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방송중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현장에 제작진이 직접 개입해서 사태의 해결과 사후 관리까지 해결하는 솔루션 프로그램’이란 기획의도로 만든 <긴급출동SOS24>에는 일주일에 300여개의 제보가 접수된다. 제작진은 제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가장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곳부터 먼저 취재를 시작한다.
<긴급출동…>이 고급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고발하지 못하면서 도회지 교양인들에게 상대적 우월감을 맛보게 하기 때문에 편파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한겨레> 7월 20일치) 그런데 역으로 이말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은밀하게 행해지는 폭력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우리의 우월감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가정폭력특별법 제정, 아동복지법 개정 등 법적 장치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가정폭력의 정도는 매우 심각하다. 방송에 나오는 여성, 아동, 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법과 제도는 거의 무용지물이며, 외딴 지역의 약자에 대한 폭력은 아직도 방치되고 있다. ‘노예 할아버지’편에서 피해자 할아버지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수십년을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다, 결국 지역 주민이 아닌 그 마을을 지나가던 낮선 제보자에게 발견됐다
이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폭력을 당했을 때 법적 이혼 절차를 밟거나, 병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는 등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아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제보한 적이 있었는데, 이 할머니는 다행히도 경제력이 있었다. 그래서 아들의 정신 건강을 전문 병원에서 진단받고 난 뒤 그를 입원시킬 수 있었다. 이 사연은 방송되지는 않았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돈도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사회적 최약자들이 이웃과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고스란히 당하다가 마지막 선택으로 <긴급출동…>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가정폭력 가해자들은 가정밖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폭력성을 감춘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가해자를 옹호하던 이웃들은 피해자가 받은 끔찍한 폭력의 상처를 보고 나서야 경악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과 상처를 방송에서 공개하기까지 괴로워했던 피해자들은 “자신과 같은 폭력의 희생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아야 된다”며 용기를 내어 취재에 응한다. 폭력의 후유증은 제작진도 같이 겪는다. 방송에 공개할 수 없는 부분까지 직접 보게 되는 제작진들은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며 심한 두통을 느낀다. 심지어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는 가정폭력 전문가들은 제작진에게도 심리치료를 권유한다.
이러한 폭력의 고통은 피해자와 제작진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가족간의 문제라는 이유로 어느 누구한테도 도움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지금도 누군가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허윤무(<긴급출동! SOS24> 제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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