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
지난 4일 현대와 경기 전 김재박 엘지(LG) 감독은 “둘은 만나기만 하면 경기가 취소된다”며 툴툴댔다. 대전 한화-삼성전이 비로 취소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직후였다. 지난주에도 두 팀의 두 경기가 비 때문에 취소된 터. 엘지로서는 3·4위 두 팀이 경기를 치러야만 유리한데, 비 때문에 일찌감치 경기를 취소시켜 버린 게 못마땅한 듯했다.
엘지의 또다른 관계자는 농담조로 “우리도 앞으로 비가 한 방울이라도 내리면 바로 취소시킬 것”이라고 했다. 경기 취소는 구단이 아닌 경기감독관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보통 경기감독관은 안방팀 감독과 상의해서 경기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구단의 입김도 어느 정도 작용하게 된다.
시즌 일정이 22일까지 잡혀 있는 가운데, 6일 현재 우천 취소로 연기돼 향후 일정이 잡히지 않은 경기는 모두 19경기. 앞으로 2~3주 동안 비가 전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해도, 포스트시즌은 10월 초에나 시작될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비 오는 기간이 길어지면, 정규 리그가 팀당 133경기에서 126경기로 축소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11월의 한국시리즈도 예상된다. 이럴 경우 코나미컵과 올림픽 예선 준비에 차질이 빚어질 것은 자명하다.
정규 리그 기간이 한없이 늘어진 데는 그동안 구단·감독관들의 편의적·자의적 해석에 따른 일관성 없는 경기 취소가 한몫했다. 그동안 감독관 및 구단들은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오는 비 때문에, 혹은 가랑비 때문에 경기 취소를 섣불리 결정하거나, 전날 온 비 때문에 날씨는 멀쩡히 갰는데도 운동장 사정이 안 좋다는 이유로 경기 취소를 결정할 때가 많았다. 밑바탕에는 “어차피 더블헤더도 없는데 나중에 경기하면 될 것 아니냐”는 안일한 인식이 깔려 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시즌 개막 전에 정규 시즌 일정은 물론이고, 포스트시즌 일정까지 발표한다. 올해 월드시리즈 첫 경기는 10월24일(현지시각)로 이미 정해져 있다. 올해 4월처럼 눈이 많이 쌓여 어쩔 수 없는 때를 제외하면, 메이저리그는 경기 시작 후 2시간까지도 내야 전체 혹은 그라운드 전체를 덮는 방수포를 깔아놓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부득이하게 경기가 취소되면 중간에 있는 휴식일에 경기를 편성하거나 더블헤더도 갖는다. 한 시즌 동안 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도 융통성을 발휘하며 정해진 기간 안에 정규 시즌을 마치는데, 팀당 126경기를 치르는 한국 야구는? 한국야구위원회의 비탄력적 시즌 운용이 안타깝기만 하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