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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정의감 넘치는 ‘긴급출동 SOS’ 그런데 ‘노예’는 왜 시골에만 있을까

등록 2006-07-19 21:01

지금은 방송중
‘노예 할아버지’에서부터 ‘노예 며느리’까지 발굴해낸 에스비에스 〈긴급출동 SOS 24〉(〈SOS〉)는 뜨거운 프로그램이다. 지옥의 풍경을 취재해 공개하는 이 프로그램은 강한 정서적 충격을 일으키고 공분을 치솟게 만든다. 〈SOS〉가 뜬 것도 착취, 학대, 폭행 등의 개념이 뿜어내는 뜨거운 파토스 덕분인 것 같다.

‘노예 할아버지’ 편만 해도 이른바 누리꾼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데 성공한 덕에 프로그램이 방송 이후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게 나의 관찰 결론이다. 방송 다음 날 한 인터넷 매체가 프로그램 리뷰 기사를 냈으며 그것이 인터넷 포털의 대문에 걸리자 누리꾼들이 몰려들어 성토를 쏟아냈다. 누리꾼들의 분노가 연쇄 작용을 일으켜 전통적 미디어들을 대거 추동하고 정계와 정부의 관심까지 이끌어냈으니, 〈SOS〉의 노예 할아버지 편은 누리꾼의 힘을 오랜만에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던 셈이다.

노예 할아버지나 노예 청년이나 노예 며느리 편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순수한 분노였다. 또는 가해자가 용서할 수 없는 악당으로 비쳤다는 점에서 누리꾼들은 대단히 쉬운 분노를 표할 기회를 얻었다. ‘태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까닭에 누리꾼들은 안전한 분노를 쏟아낼 수 있었다. 정의감을 터뜨린 뒤 나른한 카타르시스에 다다를 기회를 제공하는 〈SOS〉는 누리꾼에게 친절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격정적인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심드렁한 시청자 부류도 있다. 특별한 정의감이 박약한 인종들은 아니다.

실은 〈SOS〉의 ‘편파성’이 거부감의 근거다. 생을 박탈당한 사회적 최약자를 구해내려는 〈SOS〉의 진정성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근대화되지 못한 공간 속의 학대에 주로 주목한다는 것은 문제다. 가령 화려한 최고급 주택가의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고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랑처럼 학대도 이 세상에 고루 분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골과 섬 혹은 빈민가 등 주변부 하위 계층의 악행에 집중하는 것은 분명 편파적이다.

그런 편파성 때문에 〈SOS〉는 도회지 교양인들에게 친화적이다. 근대적인 인간관계와 문화를 향유하는 시청자들이 상대적 우월감을 맛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혀를 찬다면 그것 역시 누리꾼들의 분노처럼 안전하고 쉬운 감상이다. 비인간적인 수탈과 학대가 타인의 지옥으로 보이게 된다.

다시 말해 도시의 번듯한 현대인들 자신이 거대한 기업 조직 및 경제 정글 속에서 수탈 대상이나 주역이거나 그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는 뻔한 사실을 잊게 만든다. 직접적이고 소규모적이고 구체적인 학대에 대한 〈SOS〉의 비난은 조직적이고 구조적이고 세련된 학대 및 수탈을 정당화하는 뜻밖의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영재/웹진 〈컬티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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