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세설] 우리는 왜 괄호를 버리지 못하는가/김선우

등록 2006-11-02 19:04수정 2006-11-02 19:12

복원된 낙산사 동종에 새겨진 ‘문화재청(청장 유홍준)’
각종 기록물이 차고 넘치는 현대에
굳이 기관장 이름을 부기하는 구태의연함이라니!
도처에 널린 ‘허명’에의 욕망에 멀미가 난다
단풍을 맞으러 동해안을 따라 길 나섰다가 낙산사를 지나가게 되었다. 산불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된 낙산사 동종의 안부가 궁금해 경내로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복원된 낙산사 동종 내부에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이름이 새겨져 논란이 불거진 직후였다. 권위주의 시대의 관행을 염려하는 여론에 맞서 문화재청은 역사 기록의 책무라는 나름의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며 통상적 관례와 전통에 따라 주무관청장의 이름을 넣었다고 했다. 일련의 여론 공방을 지켜보면서 나는 처음엔 씁쓸했고 나중엔 멀미가 일었다.

비판 여론에 대해 문화재청장은 ‘복원기 전문에 치적과시용 문구가 전혀 없는데도 언론에서 마치 매명한 것처럼 왜곡했다’며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복원기의 전문은 이렇다. “낙산사 동종은 1469년 조성된 뒤 536년 만인 2005년 4월5일 큰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소실되었다. 이에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종의 원형 보존을 위해 관계 전문가의 자문과 고증을 받아 2006년 10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복원 종은 중요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인 원광식 종장이 주조하였다.” 이 복원기엔 문화재청장의 말처럼 형식상 치적과시용 문구가 없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나는 씁쓸한 헛웃음 같은 게 나오고 만 것이다. 비단 문화재청장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예컨대 이런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저 괄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옛날 옛적처럼 기록을 남기기 어려운 시대도 아니고 여론매체를 포함한 각종 기록물들이 차고 넘치는 현대에, 역사기록 차원에서 굳이 괄호를 치고 기관장 이름을 부기하는 일의 구태의연함이라니! 더구나 문화재청은 사설기관이 아니라 국가기관이지 않은가. 국가주도의 모든 사업에 당대 대통령과 관련 기관장들의 이름과 휘호가 사방에 널린다고 생각해보라. 이미 그런 지경의 ‘이름 남기기’ 관행은 과거의 권력자들 속에서 끔찍할 만큼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역사적 책임을 질 복원기가 필요하다면 문화재 자체가 아니라 별도의 자료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터이다.

괄호 안의 부기가 통상적 관례라는 입장도 갸우뚱하긴 마찬가지다. 왜 우리는 ‘통상적 관례’라는 말에 이토록 관대한 걸까. 통상적으로 이루어져 온 관례가 불편한 세대가 도래했다면 관례의 통상을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통상적’이라는 말이 가진 암묵적인 보수성, ‘관례’라는 말을 발화하는 순간 발생하는 뒷짐진 권력이 몹시 불편하다. 그런데 아뿔싸. 이 ‘사건’의 향방은 결국 이렇게 정리되었다고 한다. 문화재위원회 왈, “지금까지의 관례인 만큼 큰 문제가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복원된 동종을 그대로 유지함과 동시에 앞으로 복원할 문화유산에는 구체적인 복원경위와 관련 당사자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넣어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로 했단다. 이미 만들어진 종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애꿎은 재정낭비라는 측면을 포함해 피곤한 일이지만, 앞으로 복원될 문화유산에 대한 문화재위원회의 ‘단호한’ 처방은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과해 어이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문화재 자체에 기록을 남겨놓아야 역사기록이 가능한 시대가 이미 아닌 때에, 탑하나 종하나 만들어놓고 거기에 빼곡하게 새겨놓은 직간접의 관련 인사(아마도 대부분 관련 기관장들일) 이름들을 상상해보라.

실소가 터지다가 곰곰 생각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이름’에 집착하는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일까. 개인이 부재했던 시대가 너무도 오래되어서 ‘개인’의 이름을 열망하는 역사적 유전자가 생겨난 것인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오래되고 괴상한 유교적 금과옥조가 아직도 우리의 무의식을 옥죄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허명’에의 욕망이 도처에 너무도 승하여 멀미가 날 지경이다. 언젠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황무지나 다름없는 오지 한가운데 서 있던 ‘김○○목사 기념교회’를 보았을 때도 비슷한 멀미가 난 적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며 살다간 세계도처의 이름 없는 이들이 부지기수건만, 한국의 모 교회에서 보내준 돈으로 세웠다하여 돈을 댄 목사 이름을 붙인 한국인 선교사를 보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도대체 우리에게 이름이란 무엇일까. ‘허명’에의 욕망이 저지르는 파괴의 현장들과 뻔뻔한 속물근성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금강산을 비롯한 북쪽 땅 도처 깎아지른 절벽과 건물들에 시도 때도 없이 권력자의 이름이 출몰한다. 남한 땅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에프티에이를 벼락처럼 밀어붙이고자 한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속에 역시 허명에의 욕망이 전염병처럼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임기 중 딱히 잘 한 것은 없고 무엇 하나라도 이름을 남겨야겠다는 욕망이 몹시 기묘하게도 이처럼 반민중적 국제협상을 밀어붙여 성취하고 말겠다는 아집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김선우/시인
김선우/시인
아무려나, 제발, ‘문화’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에 ‘이름 새기기’ 욕망을 발현하는 일 좀 그만 했으면 싶다. 우리 문화의 천박함을 스스로 증거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무엇보다 한심해 보이는 것은, 문화재를 다루는 방식의 미학적 안목의 부재다. 기록의 한계가 있었던 과거라면 모르겠지만, 종의 내부는 안보이는 곳이므로 (치적 과시용이건 아니건) 각종 이름들을 치렁하게 새겨놓아도 상관없다는 발상이야말로 딱하기 그지없다. 문화재청의 수장이 미학자의 안목을 가진 이라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넣는 ‘관행’이 미학적으로 부적절한 것임을 알 것이다. 모든 제대로 된 예술품이 그렇듯이 범종 역시, 안팎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것이다. 밖에서 안 보이는 내부라고 해서 함부로 누군가의 이름을 적어놓거나 긁어내거나 해도 상관없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선우/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