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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대한민국은 서울영어공화국”

등록 2006-01-18 17:13수정 2006-01-19 13:49

김강지숙  <이대학보> 기자
김강지숙 <이대학보> 기자
2005대학별곡
지방대학생 영어학원찾아 서울로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 아니 영어공화국이다. 아니다 그래, 서울영어공화국이 맞다. 종로에 위치한 워니빌고시원 주인 오대근(65)씨는 말한다. “방학 시즌에 20명 정도였던 고시원생이 두 배 이상 늘었어요. 영어학원에 다니려고 올라온 지방 대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방학을 맞은 지방대생들이 영어학원이 밀집한 서울 종로와 강남 일대에 모여들고 있다. 방학 내내 영어 공부에 ‘올인’하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유학을 떠나오게 된 것. 2~3년 전 형성된 이런 분위기는 어떤 사회적 주목도 받지 못한 채 해를 거듭할수록 점입가경이다.

울산대 이희영(전기전자정보시스템공학부 3년)씨는 “부산, 대구 같은 지방 대도시도 서울에 비하면 학원수나 강사진 등 교육 여건이 뒤떨어진다”며 “자연히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새벽부터 자습실을 메우며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큰 자극이 된다는 그는 가끔 고향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면 “여기 사람들은 잠도 안자고 하루에 17시간씩 공부해”라고 말하곤 한단다.

“순천에는 토플 학원이 없어서 어쩔 수없이 서울을 찾았다”는 순천대 고우리(영어교육과 3년)씨는 지지난해 겨울과 지난해 여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자취를 하며 강남의 영어 학원에 다닌 바 있다. 그는 “시험에 대한 정보도 빠르고 유명 강사도 많아 원하던 점수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타지 생활이 녹록할 리 없다. 겨울방학 동안 강남의 토플 학원에 다니려고 대구에서 올라온 경북대 배민진(수의학과 본과 3년)씨는 학원 주변 고시원에 방을 구했다. 배씨는 “고향의 가족 친구가 그립기도 하고, 좁은 고시원 방도 답답하다”며 “집에서 편하게 학원 다니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전한다.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단국대(천안)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토익 공부를 위해 올라온 안재민씨는 “처음에는 국 없이 밥 먹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이제 꽤 적응이 됐다”고 말한다. 돈을 아끼려고 고추장과 통조림 등 최소한의 반찬거리만 사다 차린 상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그는 “학원비와, 고시원비, 식비까지 하면 아무리 아껴도 한달 생활비가 60만원 이상 들 것 같다”며 “타지에서의 외로움보다 더 큰 고민이 바로 금전 문제”라고 말한다.

지난 8월부터 고시원 생활을 하며 토익공부를 하고 있는 대구 가톨릭대 이상희(국제통상부 2년 휴학)씨는 오랜 경험만큼 서울 유학 생활의 베테랑이다. “학원 선생님한테 지방에서 왔다고 하면 유인물 하나라도 더 챙겨주신다”, “기상과 취침시간을 맞춰야 한다” 등 조언을 해 줄 정도다. 그는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고 집에도 쉽게 갈 수 없으니 공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어가 취업문의 너비를 결정하는 시대인만큼 대학생들이 토익, 토플시험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서 대학뿐 아니라, 학원도 ‘인(in)서울’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섬뜩하다. 취업까지 생각하며 상경한 안재민씨는 “여러번 취업에 실패한 후 토익 고득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지방에는 마땅한 학원이나 유명 강사진이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고 말한다.

‘하루에 토익공부를 17시간씩 한다’는 ‘서울 영어공화국’의 전설을 먼 곳에서 전해 듣는 지방 대학생들은 어떤 기분일까. 어쨌건 올라온 학생도, 남아 있는 학생도 맘 편히 잠만 못 잔다. 일그러진 공화국에서 태어난 죄 하나로, 전혀 팔자에도 없이 말이다.

김강지숙 <이대학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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