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방송중
일본 방송계의 ‘탤런트’란 말은 우리와 뜻이 좀 다르다. 우리처럼 티브이 드라마를 위주로 연기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배우’다. 개그맨은 ‘오와라이’라고 불린다. 배우도 오와라이도 아닌 독특한 직군이 바로 일본의 ‘탤런트’다. 이들의 주요업무는 각종 오락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들에 고정패널이나 게스트로 출연하는 이들이다.
어림잡아 200~300명 안팎의 탤런트들이 일본의 6개 공중파 채널 속 수많은 프로그램들 속에서 늘 뭔가 의견을 개진하거나, 토론을 진행하거나, 경험을 이야기한다. 방대한 프로그램의 종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가 적어 보이는 그들의 압도적인 겹치기 교차출연에 딴죽을 거는 일본 시청자들은 별로 없다. 우리식으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몰아붙이기엔 그들이 너무나 재밌게 말을 잘해주기 때문이다.
연기도 개그도 노래도 아닌 ‘토크’를 본업으로 삼기 위해 일본의 탤런트들은 따로 교육도 받고, 혼자 공부도 한다. 그렇게 연마한 토크기술을 바탕으로, 별것 아닌 화면에도 그럴싸한 촌평을 해주거나 끝없이 반복되는 시시한 주제에도 매번 진지한 의견과 깜짝 에피소드를 풀어내주는 그들을 보노라면 일본 티브이 속의 두터운 인적자원이 부러워질 때도 있었다.
말을 재밌게 할 줄 아는 재능은, 노래나 연기나 외모처럼 티브이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탤런트(talent)이다. 보통사람들은 할 수 없는 독특한 재능을 선보이는 사람들이 연예인이 되는 것이라면, ‘토크’라는 대단한 전문기술을 갖춘 사람도 외모에 상관없이 스타로 탄생할 수 있어야 한다. 가수나 배우들이 토크쇼 나와서 가끔씩 시답잖은 사생활 수다나 떨어주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흔해빠진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새 생명을 일깨워주는 작업이 ‘토크’다. 말하자면 일종의 현대판 ‘시인’들인 셈이다. 브라운관 속의 시인들은 별것 아닌 음식 맛, 골동품, 관광지, 질병, 상식, 실험, 퀴즈, 동물의 생태들에 대해 맛깔난 시를 써주어야 한다. 옛날 시인들과 다른 건, 이왕이면 여유있는 편집을 고려해 길고 다양하게 해줄수록 좋다는 점이다.
김제동, 노홍철, 현영 같은 시인들은 그들이 어떻게 시를 써야 시청자들이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런 재능을 어떻게 활용하면 되는지를 일찌감치 내다봄으로써, 티브이 속의 신주류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 꼽히는 신동엽이 최근 전문토커를 찾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가 내건 취지가 흥미롭다. “(도전에 성공한 출연자들이) 말을 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겠다”고 했다. 외모나 노래 같은 눈에 보이는 재주 하나 없는 가난하고 꿈 많은 청춘들에게 참으로 솔깃한 선언이다. 말로 대성한 그의 이 호언이 한국 연예계의 신주류를 형성하는 큰 흐름의 시작이 되길 빈다.
김일중/방송작가 yellowtv@chollian.net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