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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동구’는 정직할 거야

등록 2008-05-07 22:33수정 2008-05-11 10:47

‘어향동구’는 정직할 거야
‘어향동구’는 정직할 거야
[매거진Esc] 박미향의 신기한 메뉴
전화가 왔다. 중국집 ‘목란’(서대문 소재)의 요리사 리롄푸(49)씨였다. “아까 잘못된 것이 있어요. 말씀하신 것보다 많이 못 배웠어요. 식구들(종업원)이 있어서 제대로 ….” 목소리에 부끄러움이 묻어났다. 학력이 낮다는 소리였다. 몇 시간 전 인터뷰할 때 잠시 당황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정직함에 웃음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린다. 그런 현실에서 곧 쉰을 내다보는 ‘어른’이 커밍아웃하듯 고백을 하다니. 그가 고소한 향내 이상의 진한 맛을 내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못 배운’ 그이지만 맛에 관한 경력은 화려하다. 27년 전 사오십대 베테랑 요리사들 50여명과 경쟁해서 당당히 대만대사관(현재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최연소 주방장이 되었다. 스물두 살 때였다.

그의 요리 두 가지를 ‘목란’에서 만났다. 하나는 ‘어향동구’이고 다른 하나는 ‘군만두’다. 전자는 신기해서이고 후자는 평범하지만 최고의 맛이라서다.

어향동구는 동구버섯(표고버섯을 말린 것)을 닭 뼈에 우린 육수에 불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육수를 빨아들인 버섯 위에 익힌 새우를 다져 올린다. 이것을 쪄서 내고 그 위에 어향소스를 뿌린다. 어향소스는 생선 냄새가 난다고 붙인 이름이지만 각종 채소를 볶아 굴소스와 감자전분으로 만든다. 이 요리는 ‘어향육사’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란다. “요즘 사람들은 기름진 것 안 먹지요. 요리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지요”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래서인지 중국집이지만 덜 기름지다.

군만두도 그중 하나다. 정말 맛있다. 비법은 하나다. 직접 빚은 만두피와 속을 주문 받은 직후 만들기 시작한다.

군만두는 크래커처럼 바삭하다. 어향동구는 우유 같다. 새우는 마치 으깬 밥알처럼 뭉실하게 부드럽다. 입안에 왕창 집어넣자 버섯 덩어리가 온 혀를 감싸 안는다. 우유 같은 새우질감이 혀의 천장과 벽을 승전고 울린 장군처럼 점령했다.

조금 부족한 듯해도 정직만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없다. ‘맛의 정직’하면 이씨가 떠오를 듯하다. (02)732-0054.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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