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 보기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 보기 /
미국 이동통신 가입자들은 단말기 값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400~500달러짜리도 10~50달러 정도면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신 고성능 기종도 100달러 정도면 사용할 수 있다. 대신 조건이 달려 있다. 단말기를 받은 해당 업체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2년이나 3년 이상 이용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단말기 값을 보조해줄테니 2~3년 의무적으로 이용해 달라는 것이다.
의무이용기간을 채우지 않고 중간에 해지하면 위약금을 물린다. 가입 때 받은 단말기 보조금을 모두 토해내야 한다. 따라서 보조금을 받는 절차가 까다롭다. 신용이 나쁘거나 외국인에게는 단말기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 단말기 보조금을 떼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가입자 본인이 직접 대리점을 방문해 의무이용기간 약정서에 서명해야 한다. 이용자가 위약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에 대비해, 가입자에게 직접 중간에 해지하면 위약금을 물린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서명까지 받아두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오는 26일로 예정된 단말기 보조금 규제 폐지를 앞두고, 의무이용기간을 두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용자가 약속한 의무이용기간에 따라 단말기 보조금을 다르게 줄 수 있게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1년 이용을 약속한 가입자에게 단말기 보조금으로 15만원을 준다고 가정하면, 2년은 30만원, 3년은 45만원을 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용자 쪽에서야 마다 할 이유가 없다. 단말기 과소비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동통신 업체들의 속셈은 갈린다. 케이티에프(KTF)는 의무가입기간 도입에 적극적이고, 에스케이텔레콤(SKT)은 소극적이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 이동통신 업계 자율로 단말기 보조금을 주는 대신 의무이용기간을 설정한 적이 있다. 단말기를 공짜로 주는 대신 2년 동안 의무적으로 이용하게 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해지의 자유를 막는다는 이유로 곧 폐지됐다. 초기에는 별 논란이 없었다. 하지만 약정한 의무이용기간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단말기를 분실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가입자가 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느닷없이 통화품질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의무이용기간이 통화품질 때문에 해지하는 것까지 막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이동통신 업체들이 수십만원짜리 단말기를 공짜로 뿌려, 대다수 이용자들이 단말기를 술집에 두고 오거나 택시에 놓고 내리면 찾을 생각을 않고 대리점에 와서 달라고 하는 습관을 갖고 있던 상태였다. 의무이용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단말기를 분실했으니 단말기를 제 값 내고 다시 사거나 해지하려면 위약금을 물라고 하니 반발하는 게 당연했다. 대부분 내가 언제 2년 쓰겠다고 약속했느냐며 증거를 대라, 해지의 자유를 막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이동통신 업체들의 의무이용기간 설정을 허용할 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허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만약 도입한다면, 단말기 보조금을 받고 싶으면 가입자 본인이 직접 대리점을 방문해 의무이용기간 약정서에 서명을 하게 하는 절차를 둘 것을 권하고 싶다. 가입자에게 직접 원하는 보조금 금액과 그에 따른 의무가입기간을 쓰고 서명을 해 나중에 ‘딴소리’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