정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결국 뛰어난 영상미를 선보인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척박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제약을 뛰어 넘어 관객에 선보인 이 영화는… 잔디 : 「워낭소리」지? 춘식 : …잔디, 너 대단한데? 난 아직 소개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잔디 : 그런 영화가 「워낭소리」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이거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잖아요. 춘식 : 훗, 잔디야.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단다. 안 돼면 돌아가라고. 솔직히 요새 경제도 어려운 데 영화 상영료는 너무 많이 올랐잖니. 초고속 인터넷 세상 대한민국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단다. 잔디 : 네? 이거 불법 다운로드한 영화였어요? (갑자기 컴퓨터 마우스를 잡는다.) 춘식 : 잔디야, 지금 뭐하는 거니? 잔디 : 뭐하긴요. 지워야죠. 춘식 : 안 돼, 잔디야! 그것만은 안 돼! 내가 얼마나 인터넷을 뒤지다가 찾은 소중한 파일인데. 그것도 웹하드 비용으로 거금 300원을 주고 받은 거란 말이야. 가을 : 그래, 잔디야. 이번 만은 봐주자. 춘식이 아저씨 가게도 장사가 안 되는데, 이까짓 영화 떄문에 8,000원을 쓰는 것은 너무 아깝다고. 잔디 : 그래, 경제도 어려운 와중에 무리하면서 까지 영화를 보라고 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지금 가을이와 아저씨가 하는 행동은 8,000원보다 더 큰 타격을 문화에 주고 있다고요. 가을 : 뭔 소리야. 겨우 8,000원 밖에 손해보는 거 아니었어? 잔디 : 한 사람만 불법 다운로드를 받으면 8,000원 밖에 손해를 보지 않을거야. 하지만 너도 나도 싼 맛에 영화를 본다고 불법 다운로드를 하기 시작한다면, 상상 그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거야. 가뜩이나 불황인데 타격은 더욱 커지겠지. 게다가 「워낭소리」는 독립 영화야. 보통 영화는 극장 상영과 부가 판권 시장(비디오, DVD 판매)에 의존하지만, 독립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을 하기 때문에 극장 상영보다는 부가 판권 시장에 상업 영화보다 더 목숨을 걸어.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불법 다운로드로 DVD를 사지 않는다면, 수익은 나지 않고 다시는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겠지. 춘식 : 하지만 잔디야, 그래도 영화 표값이 너무 비싼 것은 사실이야. 장사도 안 되서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영화 한 편 보자고 팔천 원이나 쓰는 것은 나로서도 출혈이 크다고. 잔디 :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요? 돈은 적게 들면서도, 더 즐거운 문화를 찾으면 돼죠. 가을 : 설마, 그런 문화가 어디 있어. 문화를 즐기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고. 잔디 : 미안하지만 그런 문화는 있어. 둘 다 저를 따라 와봐요. [잠시 후, 홍대 앞 어린이 놀이터] 춘식 :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는거야? 손님 올지도 모르니까 빨리 가봐야 한다고. 잔디 : 어짜피 손님 안 들어온다고 영화 보고 있던 사람이 누군데요? 자, 다 왔습니다. 가을 : 사람들이 앉아서 물건을 파는 것 같은데. 잔디 : 여기는 시민들이 모여서 각자의 문화 상품을 파는 장소, ‘프리 마켓’이야. ‘플리 마켓’ (Flea Market)이 오래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곳이었다면, ‘프리 마켓’ (Free Market)은 독립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문화 상품을 값싸게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곳이야. 전국 곳곳에 있지만 특히 홍대 앞 프리 마켓이 가장 유명하지. 그 뿐만이 아니야. 여기서는 클럽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인디 뮤지션들이 놀이터로 나와서 시민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 창작 워크숍도 있지. 이정도면 오천 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음악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 아니야? 춘식 : 야,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이야? 난 처음 알았어. 가을 : 저도요. 이렇게 싼 값으로도, 더 즐길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처음인 것 같아요. 잔디 : 이게 바로 서민들을 위한 문화라고 할까? 비록 화려하지도 않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돈과 권력에 좌우되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문화잖아. 「워낭소리」가 좋은 독립 영화이기는 하지만, 불법으로 즐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문화를 즐기는 것이 더 좋지. 가을 : 잔디야, 고마워. 너 덕분에 내 일도 잘 풀릴 것 같아. 잔디 : ??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면야 나야 좋지. [잠시 후, 우송 미술관] 이정 : (이정의 휴대폰에서 소리가 울린다.) 문자가 왔군, 추가을? ‘소이정, 시간있으면 다음주 토요일에 홍대 놀이터에서 만나지 않을래?’ …갑자기 왠 일이람, 근데 하필이면 왜 놀이터야? 초딩도 아니고. 성상민 기자 gasi4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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