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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차별과 싸운 ‘불가촉천민의 싯다르타’

등록 2008-03-07 20:39

〈암베드카르〉
〈암베드카르〉
장정일의 책 속 이슈 /

〈암베드카르〉
디와 찬드 아히르 지음/코나투스·2만원

디완 찬드 아히르의 〈암베드카르〉(에피스테메, 2005)는 간디나 타고르와 동시대인이면서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그들보다 위대했던 또 한 사람의 인도인을 소개한다. 불가촉천민의 해방자 또는 현대 인도 불교의 중흥자로 칭송되는 바바사헤브 암베드카르가 바로 그다. 그는 독립을 쟁취한 인도의 첫 법무장관으로 헌법을 초안했으며, 인도의 삼색기 중앙에 붓다의 법륜(法輪)을 그려 넣은 사람이다.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삼인, 2007)의 필진으로 참여했던 이옥순은 현재 우리나라 모든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수드라를 천민과 노예로 설명하지만, 그것은 고대 경전 상의 구분이며 오늘날에는 평민으로 통한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천부인권이나 평등이 상식이 된 이제도 천민이나 노예 계층으로 취급되는, 카스트 밖의 계층(out-caste)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접촉하면 더럽혀진다는 뜻에서 고대부터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되었던 이들은 자신이 뱉은 침이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목에 오지그릇을 달고 다녀야 했고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느라 몸에 빗자루를 매달아야 했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난 암베드카르는 부모의 교육열과 후원자들의 도움을 얻어 미국과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1927년 3월, 뭄바이의 공공 저수지를 개방시키기 위해 1만여명의 불가촉천민과 함께 행진했던 일이다. 인도 현대사에서 이 사건은 간디가 반영 투쟁의 일환으로 강행했던 1930년의 ‘소금 행진’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 사건 이후 암베드카르는 공개적으로 〈마누법전〉을 불태우고 저수지에서 힌두 사원으로 진로를 바꾸어 불가촉천민의 사원 출입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출신성분은 다르지만 부당한 권력에 투쟁하는 방법으로 똑같이 ‘비폭력’ 수단을 개발했다. 그러나 간디는 자신의 비폭력을 반영 투쟁에 사용했고, 암베드카르는 인도 안의 식민지였던 불가촉천민을 위해 사용했다. 두 사람은 불가촉천민 문제를 놓고 번번이 마찰을 일으켰는데, 간디는 불가촉천민의 정치적 독립을 영국의 분열책이라고 본 반면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선거구가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간디가 또 한 차례 단식을 벌였음은 물론이다.



장정일의 책 속 이슈
장정일의 책 속 이슈
인도는 국가(state)보다 사회(society)가 강한 나라라고 한다. 1949년에 공포된 인도 헌법에 의해 불가촉천민 차별이 완전 금지되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단적인 예다. 법이나 제도보다 종교와 관습의 규정력이 더 큰 것이다. 20여년 넘게 불교를 연구했던 암베드카르는 죽기 한 달 전에 한 군중집회에서 50여만명의 불가촉천민과 함께 불교에 귀의한다. 이런 그를 가리켜 힌두 사회의 철벽을 두드리고자 했던 싯다르타의 재래라고 감히 말할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해 화제를 일으킨 나렌드라 자다브의 〈신도 버린 사람들〉(김영사, 2007)을 보면 암베드카르가 1억6600만이나 되는 불가촉천민들에게 주었던 영향을 실감할 수 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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