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재 기자
타임아웃 /
2005년 8월9일, 일본과 미국에서 16년간 통산 381세이브를 달성한 당대 일본 최고 마무리 사사키 가즈히로(40·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은퇴 경기가 마련됐다. 고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이자 평생 라이벌로 지내온 강타자 기요하라 가즈히로(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 타자만을 상대로 사사키가 마운드에 올랐다. 볼카운트 2-1, 사사키는 그의 전매특허였던 포크볼을 던졌다. 위력없이 떨어지는 공. 벌써 한바탕 눈물을 쏟고 타석에 들어선 기요하라는 헛방망이를 돌렸다. 그리고 마운드로 걸어가 “세계 최고의 포크볼이 와서 때릴 수 없었다”며 사사키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 8일 국내에서 17년간 선수생활을 했던 위대한 선수 한명이 떠났다. 정민태. 쓸쓸하기 짝이 없는 은퇴였다. 하루 전 조범현 기아 감독이 1군 복귀를 통보하자 “중간 계투로 후배들의 기회를 뺏고 싶지 않다”며 은퇴를 택했다. 김조호 단장까지 나서 “더 뛸 수 있다”며 만류했지만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프로야구 국내 선수 가운데 1999년 이후 맥이 끊긴 ‘마지막 20승 투수’였다. 통산 124승(96패), 한국시리즈 제패 4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2회 등…. 하지만 팬들은 한국 프로야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그의 마지막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정민태는 “우리(연봉 77.5% 삭감 제안)에선 은퇴식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했다. 기아 쪽은 “한국 야구에서 정민태의 존재감을 알고 있다”면서도 소속 선수로 한 경기밖에 뛰지 않은 선수를 위해 은퇴 경기를 마련할 수 없었다.
일부에선 “은퇴 시기를 놓쳤다”고 했지만 그는 재기에 도전하기 위해 14년간 입었던 현대(현 우리)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까지 자신의 ‘100%’를 쏟아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선수 요기 베라는 “전반에 쏟아낸 100%로 충분치 않으면 후반전에 나머지를 쏟아야 된다”고 했다. “이젠 후배들을 돕고 싶습니다.” 정민태, 그가 끝나지 않는 야구 인생 2라운드를 시작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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