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태지 건축 유감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나는 서태지의 팬이다. 그가 세상에 적극적으로 존재를 알렸던 1992년부터 단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그랬다. 우물 밖의 이야기들에 대해 잘 몰랐던 시절, 나는 그에게 힙합 스타일의 패션을 배웠고 스노보드를 전수받았다. 그가 그룹 활동을 멈추며 추측과 억측들이 난무할 때도 나는 말없이 그를 지지했고, 앨범을 꼬박꼬박 샀으며, 음치인데도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불렀다. 팬이었기에 나는 그를 무조건 지지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 기사를 보던 중, ‘서태지 빌딩’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요는 서태지 소유의 건물이 서울 강남 어딘가에 있으며, 연예인 소유의 빌딩들 중에서 가장 값이 나간다는 거였다. 음악 이야기라면 보통 꼬리를 내리면서 ‘그냥 좋아요’라고 하겠지만 건물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괜한 참견을 하고 싶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인터넷 기사에서 봤던 건물의 사진은, 그리고 실제로 확인하고 싶어 직접 찾아가 본 ‘서태지의 건물’은 어쩐지 아쉬웠다.
물론 소유가 서태지였을 뿐 그가 땅을 사고 디자인이 진행되고 건물이 운영되는 과정에 직접 관여했을 것 같지는 않다. 꼭대기엔지 지하엔지 잘 꾸며놓은 공간이 있다고는 했지만,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은 우리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다른 건물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의도가 그러했을 수도 있다. ‘너무 튀어서 달라 보이는’ 건물은 싫으니 될수록 평범하게 디자인했을 수도 있다.
도시에는 수많은 건물과 건축이 존재한다. 보통 우리말에서는 혼재되어 쓰이는 단어지만 건물(building)과 건축(architecture)은 조금 다르다. 건축을 예술이라고 하지만 모든 건물을 예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가령 같은 규모 비슷한 모양새의 건물일지라도 그 목적이 순결하게 최대의 이익을 뽑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경제적 가치 이상을 생각하는 건축주의 의지와 주변 상황, 그리고 공간이 내포하는 것에 대한 건축가의 고민이 담겼는지 등에 따라 건물과 건축의 미묘한 경계가 설정된다.
내가 서태지의 건물에 대해 아쉬운 것은 그것이었다. 나의 시각으로는 그의 음악과 그의 존재와 그의 건물이 어울리지 않았다. 기이한 형태로 확연히 튀는 건물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마치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하는 건축처럼, 더 무미건조하고 은둔적인 입면을 내세우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그런 장소를 상상했다.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건물 아닌 건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덧붙이면, 나는 박지성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터넷 기사에 오른 그의 건물 조감도 역시 훌륭한 건축이 많은 영국에서 살고 있는 그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오영욱/건축가·오기사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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